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미의 문학카페> 16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의 「아미엘의 일기」 

   

장맛비가 잠시 그치고 폭염이 밀려온다. 숲 자락을 씻고 지나가는 비구름이 저 산을 넘을 때쯤 텃밭 고추는 푸른 독기를 품은 채 맵싸하게 익어갈 것이다. 자꾸만 늘어지는 몸과 마음을 일으키며 산 아래 가부좌를 한 바위처럼 허리를 세워본다.

 지금 내 생의 시계추는 어디쯤 가리키고 있을까. 방금 산과 산 사이 잠깐 비추었던 무지개처럼 오색찬란하다 빛을 잃고 말 것인가. 이럴 때일수록 눈을 씻고 정신을 맑게 해야 할 것이다. 철저히 홀로인 채 되도록 단순하게, 그럴 수만 있다면 순수하게 세상과 마주할 일이다.

 사는 게 번잡하고 혼란스러울 때 가끔 꺼내보는 책이 있다.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의 「아미엘의 일기」이다. 거의 책 전부가 밑줄이 쳐져있을 정도로 나에게는 죽비 같은 책이다. 150년도 넘은 시간 속에 살았던 한 철학가의 눈은 초롱초롱하다 못해 날이 서 있다. 흐느적거릴 때마다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기상나팔을 불어대곤 한다.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은 스위스의 프랑스계 문학가이자 철학자이다. 1821년 9월 27일 주네브에서 출생했으나 1832년 11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1834년에는 아버지마저 잃고 고아가 되어 숙부가 양육한다. 1838년 주네브 대학에 입학해 1839년 6월 24일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다가 곧 중단한다. 1841년 주네브 대학을 졸업한 그는 1843년 봄 파리로 떠나 프랑스 북부에서 벨기에, 네덜란드를 거쳐 10월에는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입학한다. 1847년 12월 16일 아미엘은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 이 일기는 1881년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아미엘의 일기」는 그가 42년 동안 쓴 일기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쓸쓸함과 고독을 즐긴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은 1만 7천여 페이지에 이르는 일기를 남겼다. 그 방대한 양의 일기에는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부터 인간, 사랑, 일기, 고독과 비애, 행복, 사상, 죽음에 대한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일기는 1883년과 1923년, 두 차례에 걸쳐 책으로 출판되었다. 당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보여주었던 병적인 우수와 낭만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끊임없는 자기와 세계와의 정면 대결을 통해 보편적 우주와 생명관, 무한과 절대에의 동경을 예리하게 파헤치며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한 작가로도 평가받고 있다.

 톨스토이는 그의 일기를 두고, '일기문학의 정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아미엘은 생전에 그렇게 이름 있는 문학가나 철학자가 아니었다. 제네바 대학에서 미학과 문학을 강의했던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대학교수임에도 그는 다락방을 전전하는 궁핍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필연적으로 고독과 싸울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일기는 자신을 구원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진실한 언어였다.

 아미엘의 삶은 단순했다. 그의 유일한 낙은 책을 읽고, 자연과 대화하고, 일기를 쓰는 일이었다. “일기는 내 곁에 머물러주는 연인처럼 내 영혼을 시리게 하는 슬픔에 귀를 기울여 준다.”고 그가 말한 것처럼, 그에게 일기는 자기 자신의 삶의 기록이며 고독의 산물이었다. 때로는 기쁨을, 때로는 슬픔을 쏟아내며 그 안에서 자신을 다독이기도 하고, 냉철하게 꾸짖기도 한다. 아미엘에게 일기는 일종의 기도이며 채찍이며 거울이었다. 또한 자기 삶의 가장 진실한 친구였으며 정신적 동반자 또는 주치의였던 것이다.

 평생 독신으로 산 아미엘에게도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1859년 봄 38세의 아미엘은 알지 못하는 어느 여성으로부터 익명의 편지를 받는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여성과 애정을 나누게 되고, 평생 처음으로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 여인과의 교분은 1871년까지 계속되다가 파국을 맞아 그녀는 작별인사도 없이 독일로 사라진다. 그러다 1875년부터 그의 지병인 기관지 카타르가 악화되면서 1881년 4월 29일자로 34년 간 기록해온 일기는 종지부를 찍게 된다.

 작품 속 책갈피...

