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문화도시공동체 쿠키 이승택 대표

도심으로 빠져나가는 인구 탓에 얕은 숨을 쉬던 서귀포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고자 정치와 행정이 갖가지 방안을 내놨지만 뚜렷한 묘안은 없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서귀포는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뜻밖의 영역에서 답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바로 ‘쿠키’다.

이게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을 테다. 문화도시공동체 ‘쿠키’ 이야기다. ‘쿠키(CUCI)’는 문화(Culture)와 도시(City) 앞 두 글자씩 따와 지은 이름이다. 도시 문제를 문화와 예술로 고쳐가자는 취지에서 2009년에 내딛은 비영리단체다.

공간디자인, 공공예술, 예술+벼룩시장, 예술가 레지던시, 문화컨설팅 등 예술이 닿을 수 있는 부분은 어디든 손을 대며 다양한 도시 재생운동을 벌여왔다. 일상을 조금씩 바꿔가는 소소한 움직임에서부터 마을 하나를 통째로 바꾸기도 했다.

이제는 어엿하게 서귀포 대표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은 이중섭거리의 ‘예술벼룩시장’. 2008년 처음 시작해 60회가 넘게 진행된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었다. 커피숍과 공방 복합 문화공간이 들어서는 토대를 마련했다.

돈 없는 예술인들이 빈집에 머물 수 있도록 빌려주는 ‘예술가 레지던스’나 술 팔던 단란주점을 커피 파는 ‘카페’로, 다방을 ‘공방’으로 고쳐 쓰면서 빈 터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했다.

▲ 문화도시공동체 쿠키의 이승택 대표(43). ⓒ제주의소리

이 모든 변화가 하루 아침에 ‘뚝딱’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러한 변화 한 가운데에는 산도 강도 변하는 10년 간 쿠키의 ‘맛’을 내기 위해 동분서주한 이승택 대표(43)가 있었다. 

서귀포가 고향인 이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대학 졸업 후 건축설계사로 일하다 서른두 살이던 2000년, 좀 쉬어보자며 아내를 데리고 고향 제주에 내려왔다. 어디서 살까 둘러보다 찾은 곳이 ‘월평 마을’이었다. 감귤과 백합 농사가 주를 이룬 조용한 마을에서 부부는 3년을 살았다. 포구를 산책하며 삶의 위안을 얻었고, 소나무 밭을 거닐 때면 ‘여기서 페스티벌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어쩌다 건축가가 문화기획에 손을 댔을까. 그는 서울 살면서 고향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는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아내의 건강을 되찾고 공부도 계속 할 겸 3년의 제주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고 나서야 “뭐라도 해야겠다”고 번뜩 정신이 들었다.

그렇게 3년 간 숱하게 제주와 서울을 오갔다. 그러다 덜컥 2006년 서귀포시 구 보건소 근처에 갤러리 하루를 열었다. 이 소식을 듣자 주변에선 말리는 이들이 많았다. “서귀포에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대표 생각은 달랐다. 아무 것도 없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팔을 걷어 붙이고 나니 서귀포 걸매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2007)를 맡아 달란 주문이 왔다. 쇠퇴하던 산비탈 마을에 최소한의 손길로 새 색깔을 입혀냈다. 이 프로젝트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 대표는 못내 아쉬웠다. 지역주민과 소통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문화와 그 어떤 예술을 입혀놔도 섞이지 못하고 겉돌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름의 매뉴얼을 터득한 결과 빚어낸 작품이 ‘월평마을 프로젝트’다. 3년 간 지역 주민들과 살 부비며 지내기도 했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내 필요 이상으로 머리를 맞댔다.

2008년엔 이중섭거리에서 서귀포예술벼룩시장을 열기 시작했다. 중고 물건을 사고파는 여느 벼룩시장과는 달리 손수 만든 공예품들이 좌판을 메웠다. 한쪽에서는 즉석 공연이 흥을 돋웠고 한쪽에서는 작가와 시민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꾸려졌다. 말 그대로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맛있는 쿠키를 굽기 위해서는 아무리 밀가루가 좋아도 ‘이스트’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이 구워내는 쿠키 역시 아무리 뜻이 좋다 해도 예산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제대로 부풀지 않는다. 월평의 경우 해를 거듭하며 지원금을 얹어 받았다. 예술인집 레지던시 역시 행정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수월하게 일이 이뤄졌다.

주변에선 “어떻게 그렇게 나랏돈을 척척 받아오냐”며 비결 좀 가르쳐달라 옆구리를 찌른단다. 그러나 이 대표는 “비결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일상 틈틈이 떠오르는 구상을 적어뒀다가 기회를 만나면 터트릴 뿐이라고 했다. 월평마을 프로젝트가 그랬다. 소나무 밭을 거닐다 ‘여기서 페스티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기회를 만나 프로젝트가 됐던 것이다.

▲ 문화도시공동체 쿠키의 이승택 대표(43). ⓒ제주의소리

그는 하루가, 일주일이 짧기만 하다. 보통 주초에는 서울에서 설계일을 맡아 하다가 수요일에는 제주에 내려온다. 금요일 저녁엔 서울로 올라가 가족들과 주말을 보낸다. 명함도 여럿이다. 갤러리 하루의 대표이자 문화도시공동체 쿠키의 대표이면서 제주대와 건국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 때로는 조형물 작업도 진행하느라 사장님이라 불릴 때도 있다. 

때문에 그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도 “어디 소속이세요?”다. 이 대표가 “서울 가면 나더러 제주도 사람이라고 하고, 제주도에 오면 서울 사람이라고들 한다”고 불평 아닌 불평을 한다.

이 대표가 말을 잇는다. “종종 아내도 내게 ‘뭐하는 사람’이냐 묻곤 한다. 건축을 하다 보니 문화예술이 보였고, 이제는 복지 영역도 눈에 띈다”며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뜻 아닐까”라고 조곤조곤 설명한다.

그가 ‘서귀포’라는 도시를 굽기 시작한지 올해로 만 10년째다. 그동안 뿌리고 거둔 일도 많지만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너무나 많다.

그는 일단 저지르고 보는 타입이다. 어떨 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긍정적이다. “진행하는 일이 잘 안될 때도 있지만 일부러 최면을 건다. 될 거야. 잘 될 거야.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다 보면 정말 잘 되는 일도 있다”고 이 대표가 털어놓는다. 때로는 ‘허풍 떤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단다. 어떤 이에겐 그가 늘어놓는 이야기들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10년 내로 예술인 마을 공동체를 꾸리면서 그 안에서 수익을 낼 수 있게끔 하고 싶다. 차츰 자리를 잡아가면 물리적인 경계 없이 예술인들도, 지역 주민들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 말이다”라며 꿈을 말하는 그의 눈에 빛이 났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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