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고현주씨 ⓒ프레시안(최형락)
재개발 아파트를 찍은 '허무와 빛 그 사이에서' 작업 ⓒ고현주
권력의 공간을 찍은 '기관의 경관' 작업. 국회. ⓒ고현주

<고현주의 꿈꾸는 카메라> 프롤로그, 사진작가 고현주씨 인터뷰 

'고현주의 꿈꾸는 카메라'는 2011년 6월 8일부터 2012년 7월 19일까지 프레시안에 실렸던 연재물입니다. 고현주 작가와 프레시안의 동의를 얻어 앞으로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마다 제주의소리에서 연재할 예정입니다. 연재에 앞서 프레시안에 실렸던 인터뷰를 싣습니다. <편집자 주>

사진가 고현주, 제주도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들 교육보다는 자리보전에만 눈이 먼 교장과 한바탕 싸운 뒤 사진작가로 변신했다. 교사생활 6년만이었다. 사진가, 평소 꿈꾸던 일이었지만 현실은 동경하던 것과는 달랐다. 유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세계에서 스스로의 벽에 부딪쳐 하루 하루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국가인권위 소개로 소년원 아이들을 만난 건 그녀에겐 '사건'이었다. 처음 계획은 감옥이라는 공간을 찍어보자는 것이었다. 사진가로서. 하지만 어느덧 목표는 감옥에 갇힌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쥐어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2008년부터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며 달라지는 아이들. 어려운 환경을 살아 온 아이들을 보며 유복하게만 살아 온 스스로를 되돌아보게도 됐다. 올해로 4년째, 지금까지 4번의 전시를 열었다. 올 1월에는 여의도 국회 전시로 언론과 사회의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사진을 통해 희망을 가르치는 진짜 교사가 된 것이다.

그는 아이들의 변화에서 희망을 봤다. 그리고 그 희망을 스스로에게서도 찾아낼 수 있었다. 벗어나고 싶은 현실에서 마침내 탈출을 시도하는 이 둘의 만남은 그래서 더 궁금하다. 그는 이 소박한 문화실험을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소년원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소(SEESAW)라는 센터를 만들어 더 많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계획이다. "나는 예술만 할 생각이 없다"는 말은 지금 그의 생각을 가장 정확히 드러낸다.

감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소년원 아이들이 담아낸 사진은 어떤 것일까? 그 안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사진은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 속 이야기를 통역해 줄 수 있을까? 다음 주부터 <프레시안>에 '꿈꾸는 카메라' 연재를 통해 소년원 아이들이 카메라를 통해 본 그들의 세계를 우리에게 소개해줄 사진가 고현주를 만났다. <편집자>


프레시안: 어떻게 소년원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칠 생각을 했나?

고현주: 아이들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한 건 사진가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사진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많았을 때의 일이다. 월급을 받으려고 다녔던 디자인 사무실도 그만뒀을 때여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유명해지고 싶었지만 작가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어떤 시스템 같은 것은 너무 싫었다. 비즈니스를 잘하는 작가가 살아남는 구조, 시간강사를 따려고 청탁해야 하는 구조에 대한 반감이 강했다. 그래서 내가 잘하는 것,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2007년부터 감옥이라는 공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2006년 5월에 권력의 공간에 대한 작업인 '기관의 경관' 전시를 했는데 감옥으로 관심이 이동한 것이다. 교도소는 권력관계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국가인권위를 통해 안양소년원을 알게 됐고 촬영하다보니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2008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4년째다.

프레시안: 첫 수업은 어땠나?

고현주: 일주일에 한번, 두 세 시간씩 가르쳤는데 첫 아이들은 23명이었다. 처음엔 사진 이론서를 잔뜩 들고 갈 만큼 멋몰랐다. 아이들은 10분 이상 집중을 못했다. 그래서 다음 수업부터는 카메라를 한 대씩 주고 마음대로 찍게 했는데 작동법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다 알더라. 컵을 찍되 일상적 시선이 아닌 누워서 찍게 한다든지 하는 평소의 시야에서 벗어난 사진을 찍게 했더니 아이들은 제각각 기발한 사진들을 찍어냈다. 기존 프로 작가들이 놀랄 만한 사진들도 많았다. 오히려 악조건에서 찍었던 것이 좋은 작용을 한 것 같다. 교실, 정원, 운동장 밖에 공간이 없는데 그 제한되고 익숙한 공간에서 아이들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냈다. 풀 한포기도 아이들에겐 사진거리였다.

