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산의 표지석. ⓒ양기혁
명사산 사막의 낙타체험관광. ⓒ제주의소리
사막 속의 샘물, 월아천. ⓒ양기혁

<양기혁의 중국횡단기> 10 모래가 우는 산 '명사산'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들으며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좀 남은 듯하여, 입구의 기념품 가게에서‘敦煌’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얇은 중국책을 한 권 샀다. 중국 CCTV에서 TV프로그램으로 방영한 내용을 책으로 만든 것으로 보였다. 불상과 막고굴을 배경으로 한 겉표지의 짧은 글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경전과
엄숙하고 경건한 불상들
아름다운 선녀의 옷자락과
부드럽고 아름답게 춤추는 모습
...
돈황은
영원히 모자람이 없이 전해져오는
신비의 세계
당신이 여기에 와서
탐색하고, 발견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

 

 

 

 

 

 

 

그리고 몇 페이지를 넘기자 목차 뒤에 돈황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짧은 글이 있다.

 

   

돈황을 마주 대하면, 중국인들은 자신의 찬란했던 과거를 알게되고,
서방인들은 동방문화의 매력을 느끼며,
한국과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다.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돈황은 사막에 세워진 거대한 화랑이며,
천년의 회화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며
세계 최대의 미술궁전이다.
학자들에게 있어서
돈황은 고대역사를 망라하고 있는 수많은 장서들,
방대하고 심오한 고대문명을 함축하고 있는 문헌, 벽화, 채색된 소상, 그리
고 건축물들이다.
사람들 마음 속에는 각자 자기만의 돈황을 가지고 있겠으나
대다수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돈황은 선망하고 동경하는 곳이고, 중화민족에게는 정신을 살찌우게 하는
뜨락이다.

아주머니는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차에 오르자 그녀는 명사산을 향하여 차를 몰았다. 운전하는 동안 나는 그녀에게 말을 붙여 보았다.
“이치엔 타 난런 스 니더 장푸마?”
아침에 남자 택시기사가 그녀의 남편인지를 물었는데, 그녀는 말뜻을 알아듣고 “뒤, 뒤.”하며, 맞다고 한다.
잠시 후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둬창스지엔 니 드라이브?”
운전한 지 얼마나 됐는지 적당히 영어를 섞어서 말했는데 그녀는 영어도 알아들었는지 손가락을 세 개 펴 보이며“산(三).”이라고 하며, 삼 년 됐다고 말한다. 그녀의 운전솜씨를 칭찬해주고 싶었으나 마땅히 생각나는 단어가 없어서 잘한다고 한마디 했다.

그런데 부부가 택시를 교대로 운전하는 게 괜찮은 건지 어떻게 물어봐야 좋을지 모르겠다. 명사산은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굳이 택시 투어를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명사산에 들어서자 거대한 모래산들이 압도하는 듯 버티고 있는 것이 진짜 사막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둔황 시내를 벗어나면 다 사막인데, 다른 곳은 그냥 사막이지만 여기는 진짜 사막이라는 느낌이다.

▲ 명사산의 표지석. ⓒ양기혁

한쪽에선 관광객들이 낙타를 타고 사막을 체험하는 코스도 있었으나 명사산 속의 오아시스인 월아천(月牙泉)에 가기 위하여 전동차에올라탔다. 낙타는 80원이고, 전동차는 10원이다. 막고굴에서부터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했는데, 이제 진짜 사막에오니 바람이 점차 거세져, 모래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모래가 우는 산이라는 이름 그대로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들이 울음을 울 듯이 소리를 내며 불어왔다. 황급히 준비해온 마스크를 찾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다. 아마도 입구에서 입장권을 살 때 생수며 지갑 등 이것저것 손에 든 것이 많아 어딘가 흘린 것 같다. 잘 준비해 왔는데, 써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못 쓰게 된 셈이다.

할 수 없이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모자도 푹 눌러 쓴 다음 입을 꾹 다물고 모래폭풍 속으로 돌진해 갔다. 멀리 거대한 모래산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데, 검은 점들이 하나씩 둘씩 옮겨가는 것들이 보여서 가까이 다가가니 사람들이 그 산을 오르고 있었다. 저 모래산들을 넘어 동쪽 끝 계곡에 다다르면 아까 갔던 막고굴인 것이다.

▲ 명사산 사막의 낙타체험관광. ⓒ제주의소리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모래 속에서 산 정상을 오르는 일은 엄두가 나지 않아 모래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래계곡 속에 고풍스러운 정자와 함께 신비스러운 푸른 빛을 띠고 있는 오아시스 샘물인 월아천으로 향하였다.

