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지거나 그늘지지 않은, 그대로의 여성(女姓) '자청비'
감춰지거나 그늘지지 않은, 그대로의 여성(女姓) '자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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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골로 짠 가리개를 쓰고 거리로 나선 여인.(출처. 네이버 블로그 br8412).
내외용 쓰개인 장옷을 쓰고 있는 여자(출처/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혜원풍속도).

<김정숙의 제주신화> 26 자청비 여신 원형 ⑥


자청비. 개방적, 도전적이며 자기기획적인 여성 원형


자청비 원형은 개방적이고 도전적이며 자기기획적인 여성 원형이다. 그녀가 자기애를 가지고, 이 자기애를 구체적으로 추구할 의도로 이루어진 외출에서 남성을 만난다는 것, 사랑의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그녀는 손을 곱게 하고 싶어서 못에 빨래를 하러 간다. 그녀가 원하는 ‘예쁜 손’은 예쁜 외모이기도 하고 능력을 추구하는 손이기도 하다.


문도령은 글공부를 하러 가는 도중에 목을 축이려 자청비가 있는 샘에 들렀다. 문도령이 자청비에게 물을 달라고 하자 자청비는 물바가지에 나뭇잎을 띄워 건넨다.


샘이라는 장소와 이야기의 흐름은 다분히 성적인 암시를 품고 있다. 자청비의 외출이 지극히 여성적인 것이었다면 문도령 역시 지극히 남성적인 외출의 와중이었다. 인간, 여자와 남자. 젊은 청춘들, 감탄과 호기심, 현재와 꿈꾸는 미래 속에서 사랑이 시작된다. 


가면도 필요없고, 쓰개치마도 필요없는…

 
사회의 질서는 사랑에 대립되었다. 사실 사회는 애초에 사랑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남성과 여성이 얘기를 건네는 것은 방자한 짓이요, 집안에 존재하는 여성과 성공의 길을 떠나는 남성은 서로 만날 수가 없었다. 쓰개치마로, 가리개로, 부채로 서로 가렸다.

한반도 지역 여성들의 남성들에 대한 내외의식, 불평등의식은 사유재산과 유교적인 질서가 고착화되어가면서 더욱 심해졌다. 남녀칠세부동석이나 부부유별의 습속이 엄격한 사회에서 외간 남자와 여자가 얼굴을 맞대고 말을 건넨다는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여성들은 얼굴과 몸을 가리고 다녀야 했다.

인간 감성을 존중하는 자유로운 그녀는 도그마화된 것들에 의해 인식의 지평이 제한되는 것에 반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왕골로 짠 가리개를 쓰고 거리로 나선 여인.(출처. 네이버 블로그 br8412).

문도령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물바가지에 물을 건네며 나뭇잎을 물에 띄워 준 그녀에게 ‘무슨 까닭에 물에 티를 넣고 주느냐’고 문도령이 묻자, 현상에 갇힌 그에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도령님아’라고 응수한다.


그녀의 성은 감추어져 있거나 그늘져 있지 않다. 가리고 숨기기는커녕, 예쁜 손을 만들기 위하여 그녀는 ‘가지 말라는’ 밖으로 나갔다. 여성에게는 금지되어 있는 공부를 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하여, 남장을 하고 사랑하는 문도령을 쫓아간다. 그리고 남성만의 영역이었던 글공부에서 남성을 압도한다.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자청비는 이미 고착화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부모를 설득시킬 뿐 아니라 거짓말도 한다. 그녀는 문도령이 15세가 안 되었다고 부모에게 거짓말을 함으로써 문도령을 자신의 방에 들여놓았다. 샘에서 먼저 목욕을 제안하는 것도 자청비이다.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문도령을 맞이하여 만단정화를 푸는 것도 그녀에 의해서다. 술 석 잔 마시며 첫날밤을 보내자고 제안하는 것도 그녀다. 자청비의 집에도 몸종이 있었지만 ‘향단’이 같은 중간자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오해와 편견을 딛고 개방적이고 도전적으로 자기를 기획한다./김정숙(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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