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지기? 밀고당기기? "그런 거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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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48

뒤바뀐 성 관념에 대해서도 저항

그녀가 저항한 것은 효 자체가 아니라 전도된 효 관념이었듯, 그녀는 남성 지배원칙에 의해 전도되어 있는 성 관념에 대해서도 저항한다. 

부모님에 대하여 가믄장은 자녀였지만 개체적인 독립된 존재이기도 했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부장문화는 독립적인 여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여자란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젊어서는 남편에게, 나이가 들어서는 아들에게 늘 의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규정했다. 가믄장아기는 그런 부모님 슬하에서,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거부했다. 삼종지도의 굴레에 어느덧 계산된 순종을 하면서, 익명의 가장 든든한 배경이 되어버리는 길로 가지 않았다.

삼종지도를 거부하는 그녀에게 독립을 위한 경제력의 확보는 가장 중요했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과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일과 돈이 필요했다. 물론 그녀는 결혼을 했고 남편과 같은 방에 기거하며, 같이 일했지만 자기만의 방을 가지게 된다.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대접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중요했던 것은 부정되거나 무시당해 온 여성성을 복원시키는 것이었으며 삼종지도의 틀에 가두었던 여성성을 구해내는 것이었다. 

힘든 길을 걸으면서도 가믄장아기는 힘들어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를 추진해야 하는 명분이 그녀의 내부에 확실했기 때문이다. 여신 가믄장아기는 독립적인 인간 존재로 살아가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을 거부했고 바로 옆에 있는 형제들이라도 잘라낸다.    

여성적 매력을 가꾸는 일도, 밀고 당기는 사랑의 기술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

그녀는 많은 여성들이 추구했던 예쁘고 여성적인 외모나 낭만적 사랑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자청비처럼 예뻐지려 노력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여성적 매력을 가꾸는 일도, 밀고 당기는 사랑의 기술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다. 세상에는 좀 더 힘들게 성취되어야 할 가치와 일들이 있다고 늘 생각하여 그런 것은 하찮고 사소하다고 옆으로 밀어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화에도 나타나듯이 가믄장은 자청비처럼 한 눈에 사랑에 빠지고 낭만적 사랑에 자신을 소모하지 않는다. 가믄장아기 원형은 사랑과 결혼,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된 자신이고, 그러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데 매진한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러더라 저러더라’ 하면서 끊임없이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상대가 별로 힘을 가지지 못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를 선택한다. 추워서 발을 맞댈 남자가 필요했으며 가장 어려서 뒷전으로 밀리지만, 효를 제대로 실천하고 관습이나 고정관념을 버릴 줄 알았던 막내 마퉁이를 가믄장은 남편으로 선택한다. 인간적인 신뢰의 관계를 원한 것이다.

 

   

 

▲ 리세테 아르게요 감독, 랜드레이디. 2011년 칸국제영화제 단편영화 부문 초청작품. 수천 명의 매일 멕시코를 거쳐 북미로 불법 이주를 시도하는 중남미 이민자들에게 ‘라 페트로나’, 라는 여성 커뮤니티에서, 달리는 기차 안으로 먹을 것을 건네주기 위해 서 있는 모습(출처/제13회 제주여성영화제)

가믄장아기 원형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강력하게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목표까지 가는 동안 주변 사람들의 요구나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 때문에 어수선해지지 않는다. 그녀는 확고부동한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매진하는 삶의 방식을 즐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우물쭈물하지 않고 과감하게 결정을 내리고 저돌적으로 추진한다. 상대방의 준비부족과 소극성 정도는 괜찮다. 엄연한 반대의 주장으로 덤벼드는 것이 아니라면 상대방의 소극성 때문에 추진력이 떨어지는 일은 없다. 어지간한 상대들은 자신의 대오에 끌어들일 수 있는 논리와 힘을 가지고 있다.

남자 같은 여자

남자와 여자, 이 비슷한 것들이 정반대의 것으로 개념화되어간 역사적 과정과 그 사이에 약자 여성들이 치고받으며 헷갈리고 복잡해진, 남자라는 단어와 여자라는 단어의 우왕좌왕하는 개인적 선택에 먼저 양해를 구하며…,
가믄장은 남자 같은 여자다.
자신의 신념을 향하여 정면돌파하는 그녀는 세세함, 친밀함, 동정심, 멈칫거림 등의 여성적 특성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막내마퉁이를 택하고 구석에 밀어둔 돌에서 금을 보듯, 예리한 시선으로 많은 것을 종합적으로 보고 알 수는 있지만 좀 더 큰 목적을 위해서 자잘한 것들은 과감하게 접는다. 

자청비의 경우, 그녀의 모든 동기가 문도령이라는 사랑이었다면 가믄장의 가장 중요한 동기는 자아이다, 자신의 일과 욕구이다. 낭만적인 기질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관계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아중심적인 삶을 위해 아주 현실적인 선택과 결정을 한다는 점에서도 그녀는 다분히 남성적인 성향이 강한 여성이다.

자청비가 여성적인 특성을 잃지 않은 채 남성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성과 사랑과 목표를 실현시키고 있다면 가믄장아기 원형은 이미 남성적인 기질이 강한 여성이다. 그녀는 현재의 생활에도 미래의 계획에도 여성들처럼 감정적이기보다는 남성들처럼 현실적 이해에 주도면밀하다. 남편감도 너무나 사랑해서, 한눈에 반해서 택한 것이 아니다. 보아하니 부모님을 대하는 것도 애틋하여 인간적으로도 쓸 만하고, 지금껏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버릴 줄도 알며 또 추운데 발 막아 누울 대상의 필요로 막내 마퉁이를 택하는 것이다.

자청비는 사랑에 목숨을 걸었지만 가믄장아기는 자아실현에 목숨을 건다. 자신의 요구를 중요시했고, 자신이 가는 길에 따뜻함을 나눌 남편감을 눈 여겨 골랐고, 그를 재촉하며 가정의 경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부를 성취해낸다. 부자가 되고 사탕발림 같은 거짓의 말로 효도를 하기보다는 부모님의 잘못을 자기 앞에서 인정하게 한다. 거지 잔치를 열어 그 부를 사회로 환원하며 자아를 확장한다. 관계 보다 자아의 실현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특성으로 그녀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져 왔던 자기중심적인 선택과 결정을 하고 성공과 부와 권력을 자기 손 안에 성취한다. 남성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져 왔던 것들의 주변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인 자신이 그것을 직접 소유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남자 같은 가믄장은 체제, 관습, 고정관념에 저항하고 그것들에 의해 전도된 성 관념을 바꾸는, 그래도 효과적일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남자와 같은 모습으로 가면 좋겠다는 거다. 남자처럼 자기중심적으로, 자기실현에 모든 것을 쓸어 담으며, 권력과 명예, 성공을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싸운 아내와의 관계쯤은 현관을 열고 들어서고, 싸웠기 때문에 저녁이 식탁 위에 준비되지 않았음을 보고서야 아차, 생각하는 정도의 IQ와 EQ로 사는 길이다. 그러는 가믄장을 보는 가믄장 앞의 남성들이 역지사지하여 자신들의 어이없는 폭력에 대해 한번쯤 재고할지도 모를테니 말이다.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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