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의 숨, 쉼] 때로는 길을 잃어도 좋다 

▲ ⓒ김희정

 참으로 아름다운 가을 날 친구와 나는 길을 잃었다. 그것도 오라동 동네 한 복판에서……
 지난 토요일 아침 친구와 나는 한 걷기 행사에 참여했다. 차를 출발지인 관음정사 뒤편 골목에 세워놓고 수많은 인파에 묻혔다 벗어났다 하며 걷는다기보다 떠밀리는 느낌으로 그 아름다운 길을 흘러간 것이다.

 일정대로라면 한라산 관음사가 종착지였고 우리는 해질 무렵에나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와 나는 반쯤에서 다시 돌아오기로 뜻을 맞추었다. 우리가 한라산을 오르지 않고 돌아오기로 한 가장 큰 핑계는 각자 두고 온 일상의 무게였다. (이것은 표면적으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뒷글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우리는 그것 때문에 길을 잃은 게 아닐까 싶다. ) 아무튼 핑계가 있으니 우리는 정실에서 택시를 타고 빨리 차를 세워둔 관음정사 뒤편으로 돌아가야 했다. 점심을 맛나게 먹고 우리는 아주 잠깐 택시를 잡는 상황을 연출 했지만 택시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실은 친구도 나도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암묵의 합의, 속마음을 드러내었다.

 “야, 우리 방선문 계곡을 다시 타고 내려가게. 너무 아름다웠는데, 아까는 정신없이 와서… 좀 걸었다는 기분도 내고 말이야.”

 그 마음이 내 마음이었으니 망설일 까닭이 있겠는가?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다시 그 길을 되돌아와야 하는 절실한 핑계를 만들었다. 우리의 깊은 속내는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겉마음을 잠시 뒤로 물러서게 하고 까닥까닥 방선문 계곡을 내려갔다. 아까와는 달리 사람이 거의 없어 적막하기조차 한 아름다운 계곡, 선계의 골짜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게 맞지 싶었다. 더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더러는 침묵을 하기도 하면서 걸었다. 숲 냄새는커녕 앞 사람의 땀내를 맡으며 꾸역꾸역 밀려왔던지라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친구는 2시 40분쯤 공항에 시어른 마중을 나갈 예정이고, 나 역시 내심 처리해야할 (명절 연휴라고 밀어둔) 수업, 글쓰기 등 등, 밀린 일들을 계산해 두었다. 계산대로 부지런히 걸어서 차까지 가면 시간은 참 잘 맞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각본이었고 우리는 둘 다 일상의 임무들을 놓쳤다. 둘이 헤어지는 어이없는 상황까지 합해 세 번이나 길을 잃었는데 오후3시가 넘도록 따가운 태양의 눈총을 받으며 우리는 길 찾기 놀이(?)를 즐긴 것이다.

 첫 번째는 방선문 계곡을 잘 내려와서이다. 큰 길을 건너  마을길로 잘 들어섰는데 갈림길이 나왔고 갈림길에서 우리는 둘 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합의가 잘 되었는지…) 좁은 길을 외면하고 넓은 길을 택해서 갔다. 그런 것이 마을을 빠져나오니 너무나 아래쪽으로 내려온지라 30분 이상을 서쪽으로 걸어올라 가서 어찌어찌 이정표를 다시 찾았다. 그러나 그 기쁨과 만족감도 잠시 그 이정표를 따라 다시 두 번째 마을길로 들어섰는데 분명히 갈림길도 없고 그 길로 죽 잘 따라갔는데(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았다.) 아뿔싸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큰 길로 빠져나와 보니 영 다른 곳이었다.

  나의 경우 이번엔 정말로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조차 안 되었다. 마을로 들어가자 다시 갈래 길이 나왔다. 그 갈래 길에서 잠시 친구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휙 하고 사라졌고, 나는 스마트한 시대답게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위치파악을 해보는데 스마트폰이 나를 비웃을 뿐 소득이 없었다. 그런데 그 몇 분 사이 친구와 나는 헤어졌다. 두 갈래 중에서 나는 또 반대방향으로 친구를 찾아 골목으로 들어가고 친구는 길을 찾은 것 같다며 나를 부르러 오고 찾으러 가기를 반복 한 뒤 전화통화를 하여 다시 상봉했다.

  이상하게도 동네 골목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없었다. 우리가 오라동 동네를 샅샅이 뒤지는 동안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 아무튼 제자리에서 만나 쭈뼛거리며 동네 식당에 들어가 길을 물어보니 목적지와 참 많이 떨어져 있었다. 멀어도 어쩌겠는가? 지금까지 걸어온 것이 아까워 힘을 내어 마저 걷고 걸었다.

  친구는 이쯤에서 할 수없이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이러저러해서 공항에 못 나가니 먼저 아이들 데려 가라고 전화를 했고, 나 역시 오늘 해야겠다던 일상의 책무를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길을 잃었으니 어쩌겠는가.
 
 이 좋은 가을 날 우리는 정말로 길을 잃었다. 마치 멍청한 두 마리 돼지처럼 진땀을 촐촐 흘리며 반나절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나 오랜만에 작은 기쁨들도 맛보았다. 오십이 다된 아줌마는 어디로 가고 어느덧 마치 판타지 동화 속의 아이들인 양 길을 잃은 것도, 길을 찾는 것도 즐겼으며, 그 사이 양념처럼 서로에게 바보, 멍청이, 돼지라고 흉을 보면서 반듯함에 갇혀있던 마음도 실컷 풀어내고 2시 반 귀가 예정에서 4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우리가 그렇게까지 멍청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이다. 아무리 멍청하기로 방금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갈림길만 나오면 길을 잃고 헤매겠는가. 그것도 세 번씩이나. 다만 배려 깊은 우주가 나와 친구로 하여금 이 아름다운 가을 날 이벤트를 만들어 준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면 친구도 나도 어쩌면 처음부터 길을 잃을 음흉한 속셈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주어진 일상의 책무를 수행하느라 습관적으로 따라 걷고 있는 내 삶을 흔들어 잠시 멈추게 하였으리라. 그 숨구멍으로 나는 큰 숨을 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돌아갈 목적지를 정확히 알고 잃는 길은 하나의 장치이다. 순간순간 당황스럽고 순간순간 막막해도 우리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 성취감조차 느낄 것이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갈 것이므로.

 우리의 삶도 그와 같으리라.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때때로 길을 잃어도 좋을 것이다. 어느 해보다 아름다운 가을날이다. 당신도 길을 잃고 싶지 않은가?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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