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차기정부, 이명박 정부의 '불관용' '불통'과 끈 끊어야

이명박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언론은 박근혜 당선인의 동정은 크게 부각하는 반면, 지난 5년 동안 국정을 운영했던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년초에 자화자찬(自畵自讚) 일색의 '이명박 정부 국정성과'를 내놨지만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부정 비리사건이나 과실에 대한 반성 없이 잘한 일만 가득 나열했기 때문이다. 다수의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가 공보다는 과가 더 크다고 보고 있어 박수를 보내기보다는 무시하는 것이 심사가 편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역대 대통령의 임기말이면 어느 정권이든지 국정운영 결산서를 내놓았다. 자체 비판은 거의 없이 좋은 것만 나열하고, 앞선 정부와 비교하며 깍아내리는 행태를 보여 주었다. "참여정부 5년 간은 세계경제(4.8%)보다 0.5%p 낮은 성장률(4.3%)을 보였으나 현 정부 들어서는 세계경제(2.9%)와 유사한 성장률(3.0%)을 기록했다"는 표현처럼 견강부회하기도 한다. 한 정권이 끝나면 자체 평가는 물론 외부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는 필수적이다. 잘잘못을 가려내 차기 정권에서 거울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을 이해하고 미래의 발전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지난 일을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지난 일을 서술함으로써 미래의 일을 생각하려 했다”(故述往事 思來者)고 하였다. 정치적인 잣대로 평가를 악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명박 정부를 평가할 때 경제실정의 그림자가 너무 크기 때문에 어느 것을 자랑하더라도 묻힐 가능성이 크다. 양극화 심화, 5년 평균 2.9%의 경제성장 등 초라한 경제 성적표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 불리한 여건을 들기도 하지만 국민의 기대 수준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결정적  실패 이유는 국정운영 과정에서 보여준 소통이 없는 ‘불통’(不通)과 ‘불청’(不聽), ‘내가 해봐서 아는데’ 처럼 유아독존적 행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불관용’, ‘갈등해소에 대한 무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민주 정치를 운영할 기본적 철학이나 이념이 없었던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은 5년내내 많은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를 인식하는 프레임으로 작용했다.

제일 큰 과오는 불통정부라는 오명까지 들었던 소통부재다. 소통은 갈등을 해소하고 국정을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열쇠다. 4대강 사업의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갈등의 행태는 이명박 정부의 소통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임기안에 무리하게 불도저식으로 밀어부친 행태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국민의 여론 수렴을 생략하고 법 절차를 무시한 채 초스피드로 추진하였다. 치수사업으로서의 평가는 접어두더라도 감사원의 4대강 사업 감사결과 발표를 통해 이 사업이 얼마나 졸속으로 부실하게 진행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후대에 감당하기 벅찬 무거운 짐을 남겨놓은 것이다.

경제성장에 대한 집착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 처럼 유아독존적 행태를 낳았다. 경제 때문에 몰표를 얻어 당선한 ‘경제대통령’으로써 성장에 대한 조급증과 과거 기업 경영에 대한 자부심이 결합되어 나타났다. 우리 경제의 특성과 미래비전, 저성장시대의 경제 흐름, 신자유주의 시대의 세계경제 등에 대한 식견이 부족했다. 경제를 토건식으로 얕잡아 보고 고성장시기의 방식대로 밀어 부치면 된다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이다. 투자, 수출, 부자 감세, 4대강 사업 등이 747공약의 실현을 가져올 것이라는 성장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박정희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가 잘 되었다면 모든 흠결을 덮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안된 상태에서 경제 정책의 실패는 예견된 일이었다.

법치주의를 강조하다보니 관용의 정신이 사라져 버렸다. 사회적 소외계층이 법을 어겨가면서 저항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낳은 중산층의 몰락,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증, 저소득층 양산 등으로 사회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사회적 약자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 질서 준수보다는 물리적 저항에 의존하였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많은 사람들이 법의 잣대도 강자와 약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약자들에게 법의 형식적 적용만 강조하면 그들의 저항은 더욱 강해질 수 밖에 없다.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가 대표적 사례다. 내곡동 사저매입 수사에서 보여준 검찰권의 이중 잣대, 측근에 대한 특별사면 등이 국민의 법감정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엄정한 법 집행은 민주주의의 보루이지만 복잡한 사회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법제정의 취지에 합당한 관용의 정신도 필요하다. 관용은 국민통합의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갈등해소 보다는 반대하는 국민과 싸우는 데 정력을 쏟았다. 귀를 열어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설득하는 자세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제주 해군기지 사업의 추진에서 대화보다는 싸우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선현들은 국민과 싸우는 정치가 제일 나쁜 정치라고 강조했다. 대화와 설득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추진력과 돌파력을 과시하면서 목표 달성에 급급하였다. 갈등해소를 위한 준비는 물론 역량도 미흡한 정부라고 할 수 있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제주의소리

한미 FTA, 국가브랜드 제고, 세계 금융위기 극복 등 평가에 논쟁적인 사안도 있지만 민주 정치를 운영하기 위한 기본자세는 부족했다. 시대적 소명의식을 갖고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기준에서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개인과 공동체, 정부 간의 갈등 요소들을 잘 조화시켜 최적의 민주 정치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민주정치에 대한 기본철학의 부재는 공익보다는 사익을 우선하는 행태를 낳고 시민적 덕성의 함양에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자칫 잘못하면 극심한 국민분열로 공동체의 쇠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차기정부는 정치쇄신과 국민통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명박 정부의 어두운 유산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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