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여성주의, 그리고 페미니즘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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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포터 감독 <올란도>. 영화에서 올란도는 남성적인 영역의 감각과 사고, 여성적인 영역이라 불리는 감성과 직관을 함께 갖춘 양성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출처 네이버 포토)

<김정숙의 제주신화> 25 자청비 여신 원형 ⑤

개인의, 사회와의 조화


자청비는 개인의, 사회와의 조화를 보여주는 원형이다.


자청비가 처음 그녀가 남장을 한 것은 그녀 속에 불현듯 찾아온, 사랑이라는 단순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다.

남녀 간의 사랑은 사적이고 배타적인 것이어서, 사실 사회 속에서 공정하고 분별 있게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의 과정 역시도 여성성의 체화 →양성성의 수용 →인간성의 실현이라는 창조적인 모습으로 사랑을 완성해낸다. 그 모순 많은 개인의 사랑도 그녀는 사회의 ‘인간’을 이루어내며 완성시켜 가는 것이다.

남성들에 의해 여성들이 억압당하고 있다면, 사실 남성 역시도 억압된 상태일 것이다. 가부장제는 남성에게도 억압이 되고 상처가 된다는 점에서 여성과 남성은, 또한 세상 속에 존재하는 여러 구분들은, 이제 다르게 생긴 이유로 한쪽은 억압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풍요로운 삶의 주체로, ‘따로 또 같이’ 존재해야 한다.

▲ 샐리 포터 감독 <올란도>. 영화에서 올란도는 남성적인 영역의 감각과 사고, 여성적인 영역이라 불리는 감성과 직관을 함께 갖춘 양성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출처 네이버 포토)

여성 담론, 평등의 담론들이 내거는 많은 부분을, 우리는 이 옛날이야기인 자청비에게서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특성들을 잃지 않으면서,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인간이라는 하나의 관점에서, 의미심장한 타자로서 남성들도 인식하고, 의미심장한 타자로서 또 다른 여성들도 인식하면서, 인간으로서의 평등과 권리를 함께 나누는 지속가능한 여성주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여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과 성과를, 자청비가 그랬듯, 더 어리고 더 가난한 약자들, 여러 지역, 여러 분야, 여러 계층과 통섭의 미를 이루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도령의 하얀 고운 손을 바늘로 콱 찌른 뜻은?


앞서 살폈지만 신화에 나오는 자청비의 여러 선택들은 자청비라는 여성 개인의 사적인 선택이었지만, 여성집단과 사회 전체의 발전과 대치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에 기여한다. 서천꽃밭의 막내딸과 같은 더 약한 여성, 쟁기로 밭을 가는 가난한 노인들과 같이 가는 선택이었고, 남성들과 같이 가는 선택이었다.


한편 자청비는 죽을 고생을 하면서 사랑하는 문도령을 만나게 된다. 문도령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 설레고 기쁜 일이었지만, 자기를 찾을 생각도 안하고 멀뚱히 살아갔던 문도령이 한편으로는 너무 얄미워서 문도령의 가늘고 하얀 고운 손을 바늘로 콱 찔러버린다.(자청비를 찾아온 문도령이 창구멍으로 자신을 들여다보자 자청비가 문도령의 눈을 콕 찔러 버렸다고전해지기도 한다).


온갖 고생과 수모를 다 겪으면서도 문도령을 찾고, 만날 수 있기를 절절히 원하면서, 손이 무너져라 베틀을 짜면서 온갖 고생을 다했는데, 그동안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었던 문도령의 가늘고 하얀 고운 손이 싫었고 얄미웠던 것이다. 


온갖 고생을 한 페미니즘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를 했다고 인정한다면, 이 세상의 반이나 되는 남성들이, 문도령처럼 모르는 척 떡고물만 받아먹으면서 좋아진 세상을 맞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자청비의 일침이리라. 그녀는, 페미니즘의 남은 숙제는 문도령 자신들의 남성주의에 대한 숙고, 수많은 토론과 싸움, 실천과 같이 갈 수 있으리라 희망한다.<계속>/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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