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의 경제칼럼> 유로존의 그리스 붙잡기

오늘 EU 27개국 정상회담의 분위기는 긴축에서 성장지원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적자예산의 크기를 놓고 벌이는 줄다리기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제프리 삭스 교수는 "유럽을 살리려면 은행을 살려라"라는 제목의 글을 5월 21일자 파이낸셜 타임즈에 실었다. 그리스 경제를 붕괴시키고 있는 것은 정부의 긴축정책이 아니라 운전자금의 고갈이다. 그리스 은행들은 예금이 줄어드는 만큼 대출금을 회수하고 있어 기업들이 필요한 자금을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그리스 은행예금은 2010년 초에 비해 1/3이 줄었다. 최근에는 뱅크런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뱅크런은 은행의 지불불능이 의심될 때 발생한다. 그러나 지금 유럽중앙은행은 최후의 대출자(lender of last resort)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예금자들이 의심하는 것은 은행이 문을 닫는 것이 아니다. 악몽은 지불불능이 아니라 환 리스크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해 일순간 모든 은행예금의 화폐단위를 유로화에서 자국통화로 변경했을 때 그 가치가 앞으로 어떻게 변동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뱅크런은 환 리스크 때문

뱅크런이 발생하면 정부가 자금을 대주어야 한다. 막대한 재원이 드는 일이다. 유럽이 두려워하는 것은 뱅크런의 전염일 터이다. 이것을 원천에서 차단하는 길은 그리스가 유로화를 계속 사용한다는 점을 어떻게든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은 취임 직후 독일 메르켈 수상을 찾았다. 이들이 내놓은 첫 메시지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아 있도록 지원하겠다"였다.

그리스는 유로존에 남을 것인가? 유로화 대신 자국통화를 사용할 때의 장점은 환율평가 절하를 통한 경쟁력 회복이다. 그러나 그리스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80%는 유로존 잔류를 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긴축에 대해서는 80%가 반대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양립할 수 없다.

이런 그리스를 지원하는 길은 무엇일까? 우선은 독일이 긴축우선의 원칙에서 한발 물러서는 것이다. 내년 대선에서 재집권을 원하는 독일 기민당에게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정치적으로 큰 타격이 될 것이다. 게다가 EC 집행위원장 바호주, 영국의 케머런 수상, 이탈리아의 마리오 몬티 수상 등이 올랑드의 성장지원 노선을 지지하고 있다.

성장지원의 메뉴는 다양하다. 유로존 17개국의 공동보증 하에 채권을 발행해 기간시설 건설 비용에 충당한다, 유럽투자은행을 더 키워서 고용증진을 위한 자금을 지원한다, 유럽국가 간의 재균형을 위해 독일 등이 물가상승을 용인하면서 경기확장 정책을 택한다 등이다. 오늘 EU 정상회담에서 큰 진전을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6월 18일의 G20 정상회담 때까지는 구체안들이 나올 것이다. 비슷한 시점에 그리스 새 정부가 구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 그리스를 지원하는 길

그러나 과연 이런 것들이 그리스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진정으로 그리스를 돕는 길은 긴축을 강요했던 자들이 스스로 긴축의 몸가짐을 보여주는 것일지 모른다. 올랑드의 구호는 성장이었지만 그의 첫 행보는 검약이었다.

취임식을 마치고 비 뿌리는 샹젤리제 거리를 하이브리드 시트로엥 승용차로 퍼레이드하는 그의 모습은 호위 의장대의 번쩍이는 칼과는 어울리지 않게 초라했다. 대통령, 수상 및 장관 모두의 봉급을 30% 삭감하는 조치를 단행했고, 공무를 위해 이동할 때에도 빨간 신호등에 정차할 것, 3시간 이내의 거리는 비행기가 아닌 기차를 이용하며, 150 유로(한화 약 23만원)가 넘는 선물은 국고에 귀속시키기로 약속하는 윤리강령에 모두 서명했다.

▲ 김국주 前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검약은 구조조정이며 따라서 이런 검약은 성장중시 정책과 충돌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그리스가 진정 필요로 하는 구조조정, 즉 흥청망청했던 공공부문의 감축, 경쟁을 저해하는 카르텔의 타파, 그리고 조세행정의 부정부패 척결 등을 스스로 일구어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이 아닐까?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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