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경제칼럼> 구미(歐美)의 초조, 중국의 여유

6월 29일 유럽 정상들이 이룩한 합의는 유로 존 창설 이래 가장 두드러진 발전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는 유럽안정기구(ESM)가 부실은행의 자본금 확충을 위하여 직접 자금을 투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금액은 해당국 정부의 부채로 계상되지 않으며 따라서 정부가 상환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서가 붙는다. 유럽은행을 통합 감독하는 단일기관을 설치한 다음에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스페인과 같이 당장 자금이 필요한 경우는 일단 현행 규정에 따라 스페인 정부계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제대로만 된다면 이 자금이 한시적으로는 스페인 정부의 채무를 증가시키지만 조만간 새 기관에 떠넘기고 나면 스페인 정부의 채무는 원래대로 줄어든다. 이와 관련하여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 부주필 볼프강 문차우는 전혀 다른 의견이다. 유럽은행 통합감독의 궁극적인 목적이 유럽은행의 공신력 회복에 있다고 한다면 여기에는 은행예금보호의 약속이 뒤따라야 한다.

신조어로 채무공동화(debt mutualization)라고 하는 이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각 회원국의 헌법과 유럽 내 여러 조약의 수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남의 나라 빚을 감당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독일의 여론을 달래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다.

당장 위기 해법으로 내놓은 것의 운명을, 언제가 될지 모르고 불확실하기도 한 장래에 걸었다는 점을 들어 문차우는 이번 유럽정상 합의를 가장 무책임한 합의로 평가절하한다. 홍콩상하이 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픈 킹도 지적한다.

불황도 나름대로 경기변동 사이클에서 차지하는 자기 역할이 있는데 조급하게 불황 탈출을 원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를 주축으로 하는 통화정책은 불황 탈출을 앞당기지도 못할 뿐 아니라 또 다른 위기의 씨앗을 키우고 있다고 말한다.

갈길 먼 유로 존 채무공동화

눈을 돌려 미국을 보면 어떤가? 6월 말의 실업률이 8.2%로 전월에 비해 조금도 낮아지지 않았다. 금년 경제성장률도 이제는 2%를 넘지 못할 것으로 낮추어 보고 있다.

크루그만 교수는 이제까지의 자기의 말에 메아리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제는 '매니페스토'라는 제목을 붙여가며 호소의 글을 주요언론에 올리고 있다. 1940년과 1941년에 걸친 미국정부의 과감한 재정지출이 세계를 대공황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경험을 언급하면서 재정적자를 겁내지 말고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내용을 늘어 놓았다. 그는 이것이 2차 세계대전을 두고 벌어졌던 상황이었음을 알고 하는 이야기일까?

미국의 재정은 낭떠러지(fiscal cliff)를 향하여 다가가고 있다. 작년 8월 급조한 정부예산통제법에 따라 연말까지 의회가 정부부채삭감방안에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는 2013년 1월부터 전 예산항목에 대하여 무차별 강제 삭감에 들어가게 된다. 그 규모가 대략 미국 GDP의 4%에 달하는 큰 금액이다.

빨라도 11월 대선까지는 공화 민주 양당이 벼랑 끝 버티기를 마다하지 않을 것 같으니 크루그만 교수가 답답해 하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의 투자 결정은 방향을 잃을 수 밖에 없다. 고용이 늘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중국은 어떤가? 금년 1분기 기준으로 일인당 가처분 소득이 전년 동기대비 도시 10%, 지방 13%씩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전국 평균으로 집값/소득의 배수가 2009년 8.1에서 2011 7.4, 금년에 다시 7에 접근하고 있다. 수출에서 내수로 정책 전환을 표방한 중국으로서는 이럴 때 주택 건설부문의 숨통을 터 줄만도 한데 중국정부는 딴전을 피우고 있다.

부동산 거품에 선제 대응하는 중국

2010년부터는 대도시의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하여 한 가구가 집을 두 채 이상 구입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를 신설했는가 하면 지난 5일에는 중앙은행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도 주택 투기자금 대출을 철저히 단속할 것을 은행에 지시했다.

이것은 중국 경제성장에 15% 가까운 기여를 하고 있는 주택건설 부문에 찬물을 뿌리는 행위다. 차기 총리로 지목되고 있는 리커창 부총리도 부동산 거품이 사회혼란을 가져 온다며 이런 정부 정책기조에 흔들림이 없음을 최근 재확인했다.

▲ 김국주 前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내년 3월 공식출범할 시진핑 주석체제의 활동반경을 넓혀주기 위해 현재의 경기를 조이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선거로 정권이 교체되는 나라들은 재집권을 위해 정권말기에 오히려 선심을 쓴다. 이들과는 사뭇 다른 중국을 우리는 괄목상대(刮目相對)해야 한다.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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