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편지] 태풍의 비바람을 맞으며 오른 지리산
9월 14일
태풍이 지나가며 뿌리는 비바람을 맞으며 지리를 올랐다.
잠들기 위해 소주 한병을 마셔도 보았지만 대피소를 두들기는 비바람 소리에게
하룻밤을 고스란히 빼았겨 버렸다.
그도 그만 머물러 쉬고 싶었나 보다.
이른 새벽
사람들은 비바람을 핑계로 대피소에 머물렀지만 촛대봉에 오르는
순간 거짓말 같이 하늘이 열렸다.
15일 06시 18
간밤의 비바람을 핑계로 주저앉은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세석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하늘길을 사이에 두고
떠오르는 해마저 삼킨 거대한 구름들이 마치 오래 만나지 못한 연인들 처럼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삽시간의 황홀.
정확히 10분 이었다. 저 거대한 구름으로 다시 하늘길이 닫힐 때 까지 걸린 시간이.
아침햇살도 하늘도 길도 사라지고 난 구름속에 갇혀버렸다.
움직이질 않고 그대로 구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몸이 젖어 갔다.
그리고 난 구름이 내 몸을 스쳐 지나가는 소릴 가만히 들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소릴 들어 본적이 있는가.
그 소리였다.
구름도 사연이 있었다.
산은 삶이었다.
한참이 지나 다시
하늘도
길도 열렸다.
빨치산들이 가장 좋아했다던
반야봉
이런 현상을 살아가며
몇번이나 마주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죽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죽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 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죽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죽은 나무가 아니다.
- 천상병
제석봉 고사목 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