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 유작 건축물 ‘더 갤러리-카사 델 아구아'가 철거될 위기에 놓여 있다. 금전적 가치에 매달려 카사 델 아구아를 '가설 건축물'로만 바라보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는 야만의 시대에는 통하는 개발이데올로기이다

<고충석 칼럼>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 한번 생각해보자

 지금은 고인이 된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 멕시코)의 유작 건축물 ‘더 갤러리-카사 델 아구아(이하 카사 델 아구아)’가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카사 델 아구아는 지난 2007년 서귀포시 중문 컨벤션센터의 앵커호텔 부지에 세워졌다. 앵커호텔 모델하우스의 용도로 지어진 카사 델 아구아는 스페인어로 '물의 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 건물의 철거를 놓고 국내외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건축가 레고레타의 고국인 멕시코에서 철거에 대해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내놓은데 이어 우리나라 건축가들도 반대대열에 합류했다. 그동안 카사 델 아구아를 직접 방문해 전시를 즐겼던 시민들도 제주도의 '철거방침'에 비판적인 의견을 전하고 있다.

 # 카사 델 아구아는 건축물로만 국한되는가

  이들의 입장과 비판들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출발한다고 생각된다. "카사 델 아구아를 철거해야 할 '건축물'만으로 인식해야 하는가"이다.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는 특정 건물이 자취를 감추는 단순한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건물과 함께 레고레타의 건축철학과 미학, 예술학적 고뇌와 가치들도 함께 사라진다고 봐야한다.

  특히 카사 델 아구아에는 레고레타가 제주자연을 보며 느꼈던 예술적 감성과 영감이 그대로 이입돼 있다. 건축을 하기 전 제주를 방문한 레고레타는 제주의 물과 바람, 빛에 영감을 받아 이를 그대로 건축물에 반영했다고 전해진다. 그 결과 우리는 카사 델 아구아의 외관에서 제주의 '붉은 송이'를 떠올리게 하는 색채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건물 내외에는 레고레타의 건축에서 빠지지 않은 요소인 '물'이 흐르도록 설계돼 있다. 이 역시 청정한 제주의 물을 보며 얻은 영감이 반영된 결과다.

  이처럼 레고레타는 세상을 뜨기 전 제주자연을 주제로, 제주인들에게 큰 선물을 안겼다. 카사 델 아구아를 직접 방문한 이들은 절대 이 곳을 모델하우스나 가설 건축물로 여기지 않는다. 건축예술의 거장이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제주도와 민간업자는 법과 경제적 이유를 들어 이 곳을 가설 건축물로 재단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건물 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으로서 갖고 있는 무궁무진한 존재가치까지 없애려 하고 있다.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가 논란이 되는 또 다른 이유는 건물이 갖는 상징성과 희소성 때문이다.
 
  먼저 레고레타가 가진 세계적 위상을 기억해야 한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세계적 건축가가 안토니오 가우디라면, 멕시코를 대표하는 세계적 건축가는 레고레타다. 그는 자연을 통해 자신의 건축철학 세계를 구현했다. 그는 건축에 물, 바람, 공기, 햇빛 등의 자연적 요소를 끌어들여 그곳에 머무는 사람의 영혼마저 어루만지는 따스한 건축물들을 완성했다. 그는 세계 어디에서 작업하든 토착 자연을 깊이 관찰하고, 인간 중심의 설계를 최우선에 뒀던 세계 건축계의 최고 거장이었다. “감성이 없는 건축은 건축이 아니다. 공간은 물론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겠으나, 만일 그것이 인간의 정신세계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면 이미 그것은 건축이라 말할 수 없다"는 말은 그의 건축철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레고레타의 작품은 아시아에 단 2개 뿐이다. 일본과 제주도에 있는데, 일본에 있는 작품은 내부를 볼 수 없다. 제주도에 있는 ‘카사 델 아구아’만이 모든 이들에게 개방돼 있다. 문화공간인 '갤러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레고레타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없다. 오직 제주의 '카사 델 아구아'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불태운 건축예술의 혼을 느낄 수 있다. 

