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수의 따뜻한 세상> 독소적인 부양의무제 조항 개선돼야

“자식에게 부양기피사유서를 받아오라고 하는데?”

 어느 어르신이 하는 이야기이다. 원래 정정하셨고 부지런한 분이셨지만 초로에 뇌경색이 찾아와 신체 왼편에 장애가 왔다. 아내와 오래전에 이혼하시고 혼자서 사시던 어르신은 치료비와 재활비로 재산을 다 써버리게 되어 기초생활보장수급자를 신청을 하게 되었다.하지만 이 어르신의 수급자 신청은 거부를 당했다. 이유는 20년 전에 소식을 끊어 사는 아들이 어느 정도 수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전산망을 통해 확인되어 자격이 미달된다는 것이다. 정말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서로 남남처럼 20년을 지내왔는데 아들에게서 부양기피 사유서를 받아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는 ‘부양의무제’라는 것이 있다. 직계혈족 및 배우자, 생계를 같이하는 그 밖의 친족사이에서 발하는 것이 부양의무이다. 이처럼 부양의무가 있는 자가 부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어르신의 예처럼 국가에서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대신에 ‘부양기피 사유서’나 ‘관계 단절 확인서’와 같은 부양의무자와의 단절 관계를 보여주는 문서가 있다면 부양의무자가 있음에도 수급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어르신은 부양의무자인 아들과 20년 만에 만나 부양기피 사유서를 써달라는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는다고 하신다. 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이혼 후 아들을 돌보지 못한 죄책감도 크고 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움이 앞선다는 것이다. 또한 낯선 공무원에게 여태 자신의 살아온 삶과 가정사를 낱낱이 밝히는 것도 거부감이 생긴다고 한다. 내 자식, 내 부모와의 관계 단절을 스스로 증명하라는 ‘사유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빈곤층에게 모멸감을 안겨주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부양의무제로 인해 극단적 선택까지 한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2010년에는 ‘연락조차 닿지 않는 자식에게 부양의무를 지우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노인부부가 차가운 골방에서 동반 자살한 사건이 있었고, 2011년에 일용직 남성이 장애가 있는 아들을 수급자로 만들기 위해 자살로 부양의무를 끊어 버린 예도 있다. 발견된 유서에는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것이 있다. 내가 죽으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동사무소 분들께 잘 좀 부탁드린다’라고 적혀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사위가 취업했다는 이유로 생계비를 받지 못하자 노인이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해마다 이 부양의무제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는 부정수급자를 걸러내는 것을 국정과제로 한 뒤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e음)’을 개통하면서 부양의무자를 자동으로 찾아낼 수 있도록 법원의 가족관계증명(옛 호적)을 수급자관리시스템에 연결했다. 그러자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던 가족관계는 물론 연락이 끊어진 부모·자식의 이름과 주소가 줄줄이 복지 담당 공무원의 컴퓨터에 뜨게 됐다. 국가가 ‘잊혀진’가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자  이젠 실제‘남남’이라는 증명을 수급 신청자들이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정부는 국세청으로부터 일용근로소득까지 자료를 입수해 전방위 조사를 벌였는데 그 결과  2011년 말 기초생활 수급자 11만명의 수급자격을 박탈하였고 3천9백억원의 생계비를 절감하였다고 홍보한 바 있다. 수급자들을 도덕적 해이감에 달한 사람, 혹은 국가재정을 축내는 잠재적 범죄자라는 전제하에 강력한 조사로 복지버블을 껐다고 자평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일까. 2012년 정부의 기초생활 생계급여는 2조3천6백억원으로 전년 2조4천4백억원에서 3.4% 삭감되었다. 수급자 역시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167만명에서 현재는 155만명으로 12만명이 줄어들었다. 제주의 경우 보건복지부에서는 약 3천1백여 가구를 급여중지 대상자로 추정하고 실제 조사결과 4백8십여 가구를 잠정적으로 급여중지 대상으로 통보하여 일선 공무원들이 수급자로부터 적지 않은 항의를 감래한 적이 있다.

그렇게 정부예산의 절감을 자평하는 동안 빈곤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항의가 속출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수급요청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감세와 4대강 사업 등 복지재정지출 규모 조정에 따른 서비스규모의 축소조정에 있지는 않은지 살펴 볼 일이다.  

부양의무제는 가족 부양의무가 1차적으로 가족에게 있다는 잔여적 복지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는 국가 및 자치단체 책임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으로 국가책임으로 생활유지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국민에게 필요한 급여를 행하여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된 기초생활보장법의 본래 취지와는 어긋나 있다고 하겠다.

▲ 고현수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상임대표 .

빈곤층의 안정된 생계보장과 삶을 위해서 부양의무제는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빈곤의 문제는 빈곤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에 있는 것이지, 개인의 도덕적 해이에 있다고 보는 것은 과한 비약이라 생각한다.

행복e음이 빈곤층에게 칼날이 되고 있지 않은 지 정부에게 되묻고 싶다. /고현수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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