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품은 달(mbc). 연우를 숨겨놓고 지내는 장면. 자청비 이야기에도 문도령은 자청비를 병풍 뒤에 숨겨놓고 만단정화를 나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숨어 지내는 일은 신화나 현실이나 비일비재한 일인 듯하다. 
또 하나. 제주신화 중 창조신화에 해당하는 <천지왕 신화>는 해도 둘, 달도 둘이어서 낮에는 더워 죽고 밤에는 추워 죽는 카오스의 혼란과 무질서를, 해도 하나, 달도 하나로 만들어 정연한 질서로서의 코스모스를 이루는 내용이 있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역시 해도 하나, 달도 하나인 정연한 질서로서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한다. 신화는 사람의 이야기다.
프랭크 오즈 감독의 스텝포드 와이프(네이버 영화 포토). 스텝포드가 살기 좋은 마을인 건 아내들을 말 잘 듣는 사이보그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형 같은 예쁜 옷차림과 몸매, 불평 한 점 없이 완벽하게 해내는 집안 일, 고분고분 순종하며 늘 화사한 미소를 짓는 아내들만 있는 스텝포드. 사회의 주도적인 지배자들은 이런 비상식적인 일을 끊임없이 감행한다.

<김정숙의 제주신화> 28 자청비 여신 원형 ⑧

자청비 여신 원형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는 여신 원형이다.   

겨우 문도령을 만난 자청비는 문도령의 방에서 만단정화를 나누면서 부모님에게 들킬까 병풍 뒤에 숨어 지낸다. 며칠이 지나자, 자청비는 묘안을 소상히 알려주며 부모님의 허락을 받을 수 있도록 문도령을 채근했다.

▲ 해를 품은 달(mbc). 연우를 숨겨놓고 지내는 장면. 자청비 이야기에도 문도령은 자청비를 병풍 뒤에 숨겨놓고 만단정화를 나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숨어 지내는 일은 신화나 현실이나 비일비재한 일인 듯하다.

문도령이 자청비에게 받은 묘안대로 부모님께 여쭈었다.
"새 옷이 따스합니까? 묵은 옷이 따스합니까?"
"새 옷은 보기는 좋지만 따습기는 묵은 옷만 못하다"
"새 간장이 답디까? 묵은 간장이 답디까?"
"달기는 묵은 간장이 달다."
"새 사람이 좋습니까? 묵은 사람이 좋습니까?"
"새 사람은 오래 길들인 묵은 사람만 못하다."
"그러면 부모님, 서수왕 따님에게 장가들지 않겠습니다."

부모님은 수수께끼의 뜻을 알아차리고 화를 내며 무서운 과제를 내걸었다. 쉰 자 구덩이를 파 놓고, 숯 쉰 섬에 불을 피워 작도를 걸어 놓고, 작도를 타 나가고, 타 들어와야 며느릿감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자청비와 서수왕 따님애기는 며느리로 인정받기 위해 작도 위에 올라 아슬아슬하게 칼날 위로 걸어 나갔다. 


여자에게만 내려지는 심사. “…. 그래야 며느리 감으로 인정하마”


자청비이야기에서 상식적인 행동들은 인정받지 못한다.

그녀의 묘안은 상식을 가지는 한 아주 간단한 물음이나, 칼 날 위에서 피를 보아야 했다. 

일방적으로 행동하는 못된 문도령에게 자청비가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주모 할머니는 오히려 자청비를 심술궂은 계집이라며 쫓아내 버린다. 딸을 희롱하다 딸에게 죽임을 당한 정수남을 딸이 다시 살려내자, 부모님은 계집년이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하니 놔두면 무슨 일을 할런지 모른다며 집에서 내쫓는다.


새 옷이 따뜻한 지 묵은 옷이 따뜻한지, 새 간장이 단지 묵은 간장이 단지, 오랫동안 사랑해 온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게 나은 건지 부모님이 결혼하라는 사람과 하는 것이 나은 건지 모두 다 아는 데도 상식적인 선택은 설 자리가 없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다만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일이 어무나 어려운 일임을 자주 느낀다. 자유와 평등, 인간의 존엄성을 찾는 길은 험난하다. 부패에 분노하고 그걸 없애려 노력하는 일은 부패를 모른 척 덮어두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 같다. 타인의 자유와 선택을 존중하고 양보하는 사람들은 종종 자기관리를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곤 한다.


남성에게 자신의 권리를 얘기하는 여성들은 시끄러운 여자가 되어버린다. 낮엔 직장에 가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 숙제와 청소며 설거지를 동시에 하고 있는, 고무장갑을 낀 아내가 힘들 것이라는 것은 꼭 밝히지 않아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남편들은 비스듬히 누워 TV를 보면서 물 한잔 주라 한다. TV, 영화 곳곳에서 그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 프랭크 오즈 감독의 스텝포드 와이프(네이버 영화 포토). 스텝포드가 살기 좋은 마을인 건 아내들을 말 잘 듣는 사이보그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형 같은 예쁜 옷차림과 몸매, 불평 한 점 없이 완벽하게 해내는 집안 일, 고분고분 순종하며 늘 화사한 미소를 짓는 아내들만 있는 스텝포드. 사회의 주도적인 지배자들은 이런 비상식적인 일을 끊임없이 감행한다.

남성에 대한 심사 과정은 없다. 문도령이 자청비의 남편이 되는 데는 어떤 심사 과정도 없다. 그러나 자청비는 누구의 며느리가 되기 위해서 죽음을 거는 심사를 받아야 한다. 삼척동자면 다 알 수 있는 아주 상식적인 일들, 너무나도 당연하게 인정되고 받아들여져야 할 부분들을 자청비는, 여성들은 상처받고 죽을 위험을 겪어내면서 얻어내야 한다. 

 
사회는 피지배자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여성들에게, 소수의 목소리들에게 마치 자청비에게 가했던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심사들을 한다. 그렇게 왕따를 시키고, 마녀로, 악의 무리로 내몬다. 자청비가 이야기하는 사회는 잠시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상식의 사회다./김정숙(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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