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협동조합이 지역경제를 살린다

세계 경제위기 이후 여러 해결책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우리 사회도 대선을 앞두고 양극화, 일자리, 재벌개혁, 대·중소기업 공정 거래, 골목상권 등 산적한 경제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야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시장만능이 가져온 신자유주의의 파국적 결과에 대한 대안 모색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끈질긴 생명력과 자생적 회복력을 보여준 협동조합이다.

올해 우리나라는 협동조합의 역사에서 대분기점을 맞고 있다. 2012년은 UN에서 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이며, 지난 7월 7일은 ‘협동조합의 날’이었다. 12월 1일부터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된다. 기존의 협동조합 설립은 무척 어려웠다. 사업분야도 1차산업과 금융ㆍ소비분야에 한정되었다. 앞으로는 조합원 5명만 모이면 출자금의 제한없이 다양한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일반 협동조합은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되고, 사회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은 관계 부처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금융과 공제사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업 영역에서 자유롭게 각양각색의 협동조합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기존 농업협동조합이 긴장하고 있는 이유다.

UN 산하 국제협동조합연맹(ICA·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은 협동조합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해 공통의 경제·사회·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인적 결합체’로 정의하고 있다. 조합원이 근로자이며 소유주다. 협동조합은 주식회사의 1주 1표와 달리 1인 1표의 원리로 운영된다. 자본주의 가치인 경쟁과 이윤추구 보다는 이타심, 상호 협동, 연대와 같은 공공성을 지향하며 조합원과 이용자들이 혜택을 누린다. 시장만능주의의 폐해를 바로잡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는 사회적 자산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19세기 유럽의 산업혁명 시기에 태어났다. 생활협동조합에서 출발하여농업, 어업, 신용, 보험, 의료, 주택, 노동자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한국협동조합연구소에 따르면 국내에는 2010년 기준 1만2607개의 협동조합이 있다. 우리나라 협동조합은 1950년대에 농협과 신용협동조합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협동조합의 메카인 원주는 인구 32만명의 11%인 3만 5천여명이 ‘원주협동사회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있으며 농업가공유통, 소비자, 공동육아, 교육, 신용, 문화, 환경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을 탄탄하게 벌이고 있다. 또한 한살림, 아이쿱, 두레 등 3대 생협은 급성장 중이다.

해외에서 스페인의 몬드라곤, 이탈리아의 볼로냐, 캐나다의 퀘벡 지역은 협동조합의 성공모델로 각광을 받고 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총자산 54조원, 연매출액이 30조원에 이르고, 8만5천여명의 노동자로 구성된 다국적 기업이다. 노동자이면서 조합원인 3만 5천여명이 소유권과 경영권을 행사한다. 기업목표는 이윤 극대화나 기업가치 극대화가 아니라 ‘고용의 확대’로 못박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2008~2009년간 1만 5천여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스페인의 명문 축구팀 FC 바로셀로나, 미국의 AP통신, 오렌지의 대명사 선키스트 등이 협동조합의 대표적 사례다.

국제협동조합연맹은 ‘협동조합 7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① 성·사회·인종·정치적·종교 등에서 차별을 두지 않는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 ② 조합원이 주체적으로 평등한 참여에 의한 민주적 관리, ③ 조합원의 공평한 경제적 참여 원칙, ④ 자율과 독립의 원칙, ⑤ 교육·훈련 및 정보제공, ⑥ 협동조합 간의 협동, ⑦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여다. 이는 협동이라는 인류의 지혜가 축적되어 사회적 규범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협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자본조달의 한계라는 결정적 약점을 안고 있다. 소비자이면서 생산자인 조합원들에게 더 많은 편익을 제공하는데 중점을 두면 이익률이 낮아져 재원충당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또한 협동조합의 1인 1표에 의한 의사결정은 구성원 간의 갈등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 조합원 구성이 이질적이고 규모가 클수록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충성심, 협력과 협동조합 간의 긴밀한 연대 등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사회 경제적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정부나 정치권,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야의 협동조합들이 대기업에 편중되어 있는 한국 경제의 불균형을 일정 부분 해소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협동조합연구소는 제도 시행 초기에 협동조합이 활성화될 수 있는 영역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뭉쳐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분야를 제시하고 있다. 영세상인과 소상공인, 돌봄사업 등 저소득 취약계층, 방문교사ㆍ화물기사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 청년창업, 낙후지역 주민, 장애인, 보건의료, 공동육아, 문화예술, 주택ㆍ에너지, 로컬푸드ㆍ도농교류 등이다.

협동조합은 지역주민의 참여와 협동을 바탕으로 지역 경제에 뿌리를 내리고 지속적인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일찍부터 협동조합 생태계 구축에 앞장 서 왔다. 제주자치도는 신공항 건설, 탑동매립같은 토건 사업에 매몰되어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 같다. 또한 풍력발전, 제주맥주 사업에서 보듯이 관주도ㆍ관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네덜란드 풍차의 90%는 협동조합에서 운영하고 있다. 협동조합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7월 21일 KBS에 방영된  ‘특파원현장보고’는 맥주산업을 관광상품화하여 지역경제를 살린 미국 오리건주의 조그만 산골도시 벤드를 소개하였다. 벤드시는 12개의 양조장에서 현지 특산물인 빙하수를 이용하여 다양한 맛의 크라프트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맥주관련 다양한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미국전역으로부터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고 한다.

제주는 협동조합이 성공할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을 갖고 있다. 바로 궨당문화와 정낭정신이다. 제주는 협동조합을 통해 소중한 자원인 자연환경과 재생에너지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녹색기술과 저탄소경제를 실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자리 창출과 실업의 최소화, 영세상인 등 한계 노동자 대책에 모델이 될 수도 있다.

제주의 특징과 장점을 살리면서 도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하는 모범적 협동조합을 이뤄낼 준비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제주도청의 지원 의지가 중요하다. 제주 지역에서 가능성이 있는 분야는 풍력발전, 제주맥주외에 해녀, 돌챙이, 귀농자나 이주민, 흙돼지ㆍ말 등 축산업, 감귤 농업, 민박 등 소규모 관광사업, 오일장 등 전통시장, 이번에 문제가 된 올레길 안전 보호, 멸종위기인 동네 빵집ㆍ서점 등을 들 수 있다. 지역 사회에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 제주의소리

협동조합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시민들의 연대로 해결하도록 하는 또 하나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될 위험성이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조합원끼리의 상부상조 뿐만 아니라 고용창출, 환경보전, 지역경제 재생, 삶의 질 제고, 지속 가능성 등 공공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 모델로 존재의의가 있다고 본다. 성공적 발전을 위해서는 정책당국의 적극적 지원과 간섭배제, 협동조합 기금의 조성과 운영, 협동조합 간의 연대, 지속적 홍보와 교육, 민주적 절차의 정착 등이 필요하다. 협동조합에 대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추진해야 한다.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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