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토박이 소설가 오성찬 씨 26일 지병 별세…향년 72세

 

▲ 제주출신 소설가 오성찬 씨가 26일 오후 1시20분께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2세. ⓒ제주의소리 DB

제주 문학계의 큰 별이 졌다. 40여 년 전, 중편소설 「별을 따려는 사람들」로 등단했던 문학청년은 칠순의 초로에서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별’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났다.

제주출신 소설가 오성찬 씨가 26일 오후 1시20분께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2세. 

오 씨는 서귀포 서호동 출신으로,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를 떠나지 않고 제주에서 창작활동을 해 온 제주를 대표하는 원로작가다.

1969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별을 따려는 사람들」로 당선, 등단한 그는 한때 신문기자로도 활동했고, 민속자연사박물관 민속연구관을 지내기도 했지만 평생을 펜과 원고지와 함께한 원로 문학작가다.

오 씨는 지난 2008년 초 시야가 좁아지고 눈이 어두워지는 증상으로 뇌종양 진단을 받고 대수술을 받은 후 5년째 힘든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그 힘든 투병 중에도 지난해 ‘제주대학교, 책읽기 릴레이’ 선포식에 참가,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그를 위해 마련한 의자까지 마다한 채 꼿꼿이 선 채로 “제주어의 뿌리를 파서 제주어를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언어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강연을 펼쳐 주위를 감동케 했다.

그는 그동안 소설집 ‘탐라인’과 ‘한라산’, 장편 ‘포구’ 등 많은 작품을 통해 고단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제주 사람들의 억척스런 삶을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쳐온 제주 토박이 작가다. 

특히 초등학교 2학년 때 제주도4·3사건을 목격했던 작가는 ‘하얀 달빛’ ‘잃어버린 고향’ 등의 단편을 통해 4·3사건의 상처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제주 4.3사건의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절, 문학을 통해 가장 일찍 4.3의 실상과 아픔을 알린 용기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한 공산주의자를 위하여」와 「죽은 장군의 증언」 등 4‧3을 소재로, 당시 공산주의자와 토벌대원의 삶 혹은 희생자들의 모습 등을 그리는 등 역사의식에 주목해 역사적인 사건을 문학작품의 주요 소재로 다뤄온 것도 그의 작품 특징이다.

이밖에도 오씨는 10여 년 동안 제주도내 마을의 지명유래를 밝히는 마을시리즈를 발간해 향토사 발굴에도 크게 기여했다.

소설집으로 「별을 따려는 사람들」(1973), 「탐라인」(1976), 「한라산」(1979), 「습작우화」(1984), 「세한도」(1986), 「단추와 허리띠」(1988), 「모래 위에 세운 도시」(1989), 「한 공산주의자를 위하여」(1989), 「추사 김정희」(1993), 「그 짝글레기의 유품」(1993), 「크는 산」(1994), 「푸른 보리밭」(1998), 「진혼 아리랑」(1999), 「종소리 울려 퍼져라」(1999), 「죽은 장군의 증언」(2000), 「보제기들은 밤에 떠난다」(2001), 「우리 시대의 애가」(2002), 「버려지는 사람들」(2003), 「나비와 함께 날아가다」(2004), 「한라 구절초」(2004), 「아아 삼별초」, 「바람난 마을」(2006), 「슬픈 몽골반점」(2006), 「꽃상여」(2007) 등이 있다. 소설집 외에도 수필집을 비롯해 총 35권의 저서를 남겼다.

시인 허영선(전 민예총 제주지회장)씨는 “오성찬 선생은 문학뿐만 아니라 지역의 삶과 지역문화와 관련된 것이라면 어디라도 마다않고 직접 발로 뛰어다닌 분”이라며 “특히 제주의 향토색이 강한 작품을 많이 남겼고, 용기 있게 제주4.3을 가장 먼저 문학작품에 담는 등 진솔함과 한결같음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어주셨던 향토애가 너무 빛나는 분이었다”면서 그의 영면을 기원했다.

고인의 빈소는 제주영락교회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8일 오전 5시 40분. 장지는 제주시 양지공원.  유족 연락처 = 010-3369-5702번.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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