▲ 사진가 고현주씨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소년원의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인가?

고현주: 대부분 가정환경이 불행하다. 성인들의 범죄를 모두 다 짓고 들어온다. 우리가 감당할 수준의 고통을 넘어 본 아이들이다. 아이들과 대면하기 전에는 단순하게 아이들이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얘기를 잘 들어보니 그런 환경에 있었으면 나는 어땠을까를 생각하게 됐다. 내가 지내 온 시간들이 너무 창피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에게 대한 편견이 없어졌다.

프레시안: 수업의 목적이 뭐였나? 실제로 아이들이 달라졌나?

고현주: 가시적인 목적은 전시와 책 출간이었다. 하지만 자기 이름으로 된 액자가 걸리는 것을 보며 '나도 할 수 있구나'하는 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 소년원의 교육이라는 것이 나가서 먹고 살 방법을 알려주는 것인데 난 그것을 넘어 자존감을 길러주고 싶었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나쁜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첫 전시 할 때 감격해서 우는 아이들이 많았다. '저도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봤다. 아이들은 자기 사진 앞에서 지인들과 사진을 찍으며 그렇게 자랑스러워할 수 없었다. 사진학과에 진학하겠다고 하는 아이들도 여럿 생겼다.

프레시안: 첫 전시는 언제 열었나?

고현주: 2009년 12월에 첫 전시회를 가졌다. 그 이후로 2010년에는 과천 법무부청사에서, 2010년 여름학기가 끝난 후에는 학교에서, 올해 1월에는 국회에서 전시했다. 국회에서 전시할 때 아이들의 의사를 물었는데 전시회를 하겠다는 의지가 아주 강했다. 45명의 아이들이 100여점을 걸었다.

음악교사에서 사진가로 변신

프레시안: 어쩌다가 음악 선생님이 사진가가 됐나?

고현주: 제주대학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서귀포의 한 중학교에서 음악 교사를 했다. 목석원 삼촌(제주 돌문화공원을 조성한 사진가 백운철이 고현주의 외삼촌이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어렸을 때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삼촌은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어려운 사진집을 많이 갖고 있었다. 삼촌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진에 빠져들었다.

프레시안: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사진가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나?

고현주: 오히려 사진을 하면서 음악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하지만 요즘처럼 바쁜 일이 많을 때는 그냥 교사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웃음)

사실 소년원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주위의 시선이 좋지 않았다. 지도교수는 그냥 제주도로 내려가라고까지 했다. 고집과 오기가 발동했다. 나를 무기력하게 보는 시선을 참을 수 없었다. 지난 3년 동안 모든 걸 다 쏟아부어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거다.

▲ 재개발 아파트를 찍은 '허무와 빛 그 사이에서' 작업 ⓒ고현주

 

▲ 권력의 공간을 찍은 '기관의 경관' 작업. 국회. ⓒ고현주

시소(SEESAW) 센터 준비중, "나는 예술만 할 생각이 없다"

프레시안: 다시 아이들 얘기로 돌아가 보자. 요즘의 교육방식도 처음과 똑같나?

고현주: 2회부터는 아이들의 마음을 스스로 드러내게 하려고 설문지를 들고 갔다. 설문지에는 '지금껏 들었던 말 중에 가장 기분 좋았던 말, 언제, 왜', '가장 가슴 아팠던 말, 언제, 왜' 등을 쓰게 했다. 그러고는 다시 이미지로 표현하게 했다. 답답할 때 일기를 쓰면서 토해내듯 먼저 글을 쓰게 하고 사진을 찍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배운 아이들이 다시 소년원으로 가서 가르치게 할 계획도 있다. 졸업생이 선생이 되는 시스템이다.

프레시안: 아이들이 내면의 얘기를 많이 하나?

고현주: 거의 다 한다. 효과가 좋았다. 지금은 내게도 속마음을 많이 얘기한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얘기를 들어주면서 가까워진 덕이다.

프레시안: 영화를 만드는 프로그램도 있다는데...

