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돌개, 물러서지 않고 견딘 세월이 무려..
외돌개, 물러서지 않고 견딘 세월이 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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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욱의 지질기행> 24 10만 년 해파의 침식을 견디고 남은 시스택(sea stack)

▲ 외돌개는 해식절벽이 계속되는 침식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암석의 단단한 부분이 침식을 견디고 기둥 모양으로 남은 것이다. 뒤에 보이는 섬은 범섬이다.

조선시대에 지금의 서귀포 해안은 군사기지였다. 서귀항 인근에 서귀진이 있었고, 지금의 삼매봉에는 봉수가 있었다. 서귀포의 빼어난 절경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다.

삼매봉과 외돌개로 이어지는 해안은 서귀포를 대표하는 관광지다. 몇 해 전 드라마 '대장금'의 명장면을 외돌개에서 촬영하여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린 적이 있는데다, 최근에는 걷기 열풍이 일고 있다. 게다가 며칠 전 막을 내린 세계자연보전총회를 즈음하여 하논분화구 복원사업이 논의되면서 이 일대에 더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름 간격으로 두 개의 대형 태풍이 제주를 휩쓸고 지나간 사이, 어느덧 계절이 바뀌어 완연한 가을이 되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와 구름과 바람이 천지를 요동케 하더니 금새 하늘은 푸른빛으로 물들고 바다는 한 없이 잔잔하다. 이틀간 태풍 '산바'가 남긴 흔적들을 지우느라 지친 심신을 치유도 하고, 새로운 계절을 기쁘게 맞기도 할 겸, 외돌개를 찾았다.

▲ 외돌개 산책로에서 바라본 삼매봉

외돌개는 돌이 홀로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최근 중국 관광객들을 위해 만든 안내판에는 고립암(孤立岩)으로 기록해 놓았다. 전설에는 이 바위가 고기잡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이 돌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이 바위를 '장군석'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고려 말에 최영 장군이 목호의 난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이 바위를 장군으로 변장시켰다는 민담에서 유래한 것이다. 실제로 공민왕 23년(1374년)에 고려조정은 최영을 '제주 행병 도통사'로 삼고 목호의 난을 토벌할 것을 명했고, 섬에 상륙한 최영 군대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 끝에 서귀포 범섬에서 목호 군을 섬멸했다.

외돌개 주변의 바위들도 제각각 이름이 있다. 그중에서도 '자리덕', '동너븐덕', '무근덕'. 고초간덕' 등 '덕'자로 끝나는 이름이 많은데, '덕'은 커다란 암반을 이르는 제주어다. 예나 지금이나 '덕'은 낚시꾼들의 사랑을 받는다.

▲ 이 일대는 천지연조면안산암을 기반암으로 한다. 천지연조면안산암은 서귀포 남성리 일대, 천지연폭포 일대, 서귀포 항 입구 등에 분포하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12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제주도의 대부분의 화산암은 검고 구멍이 많은 현무암인데 반해, 서귀포 남쪽의 것들은 회색빛을 띠고 구멍도 적은 것이 특징이다. 외돌개와 그 주변을 이루는 바위도 구멍이 적고 조밀한데, 학자들이 천지연조면안산암이라고 이름을 붙여놓은 암석이다. 천지연조면안산암은 서귀포 남성리 일대, 천지연폭포 일대, 서귀포 항 입구 등에 분포하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12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유동성이 큰 현무암질 용암류는 지표를 얇게 피복하며 멀리까지 이동한다. 제주도 동부는 대부분 현무암으로 덮여 있는데, 이 지층은 바다를 향해 완만한 경사를 이룬다. 반면, 서귀포 남부 해안 일대는 조면안산암질 절벽이 쉽게 관찰된다. 조면안산암질 용암류는 유동성이 작아 비고가 큰 지형을 만들게 되는데, 비고가 큰 지형이 해파의 공격을 받아 수직에 가까운 애식절벽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가파른 절벽은 외돌개 주변 해안에서도 이어진다. 외돌개는 해식절벽이 계속되는 침식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암석의 단단한 부분이 침식을 견디고 기둥 모양으로 남은 것이다. 이와 같이 남은 바위기둥을 시스택(sea stack)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배(pear)를 깎아 먹다가 가운데 심부는 먹지 않고 남기는 것처럼, 그 큰 바위를 깎아먹은 파도는 외돌개 바위만 남겼으니 경승지가 되었다.

▲ 이 일대 해안선은 곶과 만이 반복되면서 복잡한 구조를 띤다.

▲ 파도가 절벽을 깎아 해안선이 육지쪽으로 깊이 들어왔다.

외돌개 바위의 서쪽은 쇠머리코지라는 바위가 바다로 돌출되어 있고, 그 주변 절벽은 다시 깊이 파인 구조로 되어 있다. 그 외에도 이 일대 해안선은 곶과 만이 반복되면서 복잡한 구조를 띠는데, 이는 암석이 파도의 공격을 받은 과정에서 암석의 굳기와 해파의 강도의 차이에 따라 차별적으로 침식을 받았기 때문이다./장태욱

 
   
장태욱 시민기자는 1969년 남원읍 위미리에서 출생했다. 서귀고등학교를 거쳐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입학해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42년 후배가 됐다.  1992년 졸업 후 항해사 생활을 참 재미나게 했다. 인도네시아 낙후된 섬에서 의사 흉내를 내며 원주민들 치료해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제주대학교 의예과 입학해 수료했다. 의지가 박약한 탓에 의사되기는 포기했다.  그 후 입시학원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씨름하다 2005년에 <오마이뉴스>와 <제주의소리>에 시민기자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0년에 바람이 부는 망장포로 귀촌해 귤을 재배하며 지내다 갑자기 제주도 지질에 꽂혀 지질기행을 기획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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