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이야기] (47) 가믄장아기 원형 6

전도된 가치에 대한 저항

가믄장아기는 체제에 의해 전도되어버린 가치들에 저항하고 권위적인 질서와 타성을 깨면서 일반화시키는 비판적 실천의 소유자다.

체제, 관습, 고정관념이란 건 언제나 별일 없이, 무료한 듯 지나가는 편한 일상의 나날들을 위한 것일지 모른다.
가믄장은 어느 비오는, 여전히 무료한 날, 부모님이 장난삼아 낸 수수께끼를 푸는 중에 그녀의 편안한 일상을 깨버린다. 그녀가 자식으로서든, 여자로서든, 아버지/남편/아들에게 종속된 존재는 아니라고, 체제와 관습이 된 부모님 가치의 일방적인 주입에 자신의 생각을 말했기 때문이다.

가믄장아기는 부자 아버지 앞에서 감히, 독립된 존재임을 주장했다가 쫓겨났다.
저항의 길은 고달팠다. 아버지라는 든든한 빽을 거부하자 쫄딱 거지가 되었고 허허벌판을 홀로 걸어가야 했다. 은혜도 모르는 딸이 되었다. 친근한 사람들에게서조차 주변상황도 돌아보지 않고 혼자 잘난체한다는 비아냥거림을 받아야했다.


그녀의 효는 다르다 

그녀의 효는 바리데기의 효나 심청이의 효와는 다르다.
딸, 그것도 일곱 번째까지 딸이라니, 왕짜증을 내는 아버지가 내다버려도 생명수를 구해다 바쳤던 바리데기의 사회규범적인 효와는 다르다. 아버지 심봉사의 입장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또 과연 눈을 뜰 수 있을 지의 결과도 모르는 것인데, 딸 된 착한 마음으로만 인당수에 덜컥 빠진 심청이의 전통적인 효와도 다소 다르다.  

 

▲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 개인 존재를 억누르는 가족의 무거움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이미지)

바리데기와 심청이는 아버지가, 사회가 지금껏 요구하는 효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았다.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내쫓겨져도 죽을 각오로 생명수를 구해 올리고, 봉사이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라면 앞뒤 재지 않고 인당수에 빠졌다. 규범, 전통과 관습은 이미 권력을 획득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그녀들의 효행을 권력에 대한 순응의 결과일 수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착한 딸이 행하는 자연스러운 효였을 뿐이다.   

가믄장의 효는 좀 다르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라는, 아주 친근한 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마퉁이 형제들이 그들의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는 장면에서, 살이 많은 부분을 부모님께 드리는 막내 마퉁이를 유심히 살펴보는 그녀에게 느낄 수 있듯 그녀는 좋은 것, 맛있는 것이 있으면 먼저 건네고, 좋은 곳을 보면 같이 와야지 하는 마음이 사랑일거라 생각하는 여자다. 부모님에 대한 효에도, 사랑도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지극히 소박하고 진실된 마음.

그런데 수수께끼를 낸 아버지를 딸들에게 하는 것을 보니, 부모님은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대답하고 무조건 복종하는 효도를 원하고 있었다. 독립된 존재로서의 딸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바리데기처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아버지로 상징되는 사회의 지배논리와 그 욕망이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인 가정이라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폭력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며 이에 저항하게 된다.

그렇게 부모님께 저항하고 집을 나오지만 그 후, 결혼도 하고 부자가 되면서 가믄장은 점점 눈멀고 가난한 부모님 생각으로 간절해진다. 가믄장은, 돈을 원하는 거지에게는 돈을 주고, 밥을 원하는 거지에게는 밥을 주고, 물을 그리워하는 거지에게는 물을 주며, 거지잔치를 연다. 석 달 열흘 백일 만에 부모님이 들어오시지만 그녀는 하인들에게 눈먼 부모님의 밥그릇을 이리저리 치워버리도록 시킨다. 밥도 못 먹고 쩔쩔매는 부모님을 다른 거지들이 가버린 후에야 안방에 청해 들이고는 한 상 가득히 차려놓는다. 가믄장은 옆에 와 앉으면서 살아온 바를 말해보시라 청한다. 

▲ 사진. 큰굿 전상놀이 중 가믄장의 부모가 가믄장에게 가믄장을 내쫓고 살아온 내력을 회한과 함께 노래하는 장면 (2012. 9.12. 제주 큰굿)

전도된 효 관념에 대한 저항

신화의 마지막은 딸을 내쫓고 살아온,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말한 부모님이 비로소 눈을 뜨게 되는 장면이다. 개안. 비로소 보이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가믄장은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억지로 시간을 잡으면서라도 부모가 자녀에게 한 잘못을 일일이 얘기하도록 해야 옳은 것일까? 부모를 다그치고 가르치기까지 하고 있으니 도가 지나친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가믄장은 잘잘못이 누구에게 있었는가에 우선 집중한다.  
부모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말하고 나서야 그녀는 부모를 받아들인다.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의 진실에 대한 인식과, 의지와 능력을 기반으로 체제와 관습의 강요로 이루어지는 효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효를 실천한다. 그리고 그녀는 사회적 약자 다수를 위한 잔치를 열고 자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대사회적인, 인류애적인 모습으로 효를 확장시킨다.

그녀가 행한 것은 부모님의 말씀이라면 옳고 그름과는 무관하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효도해야 한다는 기존의 관례적인 효 관념에 반하는 것이지 불효가 아니다. 우리 곁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엄연한 체제, 고정관념, 권위에 의해 전도된 효에 대해 저항하고  본질적인 효를 추구한 것이다.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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