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 질서를 깨뜨리고, '가믄장' 밖을 나서다
가부장적 질서를 깨뜨리고, '가믄장' 밖을 나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43 가믄장아기 원형 2

배꼽 아래 선그믓(陰部) 덕으로 먹고 입고 행동합니다

두 언니와 부모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지만, 그녀는 ‘자녀는 부모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예속되어 있다’는 사회의 문화에 저항한다.
세상의 자연적 질서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하늘도 인정했고, 땅도, 부모님도 인정했다. 여성임도 인정했다. 다만 그녀는, 그녀도 나름의 몫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지 간에 한 인간 개체로 존중받기를 희망했으며 그 속에서 여성으로서의 특성과 장점을 발휘하면서 세상에서 살기를 원했을 뿐이다.


그녀는 누구 덕으로 먹고 사느냐 묻는 부모에게 하늘과 땅 덕이요, 아버님 어머님 덕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배꼽 아래 선그믓(陰部)(배꼽 아래에서부터 음부까지 나있는 선, 자궁선, 임신선) 덕으로 먹고 입고 행동한다고 말한다. 부모님의 자식이기도 하지만 독립적 개체로서의 여성이라는 점을 당돌하게 앞서서 내세운 것이다.


정체성은 내가 ‘타자’들과 다르다는 불안에서 시작되고,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다른 인간관계를 구성해내면서 역동성을 가지게 된다.

부모님,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에 순응적이었던 언니들에게 주어진 보상은 ‘네 방으로 가라’는 것이었지만, 자신의 의견, 정체성을 주장한 가믄장아기에게 내려진 형벌은 네 방으로 갈 수 없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밖은 물론 그녀에게 위협적이고 고생스러웠지만 경제적인 능력의 성취, 그리고 독립의 기회를 가져다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가믄장아기는 가정이 공공연한 남성지배나 장유유서 지배의 폭력적 장소라면, 가족이 개인의 개체성과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친숙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접고, 불안한 길을 떠나기로 작정하는 많은 독립적인 여성들의 원형이다.


두문불출의 원칙을 깨고 밖으로 나간 그녀


남성지배 사회에서 여성은 ‘두문불출’해야 하는 존재로 규정되어져 왔다. ‘밖’은 여성들에게 부정적이고 위험한 공간으로 존재하는 곳이었으며,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순한 일이 되었다. 집안에서 조신하게 앉아 아버지-남편-아들에게 의존하는 삼종지도의 덕을 배우고 실천하는 일이 여성들이 갖추어야하는 당연한 교양으로 여겨져 왔다.


가믄장아기는 이 남성지배의 원칙들이 만들어 놓은 패러다임에 저항한다.
보호만 받아왔던, 약하고 어린 여자아이가 남성지배의 ‘밖’으로의 나가는 것은, 그녀가 원하는 여성성을 오히려 파괴해버릴 수도 있는 경고와 위협이었는데도 가믄장아기는 밖을 선택했다. 

 

▲ 페르난다 발라데스 감독. <이 세상에서>. (사진/ 제13회 제주여성영화제)자신을 옥죄던 공간에서 탈출하여 길을 떠난 주인공에게 호의적인 공간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불만스럽더라도 이 ‘두문불출’의 원칙을 상기하고 쫓아가려 한다. 싸돌아다니지 않는 것은 여성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정숙과 부덕이라 여겼고 밤늦게 나돌아 다니는 것은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불량스런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학교, 가정, 사회, 남성들은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여자들을 ‘안에’ 가두어 왔다. 


성차별화된 지배구조는 세상의 모든 현상들과 모든 실제활동을 그 지배의 원칙에 맞추어 놓기 마련이다.
남성에게의 ‘바깥’과 여성에게의 ‘안’이라는 구분도 그 원칙에 의한 것이다. 여성들을 안에 가두어 바깥과의 접촉을 당초에 불가능하게 한 것은 세상의 현상들에 대한 여성들의 무지, 미인식, 비조직화를 꿈꾸며 남성지배를 실현해 왔던 강요이고 감금일 수 있다.


바깥은 재미있고, 시장이 있으며, 토론과 집회를 하는 무궁무진한 생의 장소다. 환하게 열려 있는 삶의 공간이다. 울타리의 안은 닫히고 어두운 공간이다. 누워있기 위한, 좁아지기 위한 장소다. 바깥에서 술을 마시며 많은 만남을 하고, 경쟁 속에서 돈을 벌고, 로비와 협상,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점점 더 강해진 남성들에 의해 집안만큼은 졸렬하고 합법적인 지배 공간이 되어 갔다. /김정숙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