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간의 큰 이벤트로는 10월12, 13일 도쿄에서 열린 IMF 연차총회와 10월 18, 19일 브뤼셀의 EU 정상회의를 들 수 있다.

총회에 때맞추어 발표된 IMF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는 금년과 내년의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재차 하향 수정하여 발표한 것 외에 이번 유럽 재정위기의 대응책으로 그 동안 일관되게 사용하여 왔던 세금인상 및 정부지출 삭감이라는 처방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연구결과를 실었다. 재정긴축(fiscal austerity)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들 과소평가했다는 내용이다.

IMF의 여성 총재 크리스틴 라가드는 이를 근거로 포르투갈, 그리스, 스페인 등의 경우 경제성장이 크게 저해되고 있으므로 재정긴축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취지의 공식 발언을 하여 독일의 강경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일주일 후 열린 EU 정상회의에서는 유로 존 은행들의 통합감독기구 설립이 최종 합의되었다. 그 출범 시기의 완급에 대해서는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의견 대립이 있었으나 결국 '2013년까지'로 못 박았다.

이것이 가동되면 유럽안정기구(ESM)가 부실은행들에게 직접 구제금융을 해줄 수 있게 되므로 스페인을 비롯하여 아일랜드, 포르투갈 같은 나라들은 초조하게 이의 진전을 기다려 왔다.

IMF가 이번에 새로 도출한 재정승수(fiscal multiplier) 추정치는 이제까지의 0.6보다 훨씬 큰 "최소 0.9 최대 1.7"이다. 정부의 순 지출액이 줄어들면 같은 규모 또는 그 이상으로 국민총생산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앞으로 유럽 재정위기 탈출을 모색하는 각 주체들이 좀 더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전환점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포르투갈을 예로 들어보자. 포르투갈 정부는 트로이카(유럽중앙은행, EU 및 IMF)와의 사전협의를 거쳐 54억 유로의 재정감축을 목표로 하는 2013년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이는 포르투갈의 연간 GDP의 3.2%에 해당한다.

긴축의 속도조절을 요구하는 IMF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당국은 포르투갈의 경제성장률이 금년 마이너스 3%에서 2013년에는 마이너스 1%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리스도 비슷한 그림이다. 트로이카가 내 놓은 내년도 재정감축 계획 93억 유로는 그리스 연간 GDP의 4.3%에 해당하는 엄청난 크기다. 그리스의 금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4.7%로 포르투갈보다 더 나쁘다.

그런데도 이들은 그리스의 2013년 경제성장률이 잘하면 마이너스를 벗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IMF의 새 이론대로라면 이 두 나라의 내년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3%에서 마이너스 5%를 맴돌아야 한다.

어쩌면 구제금융 자금을 내어 놓는 입장에 있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자국의 의회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구제금융의 효과를 과대 포장할 필요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유럽은행 통합감독기구의 설립도 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급함에서 낙관이 나왔다면 이는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부정직한 것이며 나아가 거짓말의 원인이 될 수 도 있다.

그리스에서 2009년 10월 정권교체로 새로 들어선 정부가 발견한 것은 그 해의 재정적자가 전 정부가 발표했던 금액의 곱절이 넘는, GDP 대비 12.7%에 달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이 거짓말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가 빌리는 돈을 차입이 아니라 스왑(swap) 거래로 포장하여 대차대조표의 각주항목으로 올렸기 때문인데 이 묘수는 미국계 모모 유수은행들이 알려준 것이었다고 한다.

민주주의 여러 원칙들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이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첫째, 진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진실을 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계가 가능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민주주의도 거짓말이 된다.

국민 권력의 두 가지 조건

포르투갈 그리스 스페인의 공통점은 민주화 과정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늦게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리스는 독일의 점령으로부터 해방되고서도 30년 동안을 내전과 쿠데타를 거치고 난 후, 포르투갈과 스페인 역시 각각 살라자르와 프랑코의 40년 독재가 막을 내린 후에야 민주주의가 복구되기 시작했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만일 국민 권력의 조건들이 성숙될 시간이 충분했다면 이 나라들의 국정이 그처럼 뒤죽박죽하게 운영되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또한 청년 실업자들의 실의, 가장이 자살하는 가계들을 눈 앞에 두고 그 동안 10년도 넘게 잘못되었던 것을 2, 3년 내에 바로잡겠다고 나서는 자기기만도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경제 이전에 정치다.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가 결코 이들 나라보다 앞서 있다고 보지 않는다.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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