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32 자청비 여성 ①


코기토 이후

신화에 대한 연구는 일단 어떤 불가사의한, 합리적일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연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데카르트의 명제 이후 우리는 최근까지 이성, 실증, 법칙, 이론에 의한 지식과 논리로 살아왔다. 상상력과 감성의 지식들은 홀대되었고 많은 지식인들은 신화연구를 비논리적이고 우스운 것으로 생각한다.

▲ 푸코는 코기토에서는 광기가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코기토에서의 실천은 광인을 감금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합리주의, 실증주의 이데올로기는 세계의 사물과 인간관계를 설명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이성과 논리만으로 복합적인 인간 구조를 설명할 순 없었다. ‘이성적인 인간’, ‘합리적인 진보’의 프로그램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인간의 이성과 그에 의한 진보를 꿈꿨던 프로메테우스가 신에게서 불을 훔쳐온 벌로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혔듯, 인간 이성의 절대적인 신비화는 인간의 간을 망쳐 피곤에 빠지게 했다. 그의 후예들 역시 합리적인 이성과 판단으로 세상을 주도면밀하게 산다고 하는데도, 일은 늘 꼬이고 누렇게 뜬 얼굴로 피로를 달고 사는 중이다.


실증, 이성, 과학, 계몽에 근거한 완벽한 질서들이 사상누각이라 질책 받으며 신화는 대두되었다. 과학과 역사의 뒷전에 밀려나 있었던 신화, 신화적 사유들이 재발견되고 있다.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 못해서 경시되어 왔었던 몸, 꿈, 이미지, 상징, 기호, 의미에 대한 연구들이 붐을 이루고 있다.

▲ 루벤스. 포박된 프로메테우스 / 네이버 사전

신화, 러브콜


우리는 씌여진 역사와, 과학이 도출해 낸 법칙과 현상들을 객관적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왔다. 그러나 원인에 따르는 결과, 조각난 시간과 공간을 읽는 과학과 역사읽기가 진리에 이르는 길이 아닌 것은 자명해졌다.


제주도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역사책에 쓰인 대로 달달 외웠지만 구석기 시대의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씌여진 많은 역사들이 어떤 의도를 가진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기록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통해 여실히 본다.
현미경을 통하여 어떤 물체를 보았을 때 우리가 보는 것이 과연 그 물체 자체일까? 하는 물음에도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없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증명되고 일반화된 법칙과 이론들이 과연 과학적이냐 하는 물음에도 역시 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 조용현의 책표지

 

많은 편견처럼 과학과 신화가 대립적인 지점에 놓여 진 것만도 아니다.
신화는 태초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자연환경과 인간이라는, 자신 이외의 타자들에게 가졌던 끊임없는 관심들, 이해하고 예측하고 싸우고 절망하고 희망해 나가면서 내린 우주와 인간에 대한 관찰이다. 그런 면에서 신화는, 많은 과학적 명제들처럼 그 당시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과 예측을 기반으로 만든, 인류가 제기한 최초의 과학적 가설이고 명제다.


인류의 경험과 상상력들이 그들이 획득한 과학적 단초들과 결합하면서 뗀석기, 간석기를 사용하게 하고 수렵과 채집생활에서 점점 농경생활로 옮겨가게 했듯, 신화 역시 그 당시 사람들의 이러저런 과학적 단초들에 근거한 예측, 경험적 발견, 상상력의 결합물인 것이다.

아날학파의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역사를 정치적 사건 같은 짧은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단기지속의 역사, 상당한 기간에 걸쳐 변화하는 경기변동과 같은 중기지속의 역사, 그리고 장기적으로 거의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기후나 지리 등의 자연적 조건과 그것에 의해 오랜 기간 형성된 관습이나 의식구조 같은 장기 지속의 역사로 구분한다.


그는 사회나 문화의 연구들이 '장기 지속 기'보다 '단기 지속 기간'의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는 단기지속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논쟁 등은 전면적으로 부각되지만, 그 사회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일상의 구조와 같은 거의 불변하는 장기지속의 흐름과 경향이라고 한다.