고현주: 시를 읽하고 사진을 찍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이들이 참 잘 한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영화감독이 와서 아이들과 같이 <너는 나의 친구>라는 영화도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과 편집까지 했다. 내용은 아이들의 일상생활을 담은 것이었다. 아이들의 일상을 들어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한 것이었는데 법무부 쪽에서 너무 재미가 없다고 해서 국회전시장에서는 상영하지 못했다. 오는 9월부터는 최정렬 감독이 대전보호관찰소에서 영화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할 것 같다. 소년원에 관심이 많아 가보고는 먼저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프레시안: 시소(SEESAW)라는 단체를 만드는 것으로 안다. 어떤 단체인가?

고현주: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아이들에게 영상매체를 통해 세상과 소통을 하게 해주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스스로의 권위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그것을 되찾는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현재 사진가 3명과 기획을 도와주는 한 분이 있고, 뜻을 같이 하는 일반회원 40여명이 있다. 올해 국회전시 후 만들기 시작했다. 취지에 동의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일반회원이 될 수 있다. 특별회원은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얼굴을 알려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다. 회원은 지금 모으고 있지만 아직 센터가 정식으로 생긴 것은 아니다. 시소라는 이름으로 1년여 간 활동한 기록이 필요해 내년 초 모양이 갖춰질 것 같다. 지금은 정관을 만들고 CI 작업을 하고 있다. 순수한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고 교육문제에 고민을 많이 하는 분들이 참여해 주면 좋겠다.

프레시안: 시소(SEESAW)의 홍보는 어떻게 하고 있나?

고현주: 영상물과 파워포인트 등을 들고 다니면서 홍보하는 수준이다. 홍보의 자리가 마련되면 좋겠다. 그리고 12월 전시 전에 심포지엄을 하나 연다. 예술이 이 아이들에게 왜 필요한지를 토의하는 자리다. 사회학자, 심리치료학자, 대중문화가 등이 모인다. 사진가와 아이들도 참여시킬 생각이다. 아이들의 문제를 사회적 담론이 되도록 하고 싶다.

프레시안: 아이들의 사진들을 모아 책으로 출간할 계획할 생각은 없나?

고현주: 생각은 있는데 글 쓰는 일이 참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작가나 기자처럼 글쓰는 사람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글의 포맷을 정하고 나니 좀 쉬워질 것 같다.

프레시안: 올해는 아이들 사진으로 전시할 계획이 또 있나?

고현주: 올 하반기에 한다. 지금까지는 내가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받거나 정치인에게 손을 벌려서 그 돈으로 했지만 문예기금은 개인으로서 더 받기도 어렵고 정치인들에게 계속 손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국회 전시도 매년 하기로 약속이 돼 있는 건 아니다. 일단 사진가를 모아 시소(SEESAW)를 만들고 나면 도움을 주겠다는 국회의원이 있는 정도다.

프레시안: 지금까지 강사료도 받지 않고 일했다고 하는데 앞으로는 지속가능한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고현주: 처음부터 그런 기대 해 본 적 없다. 일단은 실험적으로 시작했고 교육 프로그램과 시소(SEESAW) 센터가 자리 잡히면 그때는 교사들에게 정당하게 강사료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행히 6월부터 대전보호관찰소에서 교육을 시작하는 서애리 선생님은 보호관찰소에서 책정한 프로그램비로 강사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프레시안: 지금 필요한 게 뭔가?

고현주: 가르칠 작가, 돈 대줄 사람, 그리고 카메라다. 특히 카메라는 두 명이 1대를 쓰고 있다. 시소에 회원을 널리 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홈페이지는 아직 없다. (연락처: 02-568-6198)

프레시안: 지금까지 해 온 일이 자신에겐 어떤 의미가 있나?

고현주: 어떤 작가는 돈도 되지 않는 이런 작업을 왜 하냐고 묻는다. 그런데 나는 이른바 대학원 사진최고위과정과 같은 곳에만 돈과 사람이 몰리는 게 싫다.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한테는 재능밖에 없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나눴으면 좋겠다. 지금은 예술과 사회가 따로 떨어져 있는데 사실은 다 맞물려 있다고 본다. 나는 예술만 할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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