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정치인은 눈을 똑바로 뜨고 투표하는 유권자만 두려워 한다”

벌써 11월이다. 계절도 겨울로 접어들었다. 대선이 50일도 남지 않았다. 후보 진영은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국민들은 정중동의 자세다. 후보들은 매일 전략적인 일정대로 움직이면서 의미있는 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이다. 공약 제시와 의제화, 슬로건, 이벤트, 후보자 외모의 물리적 치장 등 자기들에게 유리한 선거 프레임을 만들어내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언론사는 자사 정책에 맞게 게이트 키핑을 거쳐 연일 수많은 선거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또한 개인들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나 블로그 등 일인 미디어를 통해 후보자의 동정을 실시간으로 직접 전파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매일 공론장에 홍수처럼 나오는 선거 정보를 접하면서 머릿속에 프레임(frame)을 만들어 간다. 프레임은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개개인의 주관적 사고의 틀’을 의미한다. 이런 프레임은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여 지지후보를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언론의 보도행태, 뉴스의 전달방식에 따라 수용자의 생각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간 우리 사회는 보수 독과점의 언론환경,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 지역주의 정서, 계급 관계가 모호한 정당구조 등으로 강고한 보수체제가 유지되면서 정파적 양극화만 심화되었다. 하층계급이 오히려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거부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역설적인 현상도 벌어졌다. 계급의 이해관계를 정치에 반영하려는 사회적 환경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 대 99로 상징되는 경제적 양극화 현상에 대해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보수나 진보세력 모두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 등 비슷한 공약을 제시했다. 공약의 변별력이 흐려지면서 공약이 유권자와 멀어지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정치쇄신, 과거사, 후보단일화, 여성대통령, 후보검증, 투표시간 연장 등이 이러한 허점을 메우고 있다. 하지만 후보자의 비전ㆍ공동체 발전 및 국민의 삶과 직결된 공약의 평가, 유권자의 합리적 판단을 도와줄 프레임 경쟁은 뒤로 밀려나 버렸다. 대신에 상징 및 여론조작을 통해 프레임을 관리하려는 네거티브 전술만 눈에 돋보이는 형국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는 미세한 차이로 당락이 좌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선거가 정점에 치달을수록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이 극성을 부릴 것이고, 그 때문에 유권자의 판단력은 흐려지게 된다. 정치혐오증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현상은 선거 때마다 되풀이 되고 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아니면 말고’, ‘무슨 말도 못해’식의 저열한 난타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선전을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조차 선전에 쉽게 넘어간다”는 말처럼 표를 쉽게 얻는 방법으로 네거티브 선전 기법은 최대한 악용된다. 일부 언론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부화뇌동하기도 한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아무리 높더라도 선전술은 교묘할 정도로 힘을 발휘한다. 때로는 선거의 승패가 갈리기도 한다. 인간의 언어 및 심리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대중의 의식을 관리 통제하고 새로운 이미지 체계를 만들어 지지를 유인하는 선전기법도 고도로 발전하여 왔다. ‘거짓말도 반복하면 믿게 된다’고 말한 나치의 선동가 괴벨스, 정책 경쟁을 없애버리고 여론조작에 치중한 정치홍보 전문가 ‘스핀 닥터’가 출현했다. 의제 경쟁을 둘러싼 포퓰리즘 논쟁, 내용의 왜곡 과장ㆍ누락ㆍ거짓말이 성행하게 되었다. 이를 검증하고 견제하기 위한 언론과 시민의 노력은 있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유권자들은 대선운동 과정에서 나타난 선전기법을 제대로 파악해야 올바른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이미지 정치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후보자의 외모ㆍ의상ㆍ화장 등 치장된 외형과 서민 가장수법, 수사학적 언어로 포장한 슬로건의 속 뜻을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외형만 그럴 듯 하고 구체적인 공약은 없는 속 빈 강정인 경우가 많다. 후진적인 후광효과에 열광하면 눈 먼 정치를 낳기 십상이다.

진부한 애국주의 타령을 경계해야 한다. 과장된 애국주의는 이성을 마비시켜 사실 확인과 합리적 설득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북방한계선(NLL) 논란이 대표적 사례다. 영토문제는 애국심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제 발등을 찍기도 한다. 걸핏하면 종북세력이니 좌파 빨갱이라고 낙인찍는 것도 시대착오다. 자기들의 의견과 반대된다고 무조건 딱지를 붙이는 것은 비열한 말장난 수법이다. 여론조사는 밴드웨건 효과를 노린다.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는 조사기법으로 지지를 고착화시키거나 상대에게 불리한 여론을 전파하기도 한다. 공포감을 자극하는 수법도 있다. 북한의 위협이나 경제위기를 들먹이며 특정인의 지지를 유도한다. 이밖에도 말 뒤집기, 물타기, 애매모호한 표현 등 선거 캠프에서 활용하고 있는 네거티브 선전기법은 많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제주의소리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리면 국민 생활과 밀접한 정책 경쟁은 사라지고 선거판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릴 가능성이 크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효과를 발휘하면 ‘무능하고 부패한 대통령’, ‘권력에 도취한 대통령’의 출현을 막을 수 없다. 네거티브는 ‘도둑정치’를 낳는다. ‘도둑정치’는 국민에게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운 긴 시간을 선물로 안겨줄 것이다. “정치인은 눈을 똑바로 뜨고 투표하는 유권자만 두려워 한다”는 경구를 잊지 말아야 한다. / 권영후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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