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의 경제칼럼] 프랑스와 스페인의 차이

유럽재정위기의 진전을 지켜보는 많은 눈이 온통 스페인으로 몰려 있다. 세부적으로는 두 가지에 대해서다. 금년 6월에 스페인 은행들의 자본금 확충을 위해 지원하기로 한 1000억유로의 집행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와, 지난 달 유럽중앙은행이 어려운 나라들의 정부국채를 매입해주겠다고 한 호의에 대하여 스페인이 어떻게 응하려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다.

우선, 첫째 항목인 은행 구제자금은 아직 한 푼도 집행되지 않았다. 9월 29일에 비로소 스페인 중앙은행은 자국 은행구제에 필요한 총 자금을 593억유로로 산출하여 발표했다. 이 중에서 최소한 4백억유로를 유럽안정기구(ESM)에 지원 요청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그 전에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여러 이유로 인해 이 지원금액은 스페인 정부의 계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후일 ESM이 해당국 정부를 거치지 않고 문제은행들을 직접 구제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이 부분('legacy asset')을 스페인 정부로부터 이관해 가져갈 것을 스페인은 원하고 있다. 이점에 대해 독일 등이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아 스페인은 이 지원금액의 요청을 미루고 있다.

둘째, 유럽중앙은행의 국채매입은 스페인 정부로부터의 공식 요청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은 이것을 자기들에게 어떤 이행조건을 제시하기 위한 설정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에 스페인은 9월 27일, 이제까지 중 가장 강도 높은 재정적자감축 계획을 담은 2013년 예산을 공개했다. 조건을 강요받기 전에 먼저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스페인의 명예를 조금이라도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듯 하다. 시장의 불안이 진정되지 않고 스페인 국채의 금리가 더 낮아지지 않는 이면에는 이런 스페인의 자존심이 얽혀 있다.

자존심에 얽힌 스페인

감축 목표액은 400억유로다. 이것으로 내년도의 재정적자 규모는 GDP의 4.5%로 낮아 지게 된다. 작년의 9%, 금년 예상치 6.3%에 비하면 매우 의욕적인 시나리오다.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세수는 늘리고 세출은 줄여야 하는데 스페인은 세출을 줄이는 데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세수증대를 위해서 부가가치세율을 현 18%에서 21%로 올리는데 이것의 효과는 약 50억유로에 불과하므로 대부분의 부족액은 연금 등의 삭감으로 충당해야 한다.

하루 차이를 두고 9월28일에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재정적자 감축 계획은 매우 다르다. 프랑스의 감축 목표액은 300억유로다. 프랑스는 그 중 200억을 세수 증대로 달성하려 한다. 법인으로부터 100억, 가계로부터 100억을 더 걷는데 법인은 대기업 쪽에 더 부담을 지우며 가계의 경우는 연간소득이 15만유로(한화 2억2000만원)를 넘는 가계에 대해서 그 초과금액에 45%의 세율을 적용한다. 전체 인구 중 상위 약 10%가 이 충격을 감당하게 된다.

항간의 주목을 끌었던 75% 세율은 연간소득 100만유로(한화 14억5000만원)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하여 적용하는 한계세율로서 그 대상은 전국적으로 2000~3000명이며 그 증세 효과도 다 합하여 몇 억유로에 그친다고 하니 이 부분은 수사적인 의미가 더 크다 하겠다.

정리하면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프랑스는 세수 증대에, 스페인은 지출 감축에 더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프랑스는 좌파적, 스페인은 우파적 해법이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은 대선 때의 약속대로 가는 것인데 문제는 스페인이다. 돌이켜 보면 스페인 문제의 핵심은 부동산 버블에 있었고 그 씨앗은 프랑코 극우 파시스트 정권 말기인 1960년대와 70년대 초 '스페인의 기적' 중에 뿌려졌다고 보아야 한다.

그 후 명목 집값은 16배로 뛰었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해도 3배 이상 올랐다. 이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니 어느 쪽이 집권을 해도 감당하기가 무척 힘든 것이다.

좌와 우의 프랑스와 스페인

스페인과 프랑스의 차이는 금년 중 두 나라 10년 만기 국채의 평균 시장금리가 프랑스 1.98%, 스페인 5.97%인 점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스페인과 우리나라는 여러 점에서 유사하다. 경제규모도 각각 세계 12위와 15위다. 한때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권이 경제성장을 크게 이끌었다는 경험도 공유하고 있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문제는 경제민주화다.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 살벌한 경제의 장에서도 지켜지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차이는 좌와 우를 떠나 두 나라의 민주주의의 진도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우리나라의 앞으로의 5년을 희망을 가지고 기대해 본다.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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