결국 그는 장기 지속의 역사, 즉 거의 변하지 않는 기후나 지리 등 자연적 조건과 그것에 의해 오랜 기간 형성된 관습, 의식구조 등을 구체화하고 사회학적 관점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의식주 문제를 연구함으로써 역사가 구조와 규칙성이라는 틀을 가지고 제대로 된 종합, 전체의 의미심장한 틀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신화에 대한 연구, 신화의 원형에 대한 연구는 브로델이 지향하는 연구의 하나일 것이다. 기후나 지리 등 자연적 조건과 함께 형성된, 그 사회의 사회문화적 지형에서 가장 밑바닥, 융이 집단무의식이라 부른 신화와 신화적 사유들은 브로델이 말한 장기지속의 역사다. 이를 바탕으로 현실의 인간들에 대한 문제를 연구함으로써 사회는 제대로 된 종합, 의미심장한 틀을 제시할 수 있다.


노엄 촘스키가 말했듯 모든 구조가 서로 상이하고 철저히 불가지론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번역을 가능하게 하는 그 어떤 토대가 존재한다면, 신화는 바로 그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신화는 마치 헤파이토스가 바람난 아프로디테를 보다 정확히 보기 위하여 쳐 둔, 보이지 않는 청동 그물처럼 사회를 훨씬 더 본질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의미망인 것이다.

▲ 할머니는 왕실 세탁부. 토릴 코브, 캐나다, 노르웨이, 1999, 10분, 애니메이션왕실의 세탁을 하며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할머니가 2차 대전을 겪으며, 자신만의 능력과 방법으로 나찌에 저항한다. 개인의 삶이 정치, 역사와 어떻게 조우하는지 볼 수 있게 하는 영화. 영화도 사회의 본질적인 의미망들을 드러내주는 좋은 매체다.(사진 제공. 제주여민회, 2011년 제주여성영화제)

신화연구란 지적 실천을 맥락화하고 정치화하는 특정한 방법


실제 역사는 이미 끝나버렸다. 아무도 그것을 똑같이 복원할 수 없다. 우리가 역사를 본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들을 붙잡아 놓고 그 의미망 속에 겹쳐진 역사의 담론들을 보는 것이다.


신화 역시 담론의 한 형태다.
그렇다면 진리에 이르는 길은 원인과 결과, 시간과 공간들의 겹쳐져 있는 것들을 읽어내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구성하는 객관적인 물리적 특성을 아는 동시에 그 사람의 친절하지만, 고집스럽기도 한 주관적인 특징도 읽어내는 것이다. 인과과정에 결속된 물리적인 365일을 살아온 것 이상으로, 종잡을 수 없었던 그 사람의 ‘바람이 미친 듯 불어댔던 어느 날 오후’를 이해하는 것이다.


상상적 센스가 과학적 센스와 완전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 둘의 조화를 통해 바람직한 사회적 센스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외형과 내면, 이성과 감성, 무거움과 가벼움, 연속과 불연속, 통시적과 공시적, 순차적인 것과 비순차적인 것들을, 인간과 자연을, 실재와 가치를, 로고스와 미토스를 겹쳐서 읽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 연구에 대한 객관적이고 실증적 방법이다. 


로렌스 그로스버그는 문화연구란 지적 실천을 맥락화하고 정치화하는 특정한 방법이라고 하면서 맥락, 지식 그리고 권력 사이의 특정한 관계를 규정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이것을 모두 드러내는 것은 문화연구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했다.

 

자청비를 신화 자체로 그냥 놔두지 않고 자꾸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미토스 자체의 가치를 삭감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미토스 안에 내재해 있는 로고스를 찾아냄으로써 언제나 사회맥락적일 수밖에 없는 문화의 형성과 그 고유성을 살펴, 더욱 공고해지는 신화의 가치를 창출해내려는 의도다. 그리고나서 신화의 원형들이 실제 여성들의 의식세계와 생활모습을 어떻게 제약하는지, 또 어떻게 변용되고 창조적으로 해석되면서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담론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김정숙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