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욱의 제주 지질기행> 26 바람타는 바다, 바람타는 언덕

▲ 협재해수욕장에 서면 가을의 투명한 햇살 아래 비양도가 눈앞에 내다보인다.

금년에는 예년에 없던 큰 바람이 세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제주가 태풍의 길목에 자리자은 지라 남긴 상처가 작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추석 연휴에도 농부들의 손길은 분주하기만 하다. 가을걷이는 마쳤는지, 새롭게 파종을 한 땅 위에는 스프링클러가 바쁘게 돌아간다. 난리 뒤에도 어김없이 씨앗을 뿌리는 일은 농민들이 지켜온 삶의 철칙이다.

협재에서 비양도로 이어지는 옥빛 바다는 몽고 간섭기, 제주가 바람을 타기 시작하던 때부터 그 바람을 온몸으로 받았던 곳이다. 진도가 함락하게 되자 이문경이 이끄는 삼별초 군대가 이 바다를 통해 섬으로 들어왔고, 목호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최영의 군대도 이곳으로 들어왔다. 2차 대전 중에는 미군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고 부서진 일본 군함에서 쏟아진 시체가 이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기도 했다. 일본군의 시신을 묻었던 곳도 협재의 모래사장이다.

▲ 작가 신경숙은 작품 속에서 협재 바다에 대해 '그리 아름다운 바다는 처음'이라고 극찬한 적이 있다.

피비린내 나는 옛 일들을 잊어버린 듯, 10월의 협재 바다는 한없이 평화롭다. 이곳 모래사장에서는 가을의 투명한 햇살 아래 비양도가 눈앞에 내다보인다. 그리고 백사장을 가득 채운 모래는 체를 친 듯 고와서 신발을 벗고 걷기에 제격이다. 백사장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노라면 파도가 싱싱한 소리를 내며 몰려와 이내 그 흔적을 지우곤 한다.

일찍이 작가 신경숙은 단편 <깊은숨을 쉴 때 마다>에서 협재 바다에 대해 '그리 아름다운 바다는 처음'이라고 극찬했다. 협재 바다에 남긴 작가의 묘사다.

'눈앞의 바다. 내륙에서 자란 나는 세상에서 그처럼 아름다운 물빛이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파란 빛의 유쾌함. 협재의 바닷빛은 연푸르다 희고 짙푸르다 희고 청빛이다 다시 흰빛으로 겹겹으로 이루고 있었다. 협재의 해안에선 손바닥으로 하늘을 대볼 수 도 있을 것 같았다.'

작가가 이토록 극찬을 하도록 협재 해안이 아름다운 건 모래 때문이다. 협재 해수욕장은 해안선을 따라 약 1km 길이로 이어지고 바다 안쪽으로도 얕은 바다 아래 넓게 분포하는데, 바닷물과 더불어 환상적인 비췻빛을 발한다.

▲ 협재 바다를 아름답게 만드는 건 하얀 모래다. 해안선을 따라 체로 거른 듯 고운 모래가 길게 펼쳐지는데, 이 모래는 연제동물이나 홍조류의 껍질에 기원을 둔 탄산염암편이 대부분이다.

▲ 해빈의 일부는 해안식물이 덮고 있다.

협재 해수욕장의 경우처럼 바닷가에 모래가 쌓인 지형을 해빈(海濱)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해빈은 홍수 때 하천을 통해 바다로 흘러들어온 퇴적물이 파도에 의해 해안 가까운 곳에 쌓여 형성된다. 그런데 하천이 발달하지 않은 협재에 해빈이 발달한 것에 대해서는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제주도 해안의 백사장이 한반도 연안의 경우와 외관상 비슷하지만, 그 형성과정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제주도의 해안에 분포하는 퇴적물은 주로 화산암편과 탄산염(석회질)퇴적물이다. 화산암편은 주로 하천을 따라 화산암의 쇄설물이 운반되어 온 것이고, 탄산염퇴적물은 주로 해양생물의 유해가 쌓인 것이다. 김녕이나 협재 일대의 해안사구는 대부분이 해안생물에 기원하는 탄산염입자로 구성되었다. 이 지역의 탄산염퇴적물은 주로 연체동물(조개, 고둥 등)과 홍조류의 조각에 기원을 두고 있다.

지난 2005년 강원대학교 우경식 교수 등은 협재 지역의 해안사구의 형성시기를 조사하여 제주도 해수면의 변화를 추정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이 일대에 해빈과 해안사구의 연령은 대략 3500년 정도에 이른다.

18000년 전 동아이사의 해수변은 현재보다 100m 이상 아래에 있었다. 그런데 빙하기가 물러가고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해수면이 상승하여, 약 6000년 전 경에는 해수면이 현재와 같은 상태에 이르렀다. 협재와 비양도의 연안이 바다에 잠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수중에 연채동물 등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약 3500년 전쯤 해수면은 현재보다 좀 더 높은 상태에 이르렀고, 바다 속에 해양 생물이 번성하면서 다량의 탄산염광물이 퇴적되었다.

▲ 협재해수욕장 인근에 소나무 숲이 있는데, 여행객이 이곳에 텐트를 설치하고 있다.

▲ 해안에서 육지 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도 깊이 3m 이상의 두터운 해안사구가 나타난다. 협재의 해안사구는 대부분 풀이나 해송으로 덮여있다.

우교수 등의 연구에서는 협재지역 탄산염 퇴적물은 대부분 비슷한 연령을 나타냈다. 연체류 등이 다량 서식할 수 있던 환경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음을 지시한단.

한편, 협재 지역에는 해안에서 육지 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도 깊이 3m 이상의 두터운 모래언덕이 나타나는데 이를 해안사구라 한다. 해안사구는 해빈의 퇴적물이 바람에 의해 해빈 후면으로 이동하여 형성된 퇴적지형을 이르는데, 대부분 풀이나 해송으로 덮여 있고 어떤 지역은 주민들이 다른 지역에서 들여온 흙을 덮어서 경작지로 사용하기도 한다.

해빈의 퇴적물이 바람에 의해 이동하여 해안사구를 형성한 시기는 대략 700년 전쯤이라고 한다. 그 이전전까지만 해도 해수면이 현재보다 높아서 형성된 탄산염 퇴적물 대부분은 해수면 아래에 있었는데, 700년 전에 소빙하기가 시작되면서 해수면이 조금씩 하강하자 수면 아래에 있던 모래들이 북서풍을 타고 후면으로 이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협재에는 여름을 제외하고 일 년 내내 초속 10m 이상의 강한 바람이 분다. 제주도내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매우 강한 바람인데, 이는 협재가 시베리아 북서풍의 길목에 있기 때문이다. 이 바람이 해안의 다량의 모래를 후면으로 날려 보낸 것이다. 삼별초 이문경의 군대와 최영의 군대를 몰고 왔던 그 바람이. /장태욱

 
   
장태욱 시민기자는 1969년 남원읍 위미리에서 출생했다. 서귀고등학교를 거쳐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입학해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42년 후배가 됐다.  1992년 졸업 후 항해사 생활을 참 재미나게 했다. 인도네시아 낙후된 섬에서 의사 흉내를 내며 원주민들 치료해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제주대학교 의예과 입학해 수료했다. 의지가 박약한 탓에 의사되기는 포기했다.  그 후 입시학원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씨름하다 2005년에 <오마이뉴스>와 <제주의소리>에 시민기자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0년에 바람이 부는 망장포로 귀촌해 귤을 재배하며 지내다 갑자기 제주도 지질에 꽂혀 지질기행을 기획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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