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특별자치'와 거리 멀어...획기적인 발상 전환 필요

며칠 전, 제주도 지역 뉴스 가운데서 눈길을 끈 게 있었다. 제주시 한경면의 어느 곰사육 농장에서 새끼 반달곰 한 마리가 우리를 탈출해 달아남으로써 관계기관이 곶자왈 지대에서 수색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마침 경기도 용인에서도 반달곰 두 마리가 사육장을 탈출해 근처 야산으로 달아났다가 모두 사살됐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 만했다.

그렇다고 반달곰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사고 업무를 관할하는 행정청이 영산강유역환경청 제주사무소라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가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며 2006년 7월 공식 출범한 이래 벌써 여섯 해가 지나가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행정관청의 명칭에서조차 ‘자치’를 이루지 못한 하나의 사례다.

적어도 특별자치도 제도가 국내에서는 전례가 없었던 유일한 도전이자 모험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처음부터 행정관청의 관할권과 이름에서부터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외교 및 국방을 제외한 중앙정부 사무를 모두 넘겨받아 새로운 지방분권의 모델이 되도록 한다는 거창한 슬로건까지 떠올릴 것도 없다. 그것이 원칙이며 상식이기 때문이다.

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제주지방국토관리청과 제주보훈지청을 포함한 7개 행정기관이 우선 이관되고 나머지는 단계적으로 이관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아직도 그 방침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시 정부가 ‘제주특별자치도 기본계획’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던 350여개 항목의 파격적인 권한 이양과 대폭적인 규제완화 약속과도 거리가 멀다.

영산강유역환경청 제주사무소 말고도 사례는 적지 않다. 제주합동청사에 함께 입주해 있는 기관들의 간판부터가 그러하다. 부산지방국세청 제주세무서가 그렇고 법무부 제주보호관찰소와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제주검역검사소, 호남지방통계청 제주사무소가 그렇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제주근로개선지도과도 마찬가지다.

합동청사에 들어 있지 않은 기관들 가운데서도 부산지방항공청 제주항공관리사무소와 광주지방 공정거래사무소가 여기에 해당한다. 광주본부 제주세관도 그러한 사례다. 제주도가 과거 전라남도의 행정구역에 편입되어 있었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이미 정부수립 이전인 1946년부터 엄연한 독자적인 행정편제가 이뤄졌는데도 말이다.

물론 행정업무를 이관한다고 가정했을 때 당장 우려되는 문제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특별자치도를 출범시킨 기본 취지대로라면 행정업무의 권한 이양이 마땅하고도 시급하다. 특별법에서 규정한 법안제출권과 행정·인사·재정 분야에서의 자율과 책임, 지역·역사·인문적 특성에 입각한 실질적인 지방분권의 의미와도 부합되는 조치다.

중앙부처와의 업무 연관성이나 다른 지역에 비해 제주 지역의 업무량이 비교가 된다는 사실이 걸림돌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업무를 이관받은 이후에도 중앙부처와의 협조는 얼마든지 가능하며, 이관 관청의 직급문제도 제주도 실정에 맞게 처리하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제주지법과 제주지검도 광주고법·고검 관할에서 벗어나 자체적인 상급기관 설치 방안의 강구가 바람직하다.

때마침 민간기업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제주도 이전작업이 7년여 만에 모두 완료되었으며 온라인게임 전문기업인 넥슨네트웍스가 지난해 제주도로 이전했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 지방분산 계획에 따라 국제교류재단과 재외동포재단, 공무원연금관리공단, 국립기상연구소 등의 이전계획도 진행되고 있다. 이밖에 경기도에 소재한 일부 화장품 제조업체들도 제주도 이전 계획을 서두르는 중이다. 사업적으로도 제주도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마다 제주도에 대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대통령 직속 제주특위를 설치하는 것도 좋고, 제주해군기지의 평화적 해결방안도 좋은 얘기다. 그렇지만 특별자치도로 승격하고 여섯해가 지나도록 행정권에서 자치를 이루지 못하고 행정기관 간판에 다른 지역의 이름을 빌려쓰고 있는 불합리한 상황이 먼저 고쳐져야 한다.

▲ 허영섭 칼럼니스트. ⓒ제주의소리

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북제주군은 제주시로, 남제주군은 서귀포시로 각각 통합되어 기존의 기초자치단체가 폐지되고 새로운 광역체제가 탄생했다는 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 그것은 형식적인 겉모습에 불과할 뿐이다. 실질적인 자치가 이뤄지지 못한다면 특별자치도라는 명칭부터가 의미를 잃게 마련이다.

더구나 반달곰이 탈출했다고 해서 바다 건너 영산강본부에 일일이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체제도 아니지 않는가. 보고를 해야 한다면 그것부터가 더 어색한 일이다. 환경 분야를 포함하여 항공·공정규제·세무·검역·노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앙부처의 상부기관을 그대로 존속시키면서도 특별자치를 부르짖는 지금의 형태는 아무래도 이상하다. /허영섭 칼럼니스트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