 # 카사 델 아구아 철거, 심사숙고를

  개인적으로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가 더 우려되는 것은 철거 이후 활용방안이 그렇게 획기적이거나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 카사 델 아구아의 토지소유주인 (주)부영 측은 오는 9월 개최될 세계자연보전총회에 맞춰 건축물을 철거한 뒤 공원을 짓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고 한다. 우선 카사 델 아구아의 가치를 새롭게 들어설 공원이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또한 현재 철거방침이 제주도가 추진하는 지역개발 발전 전략에도 부합한지 검토가 필요하다.

  지금 각 지자체는 어느 지역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이 탄탄한 '명품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명품도시의 핵심은 경제개발이 아니고 문화다.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가 자치의 시대이다. 그래서 문화경제라는 용어도 회자된다. 돈을 많이 길에 발라났다고 명품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지역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갖추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  정체성은 옛것만 고집해서는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도시는 옛것, 새것을 구별하지 않고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간의 관계 안에서 만들어진다. 각각의 개체들이 다른 개체와 충돌하고 관계 맺으며,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개별성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 관계들이 연속성을 가지고 오랜 시간 이어질 때 도시는 정체성을 갖게 된다.

  이런 점에서 오래전에 가본 기억밖에 없지만 우리와는 거리상으로 비교적 가까운 지역으로서는  발리가 그래도 성공한 지역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제주로서는 옛것과 새것이 개별성을 갖고 관계를 맺는 과정속에서 제주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야 한다. 카사 델 아구아는 서귀포시를 더욱 독특하고 경쟁력있게 만들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또한 카사 델 구아는 제주 마이스(MICE) 산업의 최전선인 제주컨벤션센터 인근에 있다. 마이스산업이 발전하려면 회의, 관광, 전시·박람회 이벤트 등 복합적인 산업이 균형있게 성장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세계적 위상과 가치를 인정받은 카사 델 아구아를 컨벤션센터 및 앵커호텔과 연계, 회의 참석자들에게 적극 드러내서 서귀포시의 문화적 위상을 몇 단계 높여야 한다. 이를 통해 제주의 마이스 산업 및 지역 이미지 제고‧마케팅 강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제주도와 (주)부영은 철거여부에 대해 다시 한번 심사숙고하기를 바란다. 문화는 그 나라의 정체성이자 경쟁력이며, 이제는 국가와 지역 경제를 받치는 성장동력으로 위치하고 있다. 훌륭한 문화상품과 예술작품은 그 나라와 지역을 평생 기억하게 하고, 반드시 방문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유발한다.

  일례로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몰린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대표적 자산은 가우디의 예술혼이 배인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물들이다. 가우디의 건축물이 있었기에 전 세계인들이 바르셀로나를 기억하고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과연 제주에는 바르셀로나처럼 전 세계인들이 기억하고 보고 싶어하는 건축물이 있는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필자가 제주대학에 갓 부임했을 때 잠깐 동안 고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구 용담동 제주대학교 건물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다. 그 아름다운 건축물도 몽매한 시대의 개발지상주의에 밀려 사라졌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제는 우리도 살만하지 않은가. 도시의 품격을 생각할 때이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정책적 판단은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가 아니라, 제2, 3의 카사 델 아구아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점에서 섭지코지에 자리 잡은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아고라’,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지니어스 로사이’, 그리고 또 다른 일본 건축가 이타미준이 설계한 바람.물.돌을 테마로 한 미술관과 교회 등이 제주의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제주 문화의 색조를 연출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 고충석 전 제주대학교 총장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문화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다. 금전적 가치에 매달려 카사 델 아구아를 '가설 건축물'로만 바라보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는 야만의 시대에는 통하는 개발이데올로기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카사 델 아구아는 그 자체가 엄청난 유무형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이다. 카사 델 아구아를 철거하기에 앞서 문화적 가치를 인정, 제대로 보전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여진다. 이 건축물과 관련된 실질적인 이해관계자들이 고민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해량이 있기를 고대해본다. /고충석 전 제주대학교 총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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