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세계경제의 조울증 탈출법

조울증은 항상 우울한 증세가 아니고 아주 작은 일에도 명랑함과 우울함이 큰 폭으로 교차하는 병세를 말한다. 미국에서 발원한 후 유럽으로 번진 글로벌 경제위기가 이제 만 4년을 경과하면서 조울증이 극에 달하고 있다. 그 증세가 지난 주말에 다시 나타났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주가지수가 금요일(8월3일) 하루 만에 각각 6% 및 6.6%씩 폭등했고, 미국에서도 나스닥과 S&P 500 지수가 각각 2% 및 1.9% 올랐다. 실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우선은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스페인의 단기국채매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주권국가가 발행한 채권들이 시장에서 안정된 가격을 유지하며 거래되도록 하는 일은 그 나라 정부의 책임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던 드라기 총재가 스페인 국채의 시장 할인율이 천정부지로 상승하는 것을 보며 결국 굴복한 것이다. 또 하나의 호재라면 7월 중 미국의 비농업취업자수가 예상보다 약간 더 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실업률은 최근 3개월 연속 8.2%에서 더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유럽중앙은행이 스페인 국채 매입을 증권시장이 반기는 것은 당연하겠으나 통화공급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실업률의 하락을 가져오지는 않음은 물론 경기회복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오히려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정부와 중앙은행의 개입이 조만간 다른 더 큰 규모의 산불의 원인을 제공할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실제로 미국 연준금리는 2000년 이후 이제까지 약 3년의 주기를 두고 6%의 고금리에서 1% 이하의 저금리 사이를 두 차례나 왕복했다. 일본도 마찬가지 패턴이었다.

한계에 봉착한 정책수단들

경기진작을 위한 금리인하 및 통화공급, 거품의 기미를 발견하고 금리인상 및 통화회수, 그리고 끝내 거품을 막지 못하여 그 거품이 터져버리는 지경이 되어 다시 금리를 내리고 통화를 풀어 놓는 사이클이 판에 박은 듯 반복되었음을 미국과 일본의 사례는 보여준다.

1930년 세계대공항 이후 득세한 이론이 바로 케인즈 경제학이고 보면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를 접한 주요국들의 정부가 재정과 통화를 확대해야 한다는 케인즈 학파의 의견을 따랐던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이제는 이들이 동원할 수 있는 이런 정책 수단들 마저 한계를 들어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부 개입의 효과에 대한 회의가 고개를 들면서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지내던 신 자유주의 진영도 반격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즉, 불황도 시장의 치유과정의 하나인데 정부가 통화와 재정확대를 통해 불황에서 서둘러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불황의 원인이었던 과잉투자의 정리를 지연시킬 뿐이다. 그 결과 불황이 더 길고 심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 진영의 이견은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의 차이에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경제문제를 꼭 경제로 풀려고 하는 것은 옳은가? 경제는 더 다양하고 중대한 경제외적 변수로 인해 고양되기도 하고 좌절되기도 함을 잘 안다면 정책변수의 제한에서 우선 탈피해야 할 것이다.

유럽의 국가재정 문제의 심각성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발발 이전까지는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다. 본래 유로 단일통화 사용국 사이에는 엄격한 약속이 있었다. 매년의 재정적자와 정부의 누적부채가 각각 GDP의 3% 및 60%를 넘지 않기로 한 약속이다.

서브프라임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각 정부들은 재정지출 증대를 통해 경기부양을 하는데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마침 새로 집권한 아일랜드, 포르투갈, 그리스 등의 새 정권들이 전 정권의 비리를 들추는 과정에서 이 비율들이 크게 초과되고 있음이 드러나 버린 것이었다.

정부의 대차대조표는 자의적으로 조작되었고 독일과 프랑스는 스스로도 이 비율들을 약간씩 초과하고 있었으므로 이들의 은폐를 묵인하였다. 유럽 재정위기를 오늘과 같이 만든 단초는 재정건전성을 지키기로 한 약속의 위반 그 자체보다도 위반사실의 은폐가 더 결정적으로 마련했다.

진실 문화 건설 새로운 정책과제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도 극도로 고도화된 상품구조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국제 신용평가회사의 등급으로 대신하려고 했던 문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민주화라면 세상사가 복잡다기화 해 질수록 사물의 진실이 이들에게 적절하게 드러나게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렵고도 중대한 과제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한계에 봉착한 정책 수단들에서 벗어나 그 자체는 좁은 의미의 경제변수는 아니지만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여러 경제외적 변수들(성장잠재력; growth potential)을 개선하기 위한 국가적 과제설정이 요구되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닌가 한다.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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