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욱의 지질기행> 21 용암의 측방 분출이 만든 비양도의 독특한 암맥
비양도는 동서로나 남북 간 지름이 대략 820m에 이른다.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은 축의 길이가 970m에 이르러, 타원형 섬의 장축에 해당한다. 섬의 둘레로 산책길이 조성되었는데, 길이가 3km 안팎이어서 걸어서도 한 시간 남짓이면 일주할 만하다.
앞선 기사에서 밝혔듯이 비양도는 수중분출로 만들어진 섬이 아니라, 육상 환경에서 형성된 분석구이다. 포구 서쪽에 섬에 드물게 밭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 틈으로 비탈진 산길을 오르면 비양봉의 정상에 오르게 된다. 비양봉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에 깔때기 모양의 깊은 분화구 두 개를 차례로 볼 수 있다. 비양도 분석구가 두 개의 분화구를 거느리고 있는 것에서 이 화산체가 만들어질 당시, 2회 이상의 분출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양도 분석구는 분화구 주변에 두 개의 봉우리리가 있는데, 가장 높은 곳은 고도가 해발 114m에 이른다. 주봉의 정상에 흰 등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주변 바다와 어우러져 낭만적인 정취를 더한다.
섬의 동쪽에 자리잡은 비양분교 인근에는 해수가 채워져 호수를 이룬 해적호(lagoon)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 해적호를 '펄랑못'이라고 부른다. 호수의 바닥에 갯벌이 두텁게 쌓여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이 호수는 지하를 통해 해수가 드나들기 때문에 조수 운동과 연동하여 수면의 높이가 변한다.
비양도 주변의 지질 분포를 조사해보면 파호이호이 용암으로 구성된 현무암 대지가 맨 아래에서 발견된다. 이 용암은 제주도 서부에 주로 분포하는 광해악현무암과 연속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용암대지 위에 역암이나 역질 사암 등이 퇴적 되었는데, 학자들이 탐라층이라고 부르는 지층이다. 과거 한반도 주변의 해수면이 현재보다 매우 낮았을 당시에 하천을 따라 현재 비양도의 자리까지 이동해서 퇴적된 것으로 보인다.
비양도 화산체가 분출한 것은 탐라층이 퇴적된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2회 이상의 분출이 일어나면서 스코리아 등을 비롯한 화산분출물이 탐라층 위에 쌓여 비양도 분석구를 만들었다.
비양도 동북쪽 해안에는 색깔과 모양이 매우 독특한 바위들이 분포한다. 이 일대 돌의 색깔이 매우 붉고 촛농이 초를 타고 흐른 것처럼 표면이 울퉁불퉁하다.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이 주변에 바위들을 전시하여 돌공원을 조성했다.
이 독특한 암석을 이루는 현무암질 암맥이 탐라층과 비양도 분석구층을 차례로 관입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학자들은 이 바위들이 용암이 분화구를 통해서 분출되는 도중에 일부가 바닥 측면으로 분출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마치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면서 동시에 방귀를 뀐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바위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애기 업은 돌'이라 불리는 수형암맥(樹形岩脈)이다. 이들은 마그마가 측면으로 분출된 이후에 지하 용암류 내부의 가스가 배출될 때 만들어진 높은 압력이 액체 용암을 밖으로 밀어올린 결과라고 판단되고 있다. 이처럼 용암류 내부의 가스가 분출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암맥을 호니토(hornito)라고 부르는데, 비양도의 호니토는 그 희귀성을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 439호(제주 비양도 호니토)로 지정되었다.
'애기 업은 돌'을 비롯한 비양도의 수형암맥은 대부분 비양도 분석구 내에 묻혀 있었는데, 오랜 기간 파도의 침식을 받아 분석구 일부가 침식되었고, 침식에 강한 암맥이 남아서 밖으로 노출된 것이다.
한편, 태평양전쟁 말기에 비양도에는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양도는 전쟁말기에 미군 폭격기의 주요 타격 목표였다. 그래서 일본군과 주민들은 각자 비양도 분석구에 동굴을 파서 폭격에 대비해야 했었다.
필자가 몇 해 전에 현지 노인 회장을 만나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비양도 분석구가 대부분 스코리아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2차대전 당시에 일본군과 주민들이 팠던 동굴을 모두 흔적 없이 매워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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