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새 패러다임과 정치쇄신, 이번 투표의 중요성

대통령 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 간에 모든 화력이 동원되고 있다. 선거 전문가들의 지략 대결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후보들은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현장에서 유권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눈에 띌만한 메시지와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유세장에는 지지자ㆍ동원자들부터 호기심으로 참석한 사람들까지 다양하게 모였으나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중앙당에서의 선전전도 치열하다. 선전의 달인들인 대변인들은 공약보다는 상대방을 흠집내느라 여념이 없다. 매일 한 건 이상 자기편을 변호하고 상대편을 비난하는 메시지를 토해내고 있다. 정책 경쟁은 뒷전이고 거짓말과 폭로가 난무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말처럼 남의 허물만 들춰내기에 바쁘다.

이명박정권 교체 대 정권 연장, 과거 대 미래, 낡은 정치 대 새 정치, 소통 대 불통, 무능정부 대 민생정부 등 모든 수사학적 기법이 사용된다. 그야말로 말은 성찬이나, 너무 혼란스러워 독해가 어렵다. 각 후보진영은 변별력이 없을 정도로 서로 상대방을 따라하고, 언론도 비슷한 내용만 보도하기 때문이다. 여야가 동시에 발표한 검찰 개혁안에는 민주당의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신설과 같은 차별적 내용이 들어 있으나 중수부폐지 등 유사한 사안만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선거를 둘러 싼 언론환경은 보수 과점의 전통 미디어와 진보 우세의 개인미디어로 나누어져 있다. 후보들의 행적과 메시지, 정당 활동은 언론의 게이트 키핑을 통해 전달되고 있으나 현재와 같은 정파적 언론 환경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전통미디어가 개인미디어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 언론이 선거 국면을 주도할 수 밖에 없다. 일부 진보언론과 개인미디어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나 역부족인 상황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 과정이다. 국민들의 의견이 자유롭게 표현되고, 이를 통해 형성된 다양한 여론이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치열한 담론 경쟁은 민주주의 발전의 필수 조건이다. 전국의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우열이 극명하게 드러난 미국의 대선 TV토론처럼 우리 후보들이 치열하게 논쟁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후보들이 추운 날씨에 참석자의 한계가 있는 유세현장을 강행군하는 모습은 보기 딱하다. 선관위 주관 방송 토론회의 단순 질의 답변 형식으로 후보자들의 이념과 가치관, 정책 방향, 자질과 능력을 제대로 알아보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폐해가 임계점에 다다른 시기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사회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거 초반 국민들의 주된 관심사는 무한경쟁에 따른 양극화 해소, 좋은 일자리 창출,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일이었다. 현재 경제민주화로 상징되는 대선 의제는 유권자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경제 위기론을 거론하며 재벌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의 프로파간다가 먹혀들었고, 국회에서 여당의 반대로 관련법안 통과가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미래세대의 시대 정신을 구현하는 일은 국가발전의 필수 전제조건이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는 2030 세대가 짊어져야할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그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미래세대의 적극적인 투표참여가 필요한 이유다.

안철수로 상징되는 정치쇄신도 중요하다. 기존 정당의 기득권 체제는 견고하다. 지역과 이념이 결합되어 나타난 정당 구조는 신정치세력의 진입과 개혁을 어렵게 한다. 기득권에 안주하여 권력의 전리품을 과점하는 기존 정치는 고인 물이 썩듯이 부패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혐오증과 무관심층을 양산하여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온다. 정당 기반의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투표율 하락, 소수의 권력 독점과 대표성 불인정, 불통의 무책임 정치를 낳을 수 있다. 투명한 정치개혁은 보수 기득권 체제를 혁파하고, 선진 복지국가를 이룩하기 위해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과제다. 국민들의 적극적인 선거 참여만이 정치개혁의 실현과 위기의 민주주의를 구해낼 수 있다.

토론과 논쟁 없이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선거전은 ‘묻지마 투표’나 선거포기로 연결될 수 있다. 유권자들은 아무리 중요한 사안일지라도 반복할 경우 식상함을 느끼게 된다.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인간의 심리를 교묘히 악용하는 프레임 전쟁에 몰두하는 이유다. 국민을 선거의 주체가 아닌 관중으로 보기 때문이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제주의소리

그리스 신화의 여신 '세이렌'이 항해하는 선원들을 유혹하려고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만 들려줄 뿐이다. 감미로운 미끼는 유권자의 감시와 비판 능력을 약화시켜 ‘영혼 없는 투표’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의미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적극적인 투표없이 민주주의는 없는 법이다. / 권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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