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우리 삶의 ‘블랙 아웃’을 피하는 방법

세계 경제를 강타할 유럽발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는데, 여름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여름이면 등장하는 ‘에너지 절약’이라는 구호도 어김없이 들려온다. 정부는 올해 때이른 더위로 예비전력이 400만㎾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이 여러 번 있을 것이라고 위기경보를 날리면서 에너지 절약을 강조한다. 과소비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전기요금도 인상할 계획이다.

무더위가 주는 짜증과 인내의 한계로 인한 에너지 과소비와 대규모 정전사태인 ‘블랙 아웃’의 공포감 속에서 한여름을 보내야 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한여름 들어서 부족한 전력상황과 에너지 과소비를 자초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면 매년 ‘블랙 아웃’이라는 말은 반복 될지도 모른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말한 대로 ‘비상사태는 예외가 아니라 상례’가 되고 있다.

전력수급 불균형은 정부가 자초한 결과다. 전력수요는 지난 10년간 80% 가량 폭증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했다. 정부가 발표한 제3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06~2020년)은 2006~2011년 연평균 전력수요 증가율이 2.4%인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4%가 넘었다. 그 결과 국민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세계 최고라는 미국보다 더 많아졌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08년 세계 9위에서 2010년에 7위까지 올랐다.

그동안 우리에게 에너지는 흥청망청 써도 되는 자원 정도로 인식되었다. 정부는 성장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에너지 과소비의 경제 환경을 만들어 고착시킨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업은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에너지 절약보다는 저렴한 가격으로 전력을 사용하여 생산비를 줄이려는 타성에 젖어 있다. 전기료를 올리면 생산성이 낮아 기업 못해먹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30대 재벌그룹이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전기료를 할인받은 금액은 약 3조8천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주택용 전기는 산업용보다 50%나 비싸다. 개인은 자기 만족적 소비문화에 젖어 경쟁적으로 편리함만을 추구하다보니 에너지 낭비가 습관화되어 있다.

공론의 장에서 에너지 문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언론의 책임은 막중하다. 정부가 원자력을 에너지 위기에서 구해줄 유일한 대안으로 여기고 원전 건설에 몰두하고 있는 일에 일부 언론은 적극적으로 성원하고 있다. 일본 원전사고 이후 사고비용을 감안한 경제적 부적합성과 전 세계의 탈원전 추세를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서구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 에너지에서, 우리는 가공할만한 위험이 내재된 재생 불가능한 원자력에서 해법을 찾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언론은 에너지 문제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사회적 자기 조정기능의 활성화에 기여해야 한다. 언론은 우리가 넓은 세상을 보고 이에 대한 인식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언론은 여름철에 기온이 조금만 올라도 ‘가마솥’, ‘찜통’ 등으로 더위를 선정적이고 과장하여 보도하는 관행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표현은 사람들의 체감온도를 부채질하여 냉방기기에 대한 의존도만 더욱 높여줄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낭비는 이러한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무리 전기요금과 석유가격이 올라도 ‘중독’ 수준인 소비행태를 획기적으로 바꾸기가 아주 어려운 일이 되었다. 우리 사회의 자기 조정기능이 실종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정부를 비롯하여 기업, 국민, 언론 모두가 합심하여 에너지 절약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국민들에게 에너지 부족을 빌미로 공포심을 유발시키고 절약만 요구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정부는 에너지 블랙홀인 유리로 덮인 공공청사의 방치 등 앞장서서 에너지를 펑펑 쓰게 만든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하에 에너지 절약 분위기를 만들어 지속 가능한 문화로 만드는 일이 급선무다. 전력요금도 정치적 요소를 배제하고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허상이 낱낱이 드러난 원자력에 의지하여 지금처럼 값싸게 전기를 과소비하는 프레임에 갇혀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절약 정책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재생에너지 등 미래지향적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인가. 현재를 위해 미래를 포기할 것인가의 문제다. 미국의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이제 인간은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원을 떠나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옮겨가려는 시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고정 관념을 깨고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올 여름 우리 주변에는 에어콘 덜 쓰기, 쿨비즈 등 에너지 절약을 위해 직접 행동해야 할 일들이 널려 있다. 파국이 오기 전에 지금 당장 실천에 돌입해야 한다.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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