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의 글로벌경제> 라인 캐피탈리즘(Rhine Capitalism)

앵글로색슨 자본주의에서는 금융의 중심에 증권시장이 있다. 은행을 경유하여 자금이 매개되는 간접금융시장이 증권시장의 발달에 따라 은행을 배제하는 직접금융시장으로 대체된 것이다.

은행들도 주업무가 가계와 기업을 상대로 하는 예금은행 업무로부터 주식이나 채권을 다루는 투자은행 업무로 변화했다. 이 두 가지 이질적 업무를 엄격히 구분하였던 과거의 제반 규제들은 영국의 빅뱅에 이어 미국의 금융자유화 입법으로 폐기되거나 완화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시장의 완벽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또한 그 믿음 뒤에는 정보의 완벽성이라는 가설, 즉 시장 참여자들은 의사결정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시장에서 개개인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양질의 정보를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는 사상 최대의 사기극으로 기록된 미국의 버나드 메이도프 사건과 알렌 스탠포드 사건이 말해 준다.

각각 150년 및 110년 실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 이 황당한 사기꾼들의 피해자들은 무지렁이 개미군단이 아니라 사회 저명인사 또는 자선단체들이었다.

정보의 부족을 보완한 것이 신용평가기관의 등장이다. 투자결정에 필요한 직접지식의 결여를 전문기관이 제공하는 간접지식으로 대체하자는 것인데 금융은 직접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장 정보는 간접화의 길을 걸은 것 자체가 매우 아이러니하다.

그러면 이들이 제공한 간접지식은 얼마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 최근 블룸버그사가 지난 38년 간 314개의 경우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그 중 47%는 신용등급 변화와 실제 가격의 변화는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였다.

또한 미국 금융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인 서브 프라임 모기지 증권에 대한 엉터리 신용등급도 잊을 수 없다.

간접지식에 의존하는 직접금융의 한계

이들이 트리플 A 등급을 부여한 증권 중 37%가 휴지조각으로 날아갔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간접지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다.

예를 들어 120만개의 주택 모기지 대출을 모아 180개의 구조화 증권을 만들어 낸 경우, 다시 말해 하나의 유가증권 안에 6000개 이상의 담보물건이 깔려 있는 상품에 대해 과연 누가 그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겠는가?

지난주 무디스는 세계 초일류 은행 17개의 신용등급을 크게 강등시켰다. 서브 프라임 사태의 수모를 만화하려는 안간힘이었다는 평, 시장이 이미 가격에 반영한 뒤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평가절하, 나아가 불난집에 부채질하기라는 등의 비아냥이 있는가 하면, 이 회사의 조치를 옹호하는 평도 없지 않다.

무디스는 초대형 은행들이 아직도 고수익-고위험 장사에 손을 대고 있음을 가장 큰 위험요소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설마 나를 죽이지는 못하겠지'라는 거대은행들의 오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어쩌면 2년 전 떠들썩하게 출발했던 미국의 금융개혁 법안이 월 스트리트의 막강 로비에 밀려 아직 시행되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비아냥이 숨어 있는 것인지 모르는 발언이다.

어찌됐던 금융시장에서 정보의 완벽성 가설은 붕괴되고 있고 그로 인하여 은행을 거치지 않는 직접금융시장이 과연 사회적 자본의 합리적 배분이라는 금융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뒤 따른다.

라인 모델에서는 은행이 금융의 중심

라인 모델(Rhine model)은 독일 자본주의의 모델이라고도 한다.

앵글로색슨 신 자유주의 모델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 중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금융의 중심에 증권거래소가 아니라 예금은행이 있다는 점이다.

은행이 거래기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보의 질은 시장에 나도는 정보의 질과는 비교가 안된다. 은행은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주는 차원에서 나아가 기업의 성장을 지도하고 이끌어 주며 성장성이 인정되면 기업의 유상증자에도 참여하며 사외이사를 파견하여 경영지도를 하기도 한다.

▲ 김국주 前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내일 브뤼셀에 모이는 유럽정상들은 다른 건 몰라도 유럽은행 공동감독 및 통제기구(Banking Union)를 만드는 데는 진전을 보아야 한다. 주권국가의 재정을 감독 통제하는 중앙 기구를 만드는 작업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 이전에 금융을 안정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은행을 살리는 게 우선이다.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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