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수의 복지칼럼]

# 한 10년 전의 일이다. 일본계 스웨덴인으로 중증장애여성인 ‘이시가와 루우미’씨가 장애인자립생활 강연 차 제주를 찾은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필자는 스웨덴사회에서 현재 장애인계 이슈(파이팅)는 무엇인지 질문 한 적이 있다.

이시가와씨가 필자의 질문을 이해 못하는 것 같아 한국은 장애인 이동권이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고 하자,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하나 있다고 했다. “코뮨(기초자치단체)에서 요트를 장애인에게 무상으로 임대 해 준다. 그런데 요트에 장애인편의시설이 미비하다. 바다를 좋아하는 자신은 이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고 했다.

필자를 비롯해 참석한 중증장애인들이 요새말로 ‘헐’하니 웃기만 했다. 부자가 아니라도 해양 레저를 즐길 수 있는 수준의 나라와 집밖의 턱 때문에 외출을 고민하는 우리와 처지의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기에, 그것도 집단적 항거가 아닌 조용한 개인민원으로 요구하고 있다기에 그랬다. 

# 바다건너 남의 일이다. 서울시가 ‘장애인 행복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강원도 양양군의 하조대 해수욕장 인근에 장애인과 가족을 위한 숙박시설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양양군의 반대로 법적 충돌까지 빚어졌다. 하조대 해수욕장이 장애인들이 접근이 용이한 모양인데 국비까지 확보하여 무난히 진행될 것으로 봤던 이 사안에 왜 브레이크가 걸렸을까. 법령상 숙박시설은 가능하고 노유자 시설(복지시설)은 설치가 안 된다는데 양양군은 노유자시설로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따로 있는 모양이다. 장애인들이 해수욕장에 출입하게 되면 일반피서객들이 이용을 꺼릴 것이라는 주민들의 집단적 항의를 양양군이 물리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을 의욕적으로 추진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양양군수를 만나 이해를 구했으나 소득이 없는 모양이다. 재판에서는 1,2심 모두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고 양양군의 상고로 대법원 최종판결이 남아 있다.

# 장애인복지 현장에 있다 보면 제주를 찾는 장애인과 가족들이 증가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이제는 성수기,비수기 따로 없이 그 횟수와 방문객이 증가하고 있는 것 같다. 제주를 찾는 장애인들, 특히 전동휠체어와 같은 크기와 무게의 보장구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가장 애로를 겪는 것이 차량과 숙박시설의 이용이다. 이들에겐 리프트를 장착한 차량은 필수이고 숙박시설의 턱은 최대한 없어야 하며 화장실은 무장애공간이어야 한다.

이들이 한사람도 아니고 일행이 되어 집단적으로 제주를 찾는다면 이를 만족하는 교통수단과 숙박시설은 제주에 존재할까. 관광객 일천만 중 소수인 이들에게 한라산과 오름, 올레길과 쪽빛 바다,제주의 도심길 모두 온전히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는다면 나는 ‘글쎄다’이다.

 # “박원순 시장이 제주의 함덕바당이나 협재해수욕장 인근에 숙박시설을 추진했다면 제주도민들은 어땠을까, 설령 주민들이 반대할 경우 행정은 양양군과 같은 반응을 할까, 나아가 제주도는 이런 사업을 시행할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제주사회의 비전은 무엇일까. 행정은 사람·자본·상품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국제자유도시가 제대로 완성되면 잘 산다고 이를 최고의 가치이며 비전이라고 한다.

거대 토목공사와 대형건물 짓는 소리가 요란해야 발전이라고 한다. 그렇게 행정의 생각대로 잘살아진다고 치고, 그 경제적 부를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가 바다체험을 원하면 비싼 요트를 기꺼이 무상임대에 투자해주는 제주사회가 되는 것인가. 부자사회라고 해서 소득을 서민과 사회적 약자에게 기꺼이 나눠주지만은 않는다. 부자나라인 중동 산유국의 장애인들이 행복하고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하는가. 이 역시 ‘글쎄다’이다.

나에게 제주사회의 비전을 소망한다면 ‘누구나 사람으로서 누리는 보편적 향유권을 보장하는 건강한 사회’라고 하겠다. 쪽빛 제주바다와 올레, 제주의 길거리가 온전히 장애인들의 접근을 환영하는 사회, 공동善이 생생한 인간중심의 사회가 제주비전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는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줌이 마땅하다는 시민들의 합의와 공감에서 가능하다.

 

▲ 고현수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박원순 시장은 어떻게 지근이 아닌 강원도의 한 해수욕장에 장애인숙박시설 건립을 생각했을까. 자치단체장의 인권과 복지마인드에 따라 행동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박원순 시장의 ‘장애인행복프로젝트’가 원만히 잘 추진되어 성공했으면 좋겠다. 요트 타기를 부자의 것으로 생각하면 딱 거기까지 인권과 복지수준이 결정된다. /고현수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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