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라도 창작스튜디오 기획자 소설가 조중연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 걸어서 한 바퀴를 돌아도 1시간이 채 안 걸리는 이 조그만 섬은 몇 해 전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광고 문구 덕에 관광객들이 물밀듯 몰려들고 있다. 그랬던 마라도에 이젠 문학인들이 짐을 싸들고 줄줄이 발길을 잇고 있다. (사)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회가 지난해 처음 시도한 ‘마라도 창작 스튜디오’ 덕분이다.

예부터 제주도는 섬 전체가 거대한 감옥이었다. 조선시대 최대의 유배지여서 천형의 섬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런 곳에서 오히려 ‘예술가’로 터닝 포인트를 맞았던 추사. 그래서 마라도 창작스튜디에오에는 ‘자발적 유배의 시간’는 카피가 붙었다.

▲ 마라도 선착장에서 7분 가량 걸어들어오면 '마라도 창작스튜디오' 팻말이 보인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 마라도 유일한 절, 기원정사에 위치한 '마라도 창작스튜디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마라도 창작스튜디오의 위치는 마라도 유일한 절인 기원정사다. 하필이면 ‘절’. 몇몇 문인들이 이따금씩 이곳으로 몸을 숨겨오곤 했었다. 지난해 혜진 스님이 제대로 해보자며 별채를 내줬다. 그렇게 시인 김수열이 운영위원장을, 소설가 조중연이 기획자를 맡아 지난해 7월 문을 열었다.

듣기만 해도 감수성이 돋아나는 곳 제주도, 그것도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에서 두 달간 공짜로 머무르며 글을 쓸 수 있다니. 작가들에겐 귀가 솔깃할 조건이다. 소문도 제법 나서 이달 문을 열자마자 올해 내내 예약이 찰 정도로 반응이 좋다.

▲ 마라도 창작스튜디오 작가 입주실. 책상과 선반, 이불 정도로 단출한 규모가 '유배' 이미지를 더욱 굳힌다. <사진출처=마라도 창작스튜디오 카페>

창작스튜디오 내부 다섯 개의 방에는 용눈이, 왕이메, 다랑쉬, 사려니, 도너리 등 제주 오름의 이름이 붙었다. 책상 하나, 옷걸이, 선반 하나가 끝이다. 제 몸 하나 뉘이면 꽉 들어찬다. 호사스런 제주 여행이 아니라 말 그대로 ‘유배’ 생활에 꼭 들어맞는 규모다. 하루 두 번 제공되는 식사도 단출하다.

이곳 마라도 창작스튜디오의 기획자 겸 방지기인 조중연 작가가 살림을 꾸려간다. 지난해엔 며칠 걸러 한 번씩 드나들다 올해는 아예 짐을 싸들고 이곳에 들어왔다. 누군가에게 맡겨놓기가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탓이다. 청소나 식사 준비 등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실은 ‘별것’인 일은 죄다 도맡아 한다.

▲ 마라도 창작스튜디오 기획자인 제주작가지회 소속 조중연 작가(41). 스튜디오 살림을 도맡아 살피는 한편 창작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제가 별로 하는 건 없어요”라 하더니 입주 작가들이 뭐가 필요하다 말을 흘리면 알아서 척척 해낸다. “지난해 급하게 진행하느라 시행착오가 종종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바뀔 것들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작가들이 생활하다 부딪히는 문제들은 나만 고생하면 될 일”이라고 조작가가 머쓱해하며 대답한다.

조 작가는 제주가 고향이 아니라 ‘충남’ 출신이다. 서귀포에 반해  그때가 2003년이니 10년이 가까워간다. 재미로 간간이 쓰던 소설을 제주에 와서 등단하게 됐으니 그에게도 제주 생활은 추사와 같은 ‘터닝포인트’였다. 자발적 유배라는 카피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책 한 권 못 냈는데 무슨 소설가냐며 손을 내저었지만 그는 천상 작가다. 마라도 들어오면서도 서른 권은 족히 자료를 챙겨왔다. “재미나서 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조 작가는 역사적 사실(fact)과 가공의 이야기(fiction)를 섞어 쓰는 ‘팩션’이 주특기다. 창작스튜디오 자잘한 업무를 마치고 나면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짓는다.

조 작가는 “지난해 한 작가 중 몇 년 간 글을 쓰지 못했던 작가가 결연한 의지를 갖고 마라도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앞으로도 쓰고, 쓰지 못한다면 절필하겠다는 각오였다. 며칠 만에 끙끙 앓으며 글을 쓰더니 재기(?)에 성공하고 나갔을 때는 작가로서 부럽기도 하고 운영자로서 뿌듯하기도 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은 마냥 낭만적이거나 환상적이지만은 않다. 나무 그늘 하나 없는 마라도는 오히려 ‘극한’의 상황에 치달을 때가 많다. “아무생각 없이 오게 되면 이틀 만에 한계에 부딪힌다. 오후 다섯시면 시끌벅적하던 섬이 조용하기 이를 데 없다. 하나 있는 편의점까지 문 닫고 나면 뭐 하나 사기 어려운데다 집 밖에 나서면 휑하다. 거기에서 본성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 조 작가는 자전거 한 대로 마라도를 누빈다. 그늘 하나 없는 이곳 마라도에서 선글라스는 필수.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조 작가가 말을 잇는다. “미술 레지던스와 달리 문학관이나 창작실은 중앙이나 지자체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줘도 잘 안 된다. 미술이나 기타 예술 장르는 갖가지 재료가 필요하지만 문학은 해봤자 원고지 정도다. 때문에 잘해야 본전이고 적자나 안 나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미술처럼 눈에 보이는 ‘창작물’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책 한 권이 결과물이다. 때문에 창작스튜디오가 들어온다고 해서 마을 분위기가 극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드물다.

조 작가는 “소설 같은 경우는 초고 쓰는 데만도 빨라야 3개월이다. 고작 두 달 머문다고 ‘탁’ 하고 성과물이 나올까. 혹여 글줄 쓰지 않고 가만히 쉬다만 가더라도 큰 이득”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사서 고생하는 이유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틀을 우리 스스로 깨부수기 위해서다. “제주라서 안 돼”라던 변방 컴플렉스를 떨치고 제주 안팎의 작가들이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받는 계기가 이곳 마라도에서 시작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조 작가는 ‘비보의 섬’이란 단어를 유독 강조했다. 기가 허한 곳의 기운을 북돋워 사악한 기운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풍수의 ‘비보’. 마라도가 작가들의 영감이나 나약한 마음의 힘을 북돋워주는 섬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짜장면집으로 즐비한 마라도를 방 다섯 칸짜리 창작스튜디오가 하루아침에 예술이 피어나는 곳으로 바꾸기는 분명 어렵다. 그러나 변방의 섬이 아닌 제주의 ‘문학적 자존심’을 걸고 조 작가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밥 짓고 글 지으며 스튜디오를 지킬 것이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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