비밀의 법칙, 식물과 같이 하라. 사상이든 감정이든 온갖 네 안에서 싹트는 것은 어두운 곳에 보관해 두고 완성된 후기 아니면 밝은 곳으로 드러내지 말라. 자연의 신성한 일 잉태는 어느 것이나 순결, 침묵, 암흑이라는 세 개의 베일에 싸여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신비를 존경하라. 성장하며 생활하고자 한다면 너의 뿌리를 노출시키지 말라. 네 안에 신비의 몫을 남겨두라.

그렇게 언제까지 너 전체를 삽으로 낱낱이 파헤치지 말라. 너의 가슴 한 구석에 바람에 날려 오는 종자를 위해 휴경지를 조금 남겨놓고 날아오는 하늘의 새를 위해 약간의 숲을 남겨두라. 너의 마음속에 기다리지 않는 손(客)을 위해 자리를 남겨 놓고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해 제단을 쌓아라. 새가 너의 숲 사이에서 울더라도 길들이겠다고 급히 다가가지 말라. 사랑이든 감정이든 무슨 새로운 것이 너의 깊은 안에 눈뜨기 시작했다고 생각되더라도 황급히 빛이나 시선을 보내지 말라. 돋아나는 새싹은 망각으로써 지키고 평화로 에워싸고 그 밤을 짧게 하지 말고 혼자서 형태를 취하고 성장하도록 하고 너의 행복을 선전하고 다니지 말라.

(중략)

하나의 봉오리는 한 번밖에 피지 않는다. 하나의 꽃이 한창 때는 순간에 불과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신의 꽃밭에도 하나의 기분에 제각기 꽃 시절의 순간이 있다. 즉 미의 극치를 이루며 위엄을 빛내는 일순간이 있다. 하나의 별은 밤에 한 번밖에 머리 위에 자오선을 통과시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지의 하늘에 있어서도 하나의 사상에 일순간밖에 하늘 꼭대기에 도달하는 시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때 별은 광휘를 발휘하고 장려함을 다하는 것이다. 예술가여 시인이여 사상가여, 이 순간을 노려 사상, 너의 마음을 포착하여 안고(安固)하고 영원한 것으로 만들라. 이것이야 말로 그 지상의 기회인 것이다. 이 순간보다 전에 있어서는 희미한 윤곽, 캄캄한 예감밖에 파악하지 못하고 이 순간보다 이후에는 희미해진 추억, 무력한 후회밖에 손에 들어오지 않으리라. 이 순간이 이상의 순간인 것이다. - 아미엘의 일기 중에서-

 요즘은 일기를 쓰는 사람이 드물다. 학생들도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일기와는 멀어진다. 일기 검사가 인권침해 논란이 되면서 학교에서도 일기를 쓰라고 지도한다거나 검사를 하지 않는 추세이다. 그렇다고 일기 검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일기를 검사하든 안하든 일기 쓰기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학생들에게만 국한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기 쓰기는 가장 진솔하고 허심탄회한 나와의 대화 기록이다. 자신과 대화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 또는 세상과 대화하고 공감할 수 있겠는가. 일기를 쓰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 밭을 휴경지로 만들어 버리는 꼴이다. 책을 읽는 것이 자신의 마음 밭에 비료와 거름을 주는 일이라면 일기를 쓰는 일은 씨앗을 뿌리는 일에 비유하고 싶다.

 「아미엘의 일기」를 다시 펼치니, 문장 하나하나가 장대비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싸락눈처럼 내 등짝을 후려치기도 한다. 아프다고 하면 어느새 부드러운 손등이 내 이마를 짚고 있다.

 이것이 아미엘의 일기가 주는 감동이다. 그 어떤 문학이 주는 감동보다 실제적이며 영혼의 울림이 크다는 점에서 나는 아미엘의 일기를 고전 중의 고전이라 평가하고 싶다. '이 일기는 남에게 읽히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추억의 실마리로 삼기 위해 쓴 것'이라고 그는 고백했다.

 그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일기를 쓰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나에게는 그의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글을 쓰지 말라! 두고두고 새겨두어야 할 말이다. 글은 자기를 위해 쓰는 것이며, 삶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다! /강은미

 

 
▲ 시인 강은미.

 시인이자 글쓰기 강사인 강은미씨는 2010년 <현대시학>에서 ‘자벌레 보폭’ 외 4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 제주대학교 창의력 글쓰기 지도자 과정 강의를 비롯해 NIE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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