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주살이' 꿈 이룬 제주평화연구원 제3대 문태영 원장 

 

▲ 문태영 제3대 제주평화연구원장이 <제주의소리>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문준영 기자>

2006년 3월 문을 연 제주평화연구원이 지난 10월15일 새 원장을 맞아들였다. 초대, 2대를 이끈 한태규 원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문태영(59) 전 주독일 대사가 제3대 원장에 올랐다.

문 원장은 제12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1978년부터 34년동안 외교관 생활을 하다 국제평화재단(이사장 외교통상부 제2차관)이 실시한 원장 공모에 선뜻 응한게 제주와 직접적 인연을 맺게 했다.

선뜻이었지만 '제주살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제주에서 한번 살아보는게 평소 꿈이었다. 그 꿈이 한번 좌절(?)됐다고 했다.

2007년 1월의 일이다. 제주도 국제관계자문대사를 그토록 원했건만 외무고시 동기인 김숙 대사에게 그만 뺏겨 버렸다(웃음)며 5년여전을 회고했다.  

그만큼 문 원장은 제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대단했다. 

취임 이튿날 동사무소로 달려갈 정도였다. 주민등록을 옮기기 위해서였다.

제주와는 이렇다할 연고가 없는 그가 이처럼 제주에 애착을 갖는 것은 일종의 로망이었다. 제주는 천혜의 자연을 가진 세계적인 관광지로서 누구나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이라는. '제주 예찬론자'라는 말이 옳았다. 30년 넘게 떠돌이 생활을 한 그에게 고향(부산)은 큰 의미가 없는 듯 했다.

심지어 "한번 살아보고 앞으로도 평생 살만한 곳인지...(따져보겠다)"라고도 했다. 상황에 따라선 눌러앉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지난 7일 평화연구원이 있는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제주국제평화센터에서 기자와 마주한 그는 "좋다" "나도 제주도민"이라는 말을 연발했다.

제주평화연구원장도 전혀 낯설지 않은 직함이라고 했다. 2006년 3월 개원한 제주평화연구원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 방안을 모색하는 기관이다.

문 원장이 제주평화연구원을 친숙하게 여기는 것은 그의 이력 때문이다. 그는 2007~2008년 외교안보연구원 아태연구부장을 지냈다. 외교통상부 대변인 시절인 2009년에는 대규모 기자단을 이끌고 제주포럼(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도 참석했다. 그로부터 3년여만에 포럼의 참석자에서 주최자로 처지가 바뀐 셈이다.

이런 연유에선지 그는 제주포럼의 미래에 대한 야심이 컸다. 한마디로 "크게 키우고 싶다"고 했다. 안정적인 포럼 운영의 토대인 사무국도 조만간 설치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 오자마자 주민등록 이전 "5년전 오고팠는데 김숙 대사가 선수"

-취임 소감은.

"무엇보다 평소 오고싶어 했던 제주에서 살게 돼 기쁘다. 그리고 제주평화연구원이 설립된지 6년밖에 안됐는데, 학계나 관련 기관 등에서 나름대로 인정을 받고 있어 기쁘고, 원장으로 부임해 제주평화연구원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 기대가 크다"

-제주에 대한 인상은.

"제주도는 모든 사람이 오고싶어 하는 곳이다. 3주동안 살아보니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 3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다. 전 세계 유명한 곳을 다녀봤지만 제주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꼽히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 제주도민들은 이런 천혜의 고장에서 살고 있는 것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도 된다.

10월15일 취임했는데 그 다음날 제주도민이 됐다. 오자마자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을 옮겼다. 그전부터 제주도는 제가 살고 싶었다. 한번 좌절했다. 외교안보연구원 아태연구부장으로 가기 전 제주도 국제관계자문대사를 꿈꿨는데 김숙 대사(외무고시 동기)가 3일먼저 가져가 버렸다. 그 당시 분위기가 이어져 이번에 제주에 오게 됐다. 앞으로 더 나은 제주도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문태영 제주평화연구원장은 제주포럼을 다보스포럼 처럼 크게 키우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문준영 기자>

-제주에 주목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있지 않나. 뭍(육지)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제주도에 한번쯤 와서 살고 싶어한다. 그래서 하와이 총영사 같은 걸 해보고도 싶었는데 하와이 대신 제주도를 선택하게 된 것 같다. 제주에 오니 좋다. 앞으로 살아보고 평생 살 데 인지 따져보겠다. 부산이 고향인데 해외에 다니다 보니 가볼 기회가 적었다. 꼭 서울에서 살아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제주와 연고나 인연은 없나.

