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칼럼> 미국의 금융개혁법, 그 이후

"월가를 점령하라"는 기치를 내걸고 주코티 공원에서 벌인 농성 사건이 다음 달이면 만 1년이 된다. 부의 양극화, 글로벌금융위기를 야기했던 금융의 책임추궁 등 다양한 내용을 내걸었던 이 농성자들은 한달 만에 경찰에 의해 강제 퇴거를 당했다.

이들이 운영했던 웹 사이트는 자기들이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에서의 민주화 성취에 고무되었음을 밝혔지만 무바락 대통령의 퇴진이라는 구체적 목표가 있었던 타흐리르 광장에 비해 주코티 공원에서는 그에 필적하는 구체적인 요구조건의 설정이 없었다. 주코티 공원 농성 시점은 미국의 금융개혁 법안(일명 월 스트리트 개혁법)이 의회에서 통과되어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을 한 2011년 7월 직후였다.

상 하원 통과과정은 험난했다. 또한 쟁점이 되었던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는 구체적 시행규칙("rules")을 추후 과제로 미루었다. 글래스 스티걸 법(Glass-Steagall Act)의 부활, 즉 예금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는 끝내 이 법안에 담지 못했다. 그 대신 예금은행이 고객 예금으로 고수익/고위험의 투기적 거래를 하지 못 하도록 하는 소위 볼커 룰(Volker Rule)을 도입했는데 그 구체적인 방안은 법의 서명 후 2년 간의 기간을 두고 마련하기로 했다. 또한 신설하기로 한 금융소비자보호국을 대통령 직속의 완전 독립기구로 하느냐 중앙은행의 한 기구로 하느냐 하는 문제도 미정으로 남겨 두었다.

이처럼 월 스트리트 개혁법은 발효되었지만 시행규칙이 없어 많은 부분의 시행이 미루어지고 있었던 기간 중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JP 모건 체이스 은행에서는 신용파생상품 계약에서 큰 손실을 보았음이 밝혀져 주가가 폭락했다. 런던 고래 또는 '볼드모트'(소설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최고수의 악한)라는 별명을 지닌 부르노 익실이라는 이름의 한 딜러의 소행이었는데 손실의 규모도 처음 발견된 5월에는 20억 달러로 발표되었다가 이후 점점 늘어나 최근에는 90억 달러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행규칙 없는 금융개혁법

위험하지만 잘 하면 큰 돈을 버는 이런 거래는 헤지 펀드 회사들이 전업으로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고위험/고수익을 원하는 고객의 자금만을 운용할 뿐 예금은행이 아니므로 널리 고객예금을 거두어 들이지 못한다. 따라서 자금력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시장을 자산규모로 미국 최대은행이 이들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거액의 주문으로 주물러왔던 것이다.

그 후 '볼커 룰'은 어떻게 되었나? 지난 7월21일로 법이 정한 2년의 시한이 슬그머니 지났다. 제안자 폴 볼커의 표현을 빌리면 모두 4쪽 분량이면 충분한 것을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이해 관계자들과의 청문회를 거치면서 개혁에 대한 저항 논리만 키워왔다.

예를 들면 은행의 자산부채관리 측면에서 위험 회피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금융 파생상품 거래를 예외적으로 허용해 달라는 요구다. 한 때 JP 모건 체이스 은행은 투기적 목적이 분명했던 저 런던 고래의 거래도 은행의 자산건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억지 주장을 펴기도 했다.

금융소비자보호국 설치는 어떻게 되었나? 법안 서명 후 1년 뒤인 작년 7월에 중앙은행의 한 기구로 격하(?)되어 문을 열기는 했지만 개점휴업상태를 면치 못했다. 신금융상품의 승인권을 가진 이 기구의 기관장이 상원의 인준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오바마 대통령은 상원 회기만료를 기다려 '휴장 중 임명'(recess appointment)이라는 특권을 발동하여 기관장을 앉히기는 했으나 그 역시 내년 회기 중 인준을 받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한다. 애당초 금융소비자보호국 신설에 반대했던 공화당의 의도는 인준을 거부함으로써 기구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오바마는 겉만 번드르르한 개혁법안에 서명을 해놓고 더 이상 진전을 못 시키고 있고 공화당의 대선 후보 미트 롬니는 월 스트리트 개혁법 폐지를 공약으로 걸고 있다.

볼커 룰(Volker Rule) 시행도 미루어져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유럽에서 먼저 실타래가 풀릴 수 있다. 다음 달 발표될 예정인 '리카넨 보고서'가 주목된다. 금년 2월, EU 집행위원회가 유럽연합의 법에 반영하고자 핀란드 중앙은행 총재 에르키 리카넨(Erkki Liikanen)이 이끄는 전문가 그룹에게 은행구조조정 방안을 주문했다. 지난 6월에 터진 라이보 스캔들(은행간 적용금리 조작사건) 이후의 분위기는 예금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 즉 글래스 스티걸의 부활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한다.

사태가 악화되기 전에 미리 개혁하면 좋을 것이다. 일군(一群)의 시끄러운 농성자들이 아니라 더 큰 고통이 월가를 점령할 때 월 스트리트의 개혁이 비로소 완성될 것인가. /김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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