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올림픽의 두 얼굴

런던올림픽의 열기가 뜨겁다.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 선수들의 드라마틱한 경기장면을 보며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며 애국심에 빠져 흥분하기도 한다. 연일 기승을 부리는 무더위를 식혀줄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고통스럽고 권태로운 삶을 달래주는 위안과 희망의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국민들은 하나 됨을 느끼고 강력한 활력과 희열을 만끽한다.

올림픽의 최상의 가치는 순수한 스포츠 정신이다. 돈보다 명예, 참가에 의의를 두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신성한 아마추어 정신을 말한다. 그러나 올림픽이 확대되면서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고, 정치적 효용성도 커졌다. 차츰 올림픽이 자본과 정치 논리에 휘둘린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과도한 상업화로 환경과 건강, 저임금 노동문제를 도외시하고 무분별한 돈벌이에 몰두하고 있다거나 소리 없는 프로파간다로써 정치적 목적에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정치 광고판’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스포츠는 대중문화산업의 킬러 콘텐츠로 그 중심에 올림픽이 자리한다. 오늘날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대중에게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준다는 것과 억압과 기만을 낳는다는 상반된 견해가 있다. 전자는 ‘붉은 악마’의 물결처럼 대중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그들을 의식의 주체로 만들어 공동체 정신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기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후자는 현실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외면하게 만들고 자유롭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마비시킨다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중문화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디어가 킬러 콘텐츠를 놓칠 리 없다. 신문·방송 등 주요 언론뿐만 아니라 인터넷 포털까지 총동원되어 올림픽을 생중계하고 있다. 일부 시청자들은 방송의 ‘올림픽 올인’으로 채널 선택권이 줄어들었다는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국가주의·애국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중요한 뉴스가 누락 또는 축소되고 국가적 아젠다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언론은 연일 우리 선수단의 메달 소식으로 도배하고 있다. 오심 논란에는 선수보다 더 흥분하고 심지어 울부짖는 중계 아나운서도 있다.

국가 대항전 성격의 올림픽에서 메달, 특히 금메달만 따면 인기없는 종목은 없다. 언론의 금메달 우선주의와 애국주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의 기사도 문화 유산으로 우리에게 낯설기 그지 없는 펜싱이 금메달을 두 개나 따자 인기종목으로 급부상했다.

스포츠의 본질적 속성은 경쟁에 있기 때문에 서열주의를 벗어날 수는 없다. 또한 국가주의는 극단적으로 표출되지 않는다면 공동체 정신의 함양과 삶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순기능도 한다. 그렇지만 언론은 광고수입에 급급하여 ‘금메달 사냥, 아쉬운 은메달’ 식으로 순위에 집착하고, 애국심에 불을 끼얹는다.

올림픽의 얼굴은 개막식 행사다. 개최국의 전통과 자부심, 이미지 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한 나라의 문화적 상상력을 결집시켜 표현한다. 국가브랜드 상승과 자국 문화의 세계화를 추구한다. 따라서 전 세계인이 개최국의 문화 수준을 인식하고 수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총체적인 국가주의가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대중화주의를 내걸었던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나 영국의 킬러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으로 짜여진 런던올림픽 개막식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대해서는 ‘좌파적’, ‘인문학적’, ‘공동체적 가치의 구현’ 등 이전 올림픽과는 전혀 다른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문화의 힘으로 포장한 세계적 수준의 세련미에 감동하는 것보다는 텍스트를 심도 깊게 따져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보편성에 함몰된 문화적 콤플렉스를 경계해야 한다. 자칫 ‘오리엔탈리즘’에 빠질 수 있다.

입헌군주제 국가와 글로벌 대중문화의 발신지답게 여왕과 세계적 인기스타들이 출연하는 퍼포먼스에는 영국의 나라 자랑이 잔뜩 묻어났다. 현재와 맞닿아 있는 과거의 속살을 드러낸 장면에는 글로벌 의제를 이끌어 가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산업혁명의 보편성, ‘악마의 맷돌’로 상징되는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여성 참정권, 인종간 화합, 국가무상의료체계의 상징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s)를 현재의 관점에서 문화적으로 재해석하고 국격을 과시했다. 세계 경제위기를 맞아 연대와 정의에 기반한 글로벌 공동체의 재구조화와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런던 컨센서스’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올림픽이 내포하고 있는 정치·경제·문화적인 양면성은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올림픽의 불편한 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아름다운 도전을 펼치는 선수들의 경기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선수들이 혼신을 다해 창조적 상상력과 초인적 괴력을 발휘하는 만큼, 우리들은 사고의 지평이 넓혀지고 무더위에 지친 일상의 지루함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권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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