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다가 오고 있는 미국의 연말 분위기가 무거운 돌덩어리에 눌려 있다. 이른바 재정 낭떠러지(fiscal cliff)의 우려가 그것인데 표면상으로는 "설마" 모드에 머물러 있다. 지난 일요일 오바마 대통령과 하원 다수당인 민주당의 존 베이너 의장과의 백악관 회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최악의 사태는 피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없지 않다. 실제로 블룸버그 통신의 소비자 안심지수(comfort index)나 미시건대학의 정서지수(sentiment index) 등도 큰 요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낭떠러지라는 끔직한 수식을 동원하게 된 까닭은 두 개의 상황이 겹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부시 대통령 재임기간중의 감세조치가 금년말 종료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년 여름 정부부채 한도가 소진되어 이를 증액하는 과정에서 임기응변으로 약속했던 정부지출 감축이 내년 1월 2일부터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어렵사리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은 감세 기간의 연장 합의다. 소득 상위 2%의 부자들에게는 감세연장을 하지 말자는 오바마의 완강한 주장을 최근 공화당 의원들이 수용할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그렇게 되면 민주당 쪽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타결시한은 연말까지인데 타결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두 번째 상황, 즉 정부지출 감축이행은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남은 시간이 10여일인데 불구하고 그 향방을 가름할 수 없는 지경이다.

설명을 위해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을 다시 간추려 본다. 정부부채 한도증액을 놓고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던 미국 의회는 정부의 부도를 눈앞에 두고 일단 부채한도를 증액하되 증액되는 금액은 10년 이내에 그 전액을 도로 축소시켜야 하는 조항을 담은 재정통제법(Budget Control Act of 2011)을 제정했다. 부도사태 하루 전인 8월 2일이었다.

재정낭떠러지의 두 고비

이 법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의회의 행동을 강압하기 위해 징벌적 장치를 삽입했으니 바로 예산몰수(sequestration)장치다.

향후 10년간에 걸쳐 1조2000억달러의 재정적자감축을 어떤 항목을 절약해 달성할 것인지 여야합의로 결의할 것을 요구하면서 만일 이 합의가 2011년 말까지 이루어지지 않으면 2013년 정부예산을 강제로 일괄 삭감한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결국 작년 말까지라는 합의 시한은 아무런 진전 없이 경과되었고 이 징벌장치는 그때부터 이미 가동되기 시작했다. 2013년 예산부터 적용하기로 한 것은 일년의 준비기간을 두고자 함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재정낭떠러지의 이 두 번째 상황을 풀어나가는 일은 2011년의 재정통합법에 의해 가동되고 있는 예산 일괄삭감이라는 특수장치의 스위치를 끄는 일이다.

그러나 기존의 법이 설치한 장치를 대체하려면 그를 대체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세금 감면을 2013년 일년 더 연장할 것인가도 아직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회가 향후 10년간에 걸친 정부지출 감축안에 연말 이전에 합의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연말은 넘길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런데 내년 3월이면 작년 이후 증액되었던 현 정부부채 한도 16조4000억 달러가 다시 소진될 전망이다. 재정적자 감축 문제는 그 때에 가서 다시 본격적으로 다루어 져야 할 숙제로 미루어지고 있는 낌새다.

불확실성은 기업의 투자 결정을 불가능하게 하며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든다. 특히 상기한 법의 관련 조항에 따라 정부예산 자동감축의 절반을 떠안아야 하는 국방비 예산의 경우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뒤늦게 국방비 수정에 들어간 펜타곤

내년 국방비 지출예산을 정말 감축해야 하는 것인지 여부를 최근까지 군 당국도 모르고 있었다. 군사력 세계 1위인 미국으로서 불확실성의 극치다. 지난 9월 백악관이 국방부에게 내년도 예산 자동감축에 대비하라는 경고를 했을 때만 해도 국방부는 이를 가볍게 받아들였다. 12월 5일에야 펜타곤의 공식 보도자료는 국방부가 부랴부랴 내년 중 550억달러의 국방비 예산감축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지난 금요일 사설에서 미국의 주택경기 회복이나 쉐일 가스의 개발 등 좋아지고 있는 경제 펀더멘털은 그나마 미국의 경우 '정치마비 해독제'라고 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 내년 상반기 중에는 미국 경기의 재정낭떠러지 충격이 적지 않을 것임은 예견되고도 남는다 하겠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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