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의 숨, 쉼] 내가 나를 볼 수 있다면, 안아줄 수 있다면

▲ 일본 애니메이션 '나루토'. 옛 것, 옛 교훈을 잘 살려 인기를 얻은 예다. <네이버 캡쳐>

위키백과가 설명한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 ‘나루토’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불의 나라 나뭇잎 마을의 수장인 호카게를 목표로 열심히 수련하는 소년 닌자 우즈마키 나루토(16)를 중심으로 그려진 닌자 액션 만화”

내가 나루토를 보게 된 것은 나루토 열혈 팬인 아들놈의 꼬임에 넘어가서다. 몇 년 전 아들이 너무 열심히 나루토를 보고 있기에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엄마로서 당연히) 온갖 잔소리를 하며 주옥같은 고전의 세계로 들어오라고 강하게 권했다. 하지만 아들은 반대로 완전 재미있다며 나루토의 세계로 나를 초대했다. 초대해준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몇 편 같이 보다가 나도 나루토 다음 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해 겨울, 아들 딸과 나는 ( 더할 수 없을 만큼 사이좋게) 나루토를 보며 긴긴 밤을 지새웠다.


내가 나루토를 사랑하는 이유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힘과 그 속에 녹아 있는 ‘삶의 진정성’ 에 대한 끌림 때문이다.(여기서 굳이 닌자와 일본 문화에 대한 문화적 토론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루토를 이끌어가는 이야기의 중심 가운데 하나가 미수(尾獸)와 인주력(人主力)이다. 미수는 말 그대로 꼬리 달린 괴물이고 인주력은 그 미수를 봉인하고 있는 사람이다. 인주력은 미수의 힘을 그대로 갖고 있기에 엄청나게 강한 힘을 소유하지만 바로 그 힘이 문제가 된다. 너무 강한 힘을 가졌기에 인주력은 주변 사람들에게서 배척당하고 항상 외롭다. 봉인된 미수는 호시탐탐 세상 밖으로 나올 기회를 노리고 인주력은 그러한 미수를 제어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그 힘의 주인이 된다.


나루토는 가장 강력한 미수인 구미호를 봉인한 인주력이다. 외로운 고아소년 나루토는 항상 자신 앞에 놓인 삶을 정면 돌파하면서 세상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기쁨과 슬픔은 당연히 씨줄날줄로 얽혀있다. 여차저차 많은 일을 겪으며 나루토는 고된 수련 끝에 구미의 차크라를 제어하는 데 성공한다.

내가 눈물까지 찔끔 흘리면서 본것은 바로 그 고된 수련의 첫 부분이다.

이제 때가 되어 나루토는 구미의 힘을 자신의 에너지로 변환시키고자 한다. 그 수행의 첫 과정은 진실의 폭포에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또 다른 나루토는 부정 원망 분노의 에너지 덩어리다. 또 다른 나루토는 힘들고 괴로운 것을 말하지만 그 앞에서 나루토는 당당하게 말한다. 자신을 믿어보겠다고. 또 다른 나루토는 괴로워하며 말한다. 그럼 난 대체 뭐였냐고,

 

▲ 일본 애니메이션 '나루토'의 한 장면. <네이버 캡쳐>

여기에서 드디어 나를 감동시킨 명대사가 나온다.

“ 네가 있었기에 강해질 수 있었어” 이어 나루토는 또 다른 자기를 꼬옥 끌어안으며 말한다.
“ 넌 내가 되면 되는 거야... ! 너 역시 나니까... 이제 됐어. 지금까지 고마웠다”

오늘 햇볕 좋은 원당봉 산책로를 돌다 문득 나루토 이야기가 떠올랐고 이어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를 찾아왔다. 나루토 이야기에 빗대어 나를 보니 누군가 요점 정리해놓은 것처럼 한꺼번에 많은 생각들이 나를 찾아온다.

당연히도 삶의 중심은 ‘나’에서 시작되어 ‘나’로 끝난다. 누군가 정해놓은 (것으로 착각하는) 규준에 의해 결정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나’로 귀결되는 것이 삶이다.


긍정과 부정의 나는 서로 껴안고 진실로 화해하기까지 오랜 세월 팽팽히 맞서왔다. 그 과정에서 순간 순간 누가 강한가에 따라 내 몸 안에 봉인된 에너지는 출렁 출렁 물결쳤다. 긍정의 내가 강할 때 나는 좀 더 지혜롭고 현명했지만 부정의 내가 강할때는 ‘나만 옳다’는 심각한 어리석음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삶의 중반부에 들어선 나도 이제 때가 되어 나를 보니 가야할 길이 보인다.
나도 진실의 폭포 앞에서 내가 또 다른 나를 껴안아 내 에너지(삶의 다른 이름)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은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정면에서 똑바로 지켜보는 것이다.

돌아보면 참 후회스런 일이 많다. 중요한 핵심을 못 보고 꼬리만 쫓아가느라 많은 날을 헛되이 보냈고 그러지 않은 척 하면서 내내 화내고 짜증내고 원망하며 지낸 날이 휙휙 날아온다. 할 수만 있다면 쏘옥 도려내어 우주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안다.
그래서 이제 나도 껴안아보는 것이다. 나루토처럼.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것이, 나루토의 말이 맞다. 그런 내가 있어서 난 그 과정을 정면으로 혹은 우회해 돌파하며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 이다.

▲ 원당봉을 오르며 내려다 본 풍경. ⓒ홍경희

오늘의 나는 두 가지를 가슴에 새긴다. 나를 믿자, 깨어 있어 나를 보자. 나루토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나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나를 보아야겠다. 왜 나는 나이니까.
그러면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나는 나를 꼬옥 껴안아준다.
“ 너도 나야.... 이제 됐어. 지금까지 고마웠다.”

하루하루 해 지는게 아까울 만큼 청명하고 맑은 가을날이 계속되고 있다. 아름다운 날 괴로운 사람은 더 괴롭다. 그래서 지금 혹시 여러 가지 이유로 비틀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루토 처방을 해주고 싶다.
자기 자신을 꼬옥 끌어안기. 그리고 믿고 사랑해주기.

(덧붙임: 나루토는 일본 옛이야기의 원형을 많은 부분 차용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저도 할 수만 있다면 제주의 옛이야기 원형을 살린 재미있으면서도 우리의 철학이 담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 능력이 많이 부족해 젊고 발랄한 친구들이 이 일을 해준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같이 할 수 있다면 나로선 기쁨) 

           
▲ 홍경희(바람섬). ⓒ제주의소리

글쓴이 바람섬은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바라건대 청춘 이후의 내 삶은 독서와 요가로 채워졌다고 말하고 싶다. 요즘은 아들 딸의 강력한 사춘기 에너지를 갱년기 에너지로 힘겹게 맞서며 하루하루살아가고 있다. 좋은 부모 만나 서울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고향에 돌아와 10년 언론사에서 일했다. 그 후 이제까지 제주교재사를 운영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행복한 교육으로 가는 작은 다리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교재 교구를 판매하고 있다”

고 자신을 소개했다.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