이곳 정자는 옛날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몇 해 전 지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月牙泉’의 牙는‘어금니 아’자로 중국어에서는 이빨을 뜻하는데(우리나라의치과를중국에서는‘牙科’로쓴다.)‘, 月牙’는 달이빨이 아니라 초승달을 뜻한다.

그리고 오랜 옛날 무성한 삼림지대였던 이곳이 어느 날 사막으로 변하자 너무 슬퍼한 하늘의 선녀가 흘린 눈물이 이곳에 떨어져 샘물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고 한다.

▲ 사막 속의 샘물, 월아천. ⓒ양기혁

정자에 이르러 목도 축이고, 모래바람도 피할 겸 매점에 앉아 캔맥주 하나를 샀다. 보통 가게에서 3원 하는 캔맥주가 10원이다. 미지근한 맥주를 달게 마시며 아주머니에게 한마디 건넸다.

“짜이절 메이티엔 쩌양 펑다마(여기는 이렇게 매일 바람이 많이 붑니까)?”
“부스, 찐티엔 스알디엔 이호우.(不是今天12点以后, 아니다. 오늘 12시 이후부터다.)”

아주머니는 오늘 오후 12시부터 바람이 많이 분다는 날씨경보가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맹렬히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뚫고 돌아오는 전동차에 몸을 실 어 명사산과 월아천 관람을 끝냈다.

밖으로 나오니 한 남자가 나에게 웃어 보이며 다가왔다. 그는 아침에 만났던 택시기사 블랙 뤄더홍이었는데, 선글라스를 벗고 있는데다, 수염을 말끔히 깎고, 다른 색의 옷을 갈아입어서 그를 잠깐 알아보지 못했다.

“워칸 니스 비에런.”

다른 사람 같아 보인다고 하자 그는 한번 더 웃어 보이고 호텔로 차를 몰았다. 호텔에 도착하여 약속한 요금을 지불하자 그는 만족한 듯 내일 하루 더 투어를 하라고 권한다. 서역북도(西域北道)와 서역남도(西域南道)의 출발점인 옥문관(玉門關)과 양관(陽關), 서천불동(西千佛洞), 지질공원 등 가이드북에 소개된 관광지가 둔황엔 아직도 많았고, 시간도 충분했지만 내일은 시내 구경으로 끝낼 생각으로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택시가 돌아가고 나서, 호텔 근처에 있는 비행기 매표소로 갔다. 우루무치까지 가고 나서 쓰촨성 청뚜(四川省城都)까지는 비행기를 타야할 것 같아서 표를 미리 알아봐야 했다. 우루무치에서 청뚜까지는 세금포함 1180원, 한국 돈으로 약 20만원. 그런데 내가 갖고 있는 한국 신용카드는 사용할 수 없다.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 비행기 요금을 지불하고 나면 나머지 여행하는 동안 쓸 돈이 모자랄 판이니 좀 난감하다.

우선 비행기표 사는 것을 보류하고 내일 은행에서 카드 사용이 가능한지를 알아봐야겠다. 호텔방으로 돌아오니 다이스케는 나가고 없었다. 침대와 탁자에 그의 짐이 흐트러져 있었고, 바이올린보다 작은, 마치 장난감 기타처럼 생긴 것이 의자 위에 기대어 있었다.

잠시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그가 돌아왔다. 그는 둔황시장에 구경 삼아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의 침대 옆 의자에 기대어 세워져 있는 조그만 기타에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What’s this?”

그가 웃으며 그것을 들어 나에게 건네주며 쳐보라고 한다. 그것을 받아 몸통 안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Ukulele’라고 적혀있었다. ‘우쿨렐레’, 어디선가 한번쯤 이름은 들어본 것 같다. 그에게 그것을 돌려주며 말했다.

“You are a musician?”
“No, just hobby.”
“Can you play it for me?”
“Sure!”

한 곡 들려달라는 말에 그는 침대 위에 자세를 바로잡고 앉아 낯익은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감미롭고 애절하게 들리는 그의 연주는 음악 자체의 멜로디가 그렇기도 하거니와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에서 애잔함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연주를 끝내고 그가 물었다.

“Do you know this music?”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Amasing grace.”
그리고 그는 시내를 좀 걸어 다녔더니 피곤하다면서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눕는다. /양기혁

   
필자 양기혁은 1958년 서귀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상경해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서울에서 바쁘게 살다 중년에 접어들고서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다. 제주시에서 귀농 생활을 즐기다 우연치 않게 방송통신대 중문과에 입학해 중국어를 공부했다. 이왕 공부한 김에 중국 횡단 여행을 다녀와 <노자가 서쪽으로간 까닭은?>이라는 책을 냈다. 노자는 어쩌면, 필자 자신인지도 모른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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