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재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비양도
비양도 화산체, 대부분 스코리아로 이뤄졌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비양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장태욱의 지질기행> 20 비양도 '천 년의 섬' 아니라 만 년이 넘는 섬

▲ 협재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비양도

한림읍 협재해수욕장에서 북쪽 가까운 거리에 작고 아름다운 섬이 자리 잡고 있다. 전설에는 이 섬이 중국에서 떠내려오다가 사람들이 놀라 멈추라고 소리치자 한림 앞바다에 멈췄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날아온 섬'이라는 의미로 '비양도(飛揚島)'라 이름이 정해졌는데, 섬은 협재해수욕장의 비취빛 해변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비양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고종 13년이라고 한다. 19세기 중반 이전에는 왜구들이 들락거리는 소굴이었다. 한림에 있는 명월성은 이재수의 난이 일어났을 때 천주교도들과 시위군중이 격돌했던 장소로 유명한데, 장림목사가 1510년에 이 성을 지은 이유는 비양도에 들락거리는 왜구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고려사>에 나타난 수중 분출의 기록

최근 들어 비양도에 '천년의 섬'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천 년 전에 섬이 바다에서 솟아났다는 <고려사>의 기록 때문인데, <고려사>의 내용을 인용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려목종 5년(1002년) 6월에 바다 가운데서 산이 솟아났다. 산 네 곳이 갈라지고 붉은 물이 솟구쳐 올라와 닷새 만에 멈추었는데 그 물은 모두 기와와 같은 돌이 되었다. 목종 10년(1007년)에 탐라에 서산(瑞山, 상서로운 산)이 바다에서 솟아났다하므로 태학박사 전공지를 보내어 알아보게 하였다. 탐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산이 처음 솟아날 때는 구름과 안개로 어두컴컴하고 땅이 진동하여 우레 소리가 무릇 7일 밤낮을 계속하더니, 비로소 구름과 안개가 겉이고 산이 나타났습니다. 초목은 없고 연기가 산 위에 덮여 있어서, 바라보며 마치 석류황과 같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전공지는 몸소 산 밑까지 가서 그 모양을 그려 바쳤다. 지금 대정현에 속한다.'

▲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비양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섬이 솟아났다는 기록과 관련하여 다양한 추측이 이어졌다. 숙종 28년(1702년)에 제주목사로 부임했던 이형상(李衡祥)은 <남환박물>에 고려목종 때 산이 바다에서 솟아난 일을 거론하며 '지금 대정현에 속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가파도가 아닌가 한다'고 했다. 반면, 숙종 5년(1679년)에 제주안핵겸순무어사로 임명된 이증(李增)은 <남사일록>에 기록하기를 '고려 목종 10년에 탐라 바다 가운데서 솟아났다는 것이 이 섬(비양도)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 외에도 목종 때 솟아난 서산을 어떤 이들은 우도라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안덕면 소재 군산이라고도 했다.

1000년 전 분출한 섬이 비양도?

그 후, 일본의 저명한 지질학자 나카무라 신타로 동경대 교수는 <고려사>의 기록을 살펴본 후 목종5년의 분화는 비양도이고, 목종 10년의 분화는 군산이라고 하였다. 나카무라 교수는 해중분출과 관련하여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하였지만 비양도의 분출은 오래도록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비양도가 1000년 전에 분출했다는 가설은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1000년 전에는 해수면이 현재와 비슷했기 때문에 분화가 일어났다면 바다 속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마그마가 수중에서 분출하여 물과 반응한다면 격렬한 수성폭발을 동반하여 응회환(송악산)이나 응회구(성산 일출봉)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 비양도 화산체, 대부분 스코리아로 이뤄졌다.

그런데 비양도는 제주의 일반적 오름과 같은 분석구(cynder cone)형태를 띠고 있다. 응회환이나 응회구가 화산재를 포함한 화산쇄설물이 퇴적되어 만들어지는데 반해 비양도 화산체는 송이(scoria)가 주를 이룬다.

비양도의 나이는 최소 1만 년

비양도 화산체는 육상환경에서 마구마 분출을 동반한 화산활동으로 형성되었고, 화산체가 형성된 이후에 지구온난화 과정을 겪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자 물에 잠겨 섬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주변의 해수면은 1만 년 전 이전에는 현재보다 100m 정도 낮았으며 그 이후 지구온난화가 진행되자 약 6000년 전에 현재의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섬은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이전에 만들어졌고, 이후 해수면 상승으로 약 6000년 전 쯤 지금처럼 섬으로 고립된 것으로 보인다. 경상대학교 손영관 교수는 비양도의 형성시기를 지금으로부터 약 3만 년 전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장태욱 시민기자는 1969년 남원읍 위미리에서 출생했다. 서귀고등학교를 거쳐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입학해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42년 후배가 됐다.  1992년 졸업 후 항해사 생활을 참 재미나게 했다. 인도네시아 낙후된 섬에서 의사 흉내를 내며 원주민들 치료해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제주대학교 의예과 입학해 수료했다. 의지가 박약한 탓에 의사되기는 포기했다.  그 후 입시학원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씨름하다 2005년에 <오마이뉴스>와 <제주의소리>에 시민기자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0년에 바람이 부는 망장포로 귀촌해 귤을 재배하며 지내다 갑자기 제주도 지질에 꽂혀 지질기행을 기획하게 됐다.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