제주포럼C 제주시 구도심 답사 '길과 건축, 그리고 삶의 흔적'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말했다. 제주도 마찬가지다.
매일같이 마주하지만 무심하게 지나치는 도시의 풍경. 펼쳐진 길 따라 지어진 건축물은 그저 일상일 뿐이다. 도심의 천변에도 별 감흥 없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공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제주의 조상 삼을나가 쏜 화살이 닿았다는 일도동, 이도동, 삼도동. 이른바 ‘구도심’이라 불리는 옛 흔적을 훑어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제주포럼C의 스물두 번째 제주탐방 ‘길과 건축, 그리고 삶의 흔적’이다. 30여명의 참가자가 나선 이번 탐방은 12일 이른 오전 9시부터 시작됐다.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과 교수가 길잡이를 맡았다.
일도1동에서부터 건입동까지 제주시내 번화가를 통과하는 '산지천'이 이날 답사의 주된 동선이었다. 중소기업지원센터와 제주도서관 사이 건천을 따라 조성된 청소년의 길에서부터 탐방의 첫 발을 디뎠다.
김 교수는 “도시는 두 가지 요소로 결정된다. ‘도로’와 ‘건축물’이다. 도로가 들어서고 건축물이 지어지고 거기에 오랜 시간 사람들의 생활 형태가 배어든다. 그렇기에 함부로 도로를 내서도 안 되고, 건축물을 지어서도 안 된다”고 말머리를 열었다.
“특히 제주도의 강남이라 불리는 연동, 노형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이 녹아든 구도심과 비교될 수 없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그는 말했다.
제주에는 산지천, 한천, 병문천, 독사천 4개의 하천이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제주 경관을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건천’이다. 김 교수는 우리가 매일같이 마주하지만 크게 마음 둔 적 없었던 ‘하천’을 다시 짚었다.
“제주의 하천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볼품없어 보여도 각자 살아가는 모습이 담겼다”며 “하천에서 부는 바람, 나무 냄새, 하늘의 모습 등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공간을 만들어내는가 살펴보라”고 권했다.
이어 그는 무분별한 하천개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제주의 하천은 두 가지 이유로 중요하다. 경관을 만드는 요소이자 생명체가 살아있는 공간이다. 때로 안전이나 재해 예방을 이유로 하천을 개발하기도 하지만 깊은 고민 없이 굴삭기로 평탄 작업을 하고 콘크리트로 덮어놓으면 도시 풍경이 훼손되고, 하천 생태계가 무너지고 만다”고 말했다.
신산공원쯤 다다르자 김 교수는 “신산공원 부근의 산지천은 건천의 전형적인 모습을 지녔다. 산지천의 옛 모습이 그나마 남아있는 곳으로 조금만 더 정교하게 다듬는다면 예전 그대로의 경관을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혈에서 보성시장, 공무원연금공단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다다랐다. 김 교수가 다시 한 번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대뜸 “여러분 왼쪽 돌담과 오른쪽 돌담 중 어느 게 더 보기 좋은가”라고 물었다.
“인공적으로 다듬은 왼쪽 돌담보다는 말 그대로 오랜 시간 때 탄 오른쪽 돌담이 훨씬 더 좋기 좋지 않은가. 최근 행정에서 제주다운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 제주를 제주답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모습을 지키는 데 있지 않을까”라며 사소한 것에서도 ‘제주다움’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좋은 건축이란 불편함을 감수하는 건축이다. 차에서 바로 내려서 비 안 맞고, 바람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비도 맞고, 눈도 맞고, 추운 것도 참으며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태도야 말로 진정한 좋은 건축”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제주성지에서 남수각을 거쳐 걸음을 옮겨가 중앙로 한짓골에 닿았다. 목관아에서 남문에 이르는 길가이자 마을을 이르는 ‘한짓골’은 조선시대부터 성안을 드나드는 사람들로 인해 늘 인파가 붐비는 곳이었으며, 주된 상권이 형성되는 곳이었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이곳에는 크고 작은 문화·예술 운동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은 한적하기 이를 데 없지만 1980년대까지 제주의 중심으로 꼽히던 곳이었다.
김 교수는 “구도심 거리는 아는 만큼 보인다. 탐라에서 고려~조선으로, 근대에서 현대까지 역사가 이어지는 곳이자 제주 사람들의 정체성이 담긴 곳이다. 요즘 에코 뮤지엄이 인기를 끈다고 하는데 제주의 옛 모습을 읽을 수 있는 현대판 에코뮤지엄이 바로 제주읍성에서 무근성까지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칠성대, 향로당, 조일구락부, 성내교회 등을 둘러본 뒤 마지막 탐방지인 관덕정에서 김 교수는 경제, 행정, 문화의 일번지로 군림해왔던 관덕정도 단순하게 ‘문화재’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옛 무인들의 연병장이면서 서민들이 장터로 이용해왔던 곳이고 주변에 중·고등학교들이 있을 땐 각종행사가 이뤄졌던 공간이기도 하다. 4·3의 시발점이기도 하고 이재수의 난 시신을 수습했던 곳으로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역사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옛 제주시청사의 의미도 다시 살폈다. 의미를 잘 모르는 이에겐 그저 ‘낡은 건물’인 이 건물은 해방 직후 지어졌다. 그 당시 전형적인 공공건축물이면서 일본의 양식이 따오지 않고 우리 고유의 방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일제시대 관덕정 앞 광장을 가르는 도로를 내면서 장소의 가치를 잃게 됐지만 도민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노력만 한다면 이 길도 언젠간 시민들 품에서 광장의 역할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답사를 끝맺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