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왕실 세탁부. 토릴 코브, 캐나다, 노르웨이, 1999, 10분, 애니메이션
왕실의 세탁을 하며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할머니가 2차 대전을 겪으며, 자신만의 능력과 방법으로 나찌에 저항한다. 공식적 역사와 개인의 일상이 교차지점! (제주여민회, 2011년 제주여성영화제에서 제공받은 자료다. 올해도 9월이면 다른 관계와 다른 생각을 보게 하는 영화들이 상영된다고 한다)
심리치유공간 '와락센터‘ 개소식, 정혜신 (사진출처. 미디어오늘).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한 관심. 공지영 (사진출처. 네이버블로그 21kwc)

<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35 자청비 여성 4

일상의 위대함

여성의 일상적인 모습들,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개키는 일이, 다만 하루를 주기로 소모되는 지겹고 하찮은 일상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는 여성들은 자청비 여신을 닮은 여성들이다.


사랑하는 문도령이 다른 여자와의 결혼식 때 폐백으로 쓸 비단을 짜는 자청비 여신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그런 순간에도, 한 올 한 올 정성을 다해 비단을 짜면서 거기에 자신의 사랑과 간절한 마음을 담는다.
많은 현실의 자청비 아내들은 정성을 다해 반찬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이리저리 궁리를 하면서 와이셔츠를 다린다. 고슬고슬 지은 밥, 정성껏 건네는 와이셔츠에는 자청비 아내들의 사랑과 영혼이 담겨있다.


이 자잘하고 잘 느낄 수도 없이 거듭되는 일상 속의 위대한 가치들에 자청비 남편들이 진심의 시선을 줄 수 있었다면, 세상과 역사는 획기적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 할머니는 왕실 세탁부. 토릴 코브, 캐나다, 노르웨이, 1999, 10분, 애니메이션왕실의 세탁을 하며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할머니가 2차 대전을 겪으며, 자신만의 능력과 방법으로 나찌에 저항한다. 공식적 역사와 개인의 일상이 교차지점! (제주여민회, 2011년 제주여성영화제에서 제공받은 자료다. 올해도 9월이면 다른 관계와 다른 생각을 보게 하는 영화들이 상영된다고 한다)

손을 예쁘게 하기 위해 빨래를 간 자청비 여신처럼 자청비 여성은, 늘 부지런히 단장하고 예쁘게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남성들이 활쏘기나 팔씨름, 오줌 갈기기 등 다만 남성이기 때문에 구축 가능했던 것을 바탕으로 폼을 잡는 것처럼 그녀는 섬세함,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 동정심, 외형적인 아름다움에 민감한 여성의 특질과 장점을 잘 알고 쓴다.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배려심은 그녀를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한다.
그녀는 고급 브랜드의 예쁜 옷에 혹하고 샤넬백도 살 것이지만, 상처받고 아픈 가족들을 위한 ‘와락프로젝트’ 같은 좋은 일에도 많은 돈을 기부할 것이다. 아프고 굶주린 아이들을 살피고 보듬는 것은 그녀들 대부분에게서 볼 수 있는 위대한 영성이다.

▲ 심리치유공간 '와락센터‘ 개소식, 정혜신 (사진출처. 미디어오늘).

 

▲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한 관심. 공지영 (사진출처. 네이버블로그 21kwc)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의 선봉에 선 것은 아니지만…

자청비 여신이 그랬듯 자청비 여성들은 명성이나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가까이에서 서로에게 따뜻함을 주고 살아가는 이웃의 마음을 가진다.


물론 자청비처럼 능력 있는 여성들이 여성평등을 위한 선봉에 서고 ‘땅 한 쪽 물 한 적’의 관리와 지배를 직접 장악했다면, 여성 권리에 대한 더 좋은 결과들을, 더 빨리 이룰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땅 한 쪽 물 한 적’을 포기한 것이 좋은 결정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오곡의 씨앗’을 택한 것이 여성비하라는 결정된 가치로의 순응이라 몰아세우는 것은 좀 지나쳐 보인다.


사회의 강요였건 개인의 선택이었건, 그건 현재의 자청비 여성들에게서 스스럼없이 흘러나오는, 자신이 늘 해 왔고, 잘 할 수 있고, 불편하지 않고, 몸에 맞는 선택을 한 것이다.
자청비가 원하고, 자청비에게 어울리고, 자청비가 잘 해내는 방법, 자기여성성의 특성을 바탕으로 한 선택들은 많은 현실의 여성들에게 내재해 있고 또 소화하기 쉬운 방법이어서, 활활 타오르지는 않지만 훨씬 지속적이고 넓은 유대로 이끌 수 있는 원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땅 한 쪽 물 한 적’이 의미하는, ‘남성적인’ 지배와 관리가 아니더라도 ‘오곡의 씨앗’이 의미하는 ‘여성적인’ 지속적인 노력과정으로도 에너지는 극대화될 수 있다. 지배와 관리는 부패와 불통에 기울어지기 쉽다. 씨앗은 일상적인 노력과 기다림, 기도 속에서 겨우 결실을 맺는다.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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