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청비 여신, 그녀의 여성적인 페미니즘
자청비 여신, 그녀의 여성적인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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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주례>에 의하면 벼, 기장, 피, 보리, 콩을 말하며 
제주의 경우는 밭벼, 보기, 조, 콩, 메밀을 말하기도 한다. 보통 모든 곡식을 지칭한다.

<김정숙의 제주신화> 23 자청비 여신 원형 ③


지속적이고 다정한 그녀의 여성주의


그러나 그녀는 이런 성차별의 모순과 비인간성을 인식하고 또 극복하면서 성과 사랑을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도, 여성집단의 면에서도 그리고 사회 전체의 구도에서도 성공적으로 실현시켜 나간다.


자청비의 여성주의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역시 그녀답게 여성적인 페미니즘을 선택한다.
하늘의 난을 평정한 상으로 옥황상제가 ‘땅 한 쪽, 물 한 적’을 내어주지만 그녀는 사양하고 ‘오곡의 씨앗’을 내려주라 한다.

자청비 원형은 하나의 밀알처럼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한, 사소한 것들에서 원대한 가치들을 일구어내는 다정한 방법, 여성성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결국 그녀는 땅과 물이 의미하는 남성적인 지배나 관리보다는 ‘오곡의 씨앗’이라는 민중적이고 여성적인 풍요와 생산을 택하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땅 한 쪽, 물 한 적’은 지배와 관리의 질서를 필요로 한다. 좀 더 많이 그리고 공고히 차지하기 위한 파괴와 싸움,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분석과 탐색이 필수다.

▲ 오곡.(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주례>에 의하면 벼, 기장, 피, 보리, 콩을 말하며 제주의 경우는 밭벼, 보기, 조, 콩, 메밀을 말하기도 한다. 보통 모든 곡식을 지칭한다.

반면 오곡의 씨앗은 지배와 관리라는, 강하고 권위적인 칼로 단번에 베어버리는 접근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인간관계처럼 늘 수고하는, 수고해도 뒤통수를 맞는, 그럼에도 끊임없이 살피고 정성을 다하는 접근을 필요로 한다. 언제 어떻게 변심할지 모르는 햇빛과 비를 살피면서, 땀 흘리는 실제의 삶 속에서, 실패와 수고를 거듭하면서 열매를 꿈꾸어야 하는 것이다.
 

자칫 이 선택은 여성집단적인 요구를 거스르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인간관계들에 있어 불평등한 관계와 문화를 오래도록 겪어왔고, 그런 사회에서 여성집단의 질곡을 확 풀 수 있는 ‘땅과 물의 지배’라는 정치적인 선택을 먼저 해야 할 요구와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청비가 땅과 물을 거절하고 오곡의 씨앗을 택한 것에 대해, 여성은 역시 분석에 서툴고 사회의 결합관계들을 잘 인식하지 못하며 그 질서를 다루는 데도 역량이 없는, 그래서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임을 재확인하는 지점으로 삼는 것은 지나치게 도식적이다.


신화에 보이듯 사랑을 얻어가는 과정, 며느리 되기 심사 과정, 자신을 겁탈한 정수남을 가혹하게 벌하고 또는 이용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용서하고 품어주는 과정 등에서 나타나는 자청비의 모습은 사회관계와 사회질서의 본질을 다루는데 특히 뛰어난 역량을 보이고 있으며 그 와중에도 개성과 지성을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자청비의 선택은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들을 피지배자로 영원히 종속하게 하고 약자임을 인정하는 체념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상대 남성들을 배제시키거나 대립시키지 않고 남성성이 만들어낸 묘미와 성과들을 선취하면서, 역동적인 동행을 이끌어내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계속>/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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