"아버지가 제주에 자주 왔다간 정도? (잠시 생각하더니)아니다. 저도 신혼여행을 제주에 왔다. 그때 비행기를 처음 탔다. 신혼여행 한달 전에는 한국에 있는 각국 대사 70~80명을 모시고 제주를 찾은 적이 있다. 1978년, 외무부 의전실에 있을 때다. 당시 제주도로선 엄청난 행사였다. 외무장관 이하 국장들도 다 따라나섰다. 제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제주도지사가 저를 보더니 깜짝 놀라했다. 왜 이렇게 젊은 분이 있나 하고. 그로부터 한달 후 신혼여행을 왔는데 서귀포 쪽 절벽 위에 있는 호텔에 묵었다. 그때는 제주가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완전히 자연 그대로였다. 그리고 10년후엔 애들 2명을 데리고 와서 똑같은 방에서 신혼여행 시절의 추억을 되새겼다"

-제주평화연구원장 공모는 이번이 처음이다. 공모과정은 어땠나.

"인터뷰 한 뒤 나중에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몇 명이 응했는지는 모르겠다"  

# "제주포럼, 목표-현실 차이 있지만 세계적 포럼 발전 위해 최선"

-외교관으로 34년 활동했는데 제주평화연구원장과는 역할이 다르지 않나.

"3주를 지내보니까 제가 하던 업무와 상당히 비슷하다. 익숙한 느낌이다. 편안하다. 외교안보연구원(아태연구부장)에 1년 반 있었다. 제가 하던 업무의 연장이다. 제주포럼도 그렇고. 2009년(외교통상부 대변인)에 기자단 30명을 이끌고 제주포럼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제는 도리어 제주포럼을 주최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그 당시 느낌을 살려 포럼을 개선하는 쪽으로 노력하겠다. 어제 집행위원회(제주평화연구원장은 제주포럼 집행위원장이다)를 해보니 할만했다. 지난주엔 국제정치학회와 공동 학술회의도 열었다. 금방 익숙해졌다. 제주도는 참 먹을거리가 많다. 요즘 향토음식 먹느라 바쁘다(웃음)"

-국제평화재단이 원장 발탁 배경을 설명하면서 '제주포럼을 다보스포럼과 같은 세계적 수준의 명품 포럼으로 육성해나갈 적임자'라고 했다. 기대가 큰데 제주포럼 발전 방안에 관한 구상이 있다면.

"제주포럼은 그동안 7차례 개최를 통해 참여기관과 참여자를 대폭 확대해 왔다. 이를 통해 제주포럼이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지고, 제주도를 널리 알리는 효과도 가져왔다. 제주도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살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논의하기 위한 대화의 장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제주포럼이 다보스포럼 같은 세계적 명품 포럼으로 발전하려면 결국 정부, 제주도, 학계, 업계, 시민들의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제주포럼에는 전.현직 정상들이 많이 참석해 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총리가 계속 참석했다. 세계적 수준의 포럼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예산과 인원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현재로선 원대한 목표와 현실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 포럼을 발전시키도록 노력하겠다.

 

▲ 문태영 제주평화연구원장에게 '제주살이'는 오랜 꿈이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제주에 오게돼 기쁘다"는 말을 여러차례 했다. <문준영 기자>

경비를 줄이는 방안으로는 외교통상부와 협의, 방한하는 외국 정상을 포럼 개최 시기에 초청함으로써 방한 효과를 높이고, 저희도 초청 경비를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꾀하겠다. 다른 국제행사와의 연계 개최, 한중일 3국 사무국, 유엔기구 및 각 연구원 등의 참여 확대를 통해 제주포럼을 더욱 확대 발전시키겠다"

# "안정적인 재원 마련 급선무...도민 피부에 와닿은 포럼으로 만들터"

-제주포럼은 올해 연례화와 제주도 지원 조례 제정으로 전환점을 맞이했다. 앞으로 제주포럼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짚어달라.

"포럼 운영에는 안정적인 재원 마련이 우선이다. 충분한 인원과 함께 포럼이 장기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제주도의 대표적인 회의시설인 제주국제컨벤션센터를 잘 활용해 포럼에 참여하는 기관과 기업들의 활발한 이벤트 개최, 전시 등을 추진하겠다. 제주도민들의 참여 확대 방안도 검토중이다.

제주포럼은 7회까지 오는 동안 3000여명이 참석하는 큰 행사로 발전했다. 앞으로 양적 성장뿐 아니라 질적으로 내실을 다져야 포럼의 목적, 방향에 맞게끔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말씀대로 제주포럼은 그동안 양적, 질적 성장을 거듭했지만 '도민과 함께하는 포럼'으로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다. 제주도민의 관심과 참여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은.

