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휴일이 지나도록 미국 의회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27일에 논의를 재개한다고 하지만 희망은 사라질대로 사라졌다. 주식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나타내는 바로미터인 미국의 Vix 지수가 최근 크게 상승하여 유럽의 VStoxx 지수를 추월했다. 2007년 이후 5년 만에 처음 역전된 것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되었나? 미국의 정치권이 재정 낭떠러지 문제를 접근하는 과정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한두개가 아니다. 재정 낭떠러지의 6000억달러 중 금액적으로 가장 큰 항목은 부시 감세 기간의 종료에 따른 세금 인상액 2200억달러로서 전체의 36%에 달한다.

세금 인상 다음으로 큰 충격을 주는 항목은 연방정부 예산의 강제 감축이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550억씩을 국방예산과 비 국방예산에서 감축해야 한다. 2011년 미국의 국방예산과 비 국방예산이 각각 7100억 및 5700억달러였던 것에 비추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것은 관련법이 정한 의회의 의결시한을 2011년 12월 말에 이미 경과하였기 때문에 법적으로 확정된 의무 이행 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국방성은 12월 5일에야 국방예산 수정 작업에 착수했고 국방성 이외의 다른 정부부처들의 경우도 백악관으로부터 아직 공식적인 수정예산 수립의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 이와 같이 노골적인 늑장 대응은 필시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불러 일으킨다.

첫째 의심은 정치인들은 여 야 할 것 없이 정부 돈을 쓰자는 데는 생색을 내지만 돈을 절약하자는 데는 앞장서기를 겁낸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무언가 다른 나라에 없는 획기적으로 특별한 비상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지경으로 엉터리 정치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일종의 호의적(?)인 의심이다.

늑장 대응의 숨은 이유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를 상각 처리하는 방법을 거론하고 나선 대표적인 사람은 모건 스탠리의 이종자산 투자전략 상담사 제랄드 미낙이다.

지금은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시기인데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정부들이 거꾸로 지출을 줄이려고 하는 것은 미국 뿐 아니라 세계경기를 재침체로 몰고 가는 지름길이다.

중앙은행도 크게 보면 정부의 한 부처일 뿐이므로 굳이 두 부처가 같은 금액을 각각 자산과 부채로 회계 처리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나온 발상이다. 상각에 따른 중앙은행의 손실은 국채를 발행한 정부 부처의 이익과 상쇄되므로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미국은 세차례의 양적완화(QE)로 이미 재정의 루비콘강을 이미 건넜다고 말한다. 이 조치를 통해 연방준비은행의 재무성 증권 보유잔액은 두배 이상 늘어나 1조5000억달러에 달하게 되었는데 이는 어차피 다시 시장에 내놓을 수 없는 정도의 엄청난 금액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공공연하게 등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영국 중앙은행 머빈 킹 총재가 지난 10월 경제 브리핑에서 그것을 강도 높게 비난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유례 없이 큰 규모의 양적완화 조치가 중앙은행의 정책으로서는 이미 상궤를 벗어난 비전통적 해법이었다고 한다면 이것으로부터의 출구 역시 비전통적인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미국이 정부 부채를 이러한 극히 비전통적인 방법으로 줄이기로 작정한다면 미국의 재정은 일거에 좋은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연방준비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 규모가 총 잔액의 13%에 달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 보유 국채의 상각도 가능

그것이 미국, 나아가 세계 경기의 재침체를 피하는 유일한 길이라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감수해야 하고 달러화의 가치는 예측불허의 하락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에 따른 피해자는 첫째 미국의 봉급 생활자와 소비자 대중일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미국 국채를 대거 보유하고 있는 외국의 중앙은행들이 될 것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이들은 미국 국채 발행 순 잔액 11조6000억 달러의 48%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작년 1조7000억 달러까지 보유하고 있던 분량을 지난 일년 사이에 40% 이상 줄여 현재 1조100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고 일본도 우연히 같은 금액의 미국 국채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경우 같은 기간 중의 외환보유액 증가를 감안한다면 중국의 탈 미국 국채의 속도는 특기할 만하다./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