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지른 절벽에 고인 남매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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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욱의 제주 지질기행] 27 수성분출로 형성된 응회환의 일부만 남은 수월봉

▲ 엉알산책로에서 바라본 수월봉. 응회환이 파도에 침식되어 일부만 남았는데, 깎인 자리에서 화산쇄서암층이 뚜렷하게 관찰된다.

태양은 매일 일출봉에서 눈부시게 빛을 발하며 제주섬을 잠에서 깨운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차귀도 앞바다를 핏빛 노을로 물들인 후, 태양은 고단한 하루를 마감한다. 그러면 수월봉은 붉은 빛으로 물든 황홀한 바다를 매일같이 눈물을 흘리며 쳐다본다.

수월봉은 해발 77m의 나지막한 봉우리이지만, 그 주변에는 제주도에서 드물게 평야지대가 넓게 펼쳐진다. 그래서 수월봉 정상에 서면 평야너머로 주변의 당산봉은 물론이고, 저지오름 가마오름 모슬봉 산방산 등 멀리 있는 산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임권택 감독이 만든 영화 <천년학>에 포구에 물이 차면 관음봉 산 그림자가 물결에 실려 신비로운 선학의 자태로 일렁이는 장명이 나오는데, 수월봉 정상에서 바라본 서쪽 차귀도의 형상은 마치 영화 속 관음봉과 닮았다. 저녁에 태양이 이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나서 차귀도 너머로 잠기는 모습은 한 편의 수채화다.

▲ 엉알산책로. 바다로 접근하는 길이자, 수월봉의 가파른 외벽을 관찰할 수 있는 탐방로이다. 앞에 보이느 섬은 차귀도이다.

▲ 화산재와 화산력 등 환산쇄설물들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화산쇄설암층이다. 층리가 뚜렷이 드러나고, 탄낭 구조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수월봉는 그리 높지 않지만 바다와 만나는 곳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수월봉에서 바다로 나가려면 '엉알산책로'라고 부르는 길을 따라 가야하는데, 이 산책로는 바다로 접근하는 길이자, 수월봉의 가파른 외벽을 관찰할 수 있는 탐방로이다.

수월봉의 외벽은 환산쇄설물들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퇴적층(화산쇄설암층)인데, 사층리가 뚜렷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다른 화산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탄낭 구조를 드러내 관심을 받는다. 이 같은 화산쇄설암층은 화산쇄설물이 화쇄난류(가스나 수증기와 뒤범벅이 되어 빠르게 흐르는 현상)의 운반과 퇴적작용에 의해 형성된 것인데, 이 퇴적층에는 입자가 큰 화산탄들이 곳곳에 박혀있다. 탄낭이란 화산쇄설암층 내부에서 화산탄이 박힌 아래쪽이 휘어져 내려간 구조를 이르는 말이다.

수월봉은 화산재를 비롯한 화산쇄설물이 고리모양으로 쌓여 형성된 응회환이다. 이런 응회환이 형성되려면 용암이 분출할 대 지표 부근에서 물과 접촉해야 한다. 용암과 접촉한 물은 갑자기 가열되면서 폭발적으로 기화하고, 그 폭발력은 용암을 잘게 부순 후 공중으로 날려 보낸다. 그리고 화산재를 포함한 화산쇄설물은 떨어져 그 주변에 쌓인다.

수월봉의 화산쇄설암층에서 탄낭구조가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수월봉을 만든 수성폭발은 상당한 위력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적잖은 화산탄을 공중으로 날려 보낸 것도 그렇지만, 화산탄이 떨어져 화산쇄설물 속에 박힐 때 지층의 구조를 휘게 할 정도였다니.

▲ 응회환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그림이다.(안내표지판에서 발췌)

▲ 차귀도에 남은 응회환 외벽이다. 수월봉 응회환의 일부만이 남아 바다에 고립된 것이 차귀도이다.

폭발의 위력이 상당했던 만큼 수월봉 화산체의 규모도 적지 않았다. 수성폭발로 생긴 응회암 퇴적층은 수월봉 뿐만 아니라 당산봉과 차귀도에도 두껍게 남아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당시 폭발이 차귀도와 수월봉 사이 바다 한 가운데서 일어났고, 그 결과로 지금의 고산리 해안과 차귀도를 포함하는 큰 응회환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응회환이 파도의 침식작용을 겪은 후 지금은 극히 일부만이 남게 되었는데, 응회환의 일부만이 남아 바다에 고립된 것이 차귀도이고, 육지에 남은 것이 수월봉에서 자구내포구로 이어지는 응회환 퇴적층이라는 것.

수월봉에서는 사층리와 탄낭 구조 말고도 바위틈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도 볼거리다. 이 일대 응회암층이 두껍고 치밀해서 지하수가 바닥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바위틈을 뚫고 옆으로 새어나오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 물을 '녹고물'이라고 부른다. 마을에는 수월봉에서 나오는 샘물과 관련하여 '수월이와 녹고'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전설에 따르면 수월이와 녹고 남매가 엄마의 병을 고쳐줄 약초를 캐러 갔는데, 수월이가 잡고 있던 밧줄을 손에서 놓는 바람에 누나 녹고는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누나를 죽게 했다는 슬픔에 몇날며칠을 눈물로 보내던 녹고도 결국은 목숨을 놓고 말았다.

▲ 응회암 지층이 치밀하게 때문에 지하수가 바닥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바위 틈을 따라 옆으로 새어나오는현상이다. 지층의 틈에 갯강구와 게 등 바다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사람들은 수월이가 떨어진 봉우리를 수월봉이라고 이름 붙였고, 이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이 녹고의 눈물이라 생각하여 '녹고물'이라 불렀다. 고산 앞바다의 낙조가 아름다운 것은 수월이와 녹고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연에 하늘이 슬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87년 고산리에서는 주민에 의해 선사유적지가 발견되었다. 유적지는 자구내 포구에서 수월봉에 이르는 해안절벽 위 대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수차례 이어진 발굴조사에서 화살촉, 긁개, 돌날, 섬유질 토기 등이 다량 출토되었다. 고산리 유적의 주인공들이 1만 년 전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제주섬이 한반도로부터 분리되자 섬에 고립된 사람들이라고 한다. 최근 학계는 이 유적지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유적지로 인정했다.

▲ 약 1만 년 전에 형성된 고산리 신석기유적지이다. 뒤에 보이는 오름은 당산봉이다.

한편, 수월봉 입구에 설치된 안내 표지판에는 수월봉 응회환은 약 18,000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18,000년 전이라면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기 직전이다. 한반도 주변 해수면이 지금보다도 100m 이상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수성폭발을 설명하는 데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용암이 지하수와 만나서 수성폭발을 일으켰을 수도 있지만.

어떤 기록에는 수월봉이 송악산과 비슷하게 1만 년 이내에 형성된 것이라고 적혀있기도 하지만, 1만 년 전 형성된 고산리 유적지가 수월봉 응회암층 위에 자리 잡은 것을 보면 수월봉은 1만 년보다는 훨씬 이전에 형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수월봉 생성시기, 기행에서 받은 숙제다.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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