"포럼이 가지고 있는 학술회의의 성격상 많은 도민의 관심과 참여는 한계가 있다. 어렵지만 앞서 언급한 이벤트 개최, 제주도와 직접 연관된 주제에 대한 논의, 적극적인 언론 홍보를 통해 도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포럼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내년 제주포럼에서 야심차게 준비하는게 있을텐데.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를 모셔볼까 했다. 마침 저와 친분이 있는 미얀마 대사도 좋은 생각이라고 호응했다. 며칠전 연락이 왔는데 그 기간에 다른 스케줄이 이미 잡혀 있어서 어렵다고 했다. 여성인데다 인권의 상징 같은 존재여서 주목했다. 제가 독일대사로 있을 때였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독일에 왔는데 언론의 관심이 대단했다. 제가 쌓은 네트워크를 통해서 참석이 가능한 분들을 알아보고 있다"

-제주포럼을 주관하는 것 외에 제주평화연구원의 활동상이 도민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감이 없지 않다. 이 기회를 빌어 제주평화연구원의 기능과 역할, 활동에 대해 소개해달라. 

# "아웅산 수치 초청 무산 아쉬워...조만간 제주포럼 사무국 설치"

 

▲ 문태영 제주평화연구원장. <문준영기자>

"제주평화연구원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모색하기 위해 설립됐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제주평화연구원은 인정받는 연구원으로 발전했다. 제주평화연구원과 제주포럼은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제주도를 알리는 데 나름대로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평화연구원은 그동안 한반도,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다방면의 국제정치 문제에 관한 연구를 유수의 국내외 연구소들과 협조하면서 수행했다. 국내외 연구소들도 우리 연구원의 특성을 잘 활용해 공동연구를 해왔다. 앞으로도 이런 공동 연구가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외교관 시절 잊지못할 추억이 있다면.

"현재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빼놓을 수 없다. G20 정상회담 때 제가 모시고 왔다. 정상회담 일정 외에 1박2일을 더 머물렀다. 첫 방한이었다. 서울 곳곳의 아파트 숲을 보고 깜짝 놀라셨다. 멋있는 청와대를 보고서도 감탄사를 연발했다. 떠나기 직전 저와 악수를 하면서 "한국이 발전했다는 건 얘기를 들었는데 한국전쟁 이후 60년만에 이렇게까지 발전할 줄 몰랐다"고 했다. 그 말씀에 저는 "총리님. 지금 보신 건 서울의 10분의 1도 안된다"고 귀띔했다.

독일에 있을 땐 이명박 대통령이 오셨다. 파독 광부들, 간호원들과 리셉션을 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이 대통령은 '통일된 독일에서 (남북통일을 기원하며)한번 부르자'고 하셨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제주평화연구원장으로서 포부는.

"제주포럼을 크게 키우고 싶다. 다른 지역에 가면 제주포럼에 대한 평판이 아주 좋다. 제가 제주평화연구원장으로 간다니까 거기가 뭘 하는 데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다. 제주포럼을 개최하는 곳이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다들 안다고 했다. 제주포럼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국내서도 관심이 높다. 제주도를 알리는데 상당히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제주포럼은 불과 6년만에 아주 크게 성장했다. 예산이나 인원이 모자라서 어려움이 많지만 더 키우고 발전시켜서 제주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사무국 설치는 어떻게 돼가나.

"마침 어제 제주도청과 그 얘기를 했다. 조만간 될 거 같다. 조례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제주도와 세부적인 협의 절차만 남아있다"

<문태영 원장 약력>

△ 1953년 부산 태생
△ 경기고,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석사
△ 1978년 외무부(제12회 외무고시)
△ 1980~1983년 주 캐나다대사관 2등 서기관
△ 주 태국대사관 서기관
△ 1992~1993년 외무부 공보담당관
△ 1993~1994년 외무부 동남아과장
△ 1995~1996년 주 제네바대표부 참사관
△ 1996~1998년 외무부 부대변인
△ 1999~2000년 주 유엔대표부 공사참사관
△ 2003~2004년 외교통상부 국제기구담당 심의관
△ 2004~2007년 주 파나마 대사
△ 2007~2008년 외교안보연구원 아태연구부장
△ 2008~2010년 외교통상부 대변인
△ 2010~2012년 9월 주 독일대사
△ 2012년 10월15일~ 제주평화연구원 제3대 원장. <제주의소리>

<김성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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