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입춘굿 재현 장면.
1만8천 제주 신들 깨우는 '2013 탐라국입춘굿'  

 

▲ 일제시대 입춘굿 재현 장면.

제주 섬에 새 봄이 든다.

새해 첫 절기이자 2013 탐라국입춘굿 셋째날인 4일은 관덕정에서 ‘입춘굿’이 펼쳐진다. 하늘에 새 관직을 부여받으러 올라갔던 1만8천 신들을 불러내는 의미다.

예부터 해마다 입춘이면 제주시 목관아에서는 목사를 비롯한 관리와 무당들이 다함께 거방지게 굿판을 벌이곤 했다.

일제시대 문화말살 정책에 의해 사라졌다 1999년부터 재현돼 해마다 도민 대동제로 열리고 있다. 올해로 15회째, 원형으로 되돌리려는 데 신경을 쏟았다.

굿에 이미 ‘놀이’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는 데서 꼬리표를 떼고 ‘탐라국입춘굿’이라 이름을 바꿨다. 축제 기간도 1박2일에서 2박3일로 늘렸다.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재미는 갑절로 불렸다.

입춘굿이 복원되던 첫해 3일 간 치렀던 입춘걸궁을 ‘춘경(春耕)문굿’을 되살렸다.

목관아에서 굿판을 벌이기 전 제주도청과 제주시청, 제주도의회 등 도내대표 관청과 산지포에서 관덕정에 이르는 상가를 다니며 복은 들이고 액은 내모는 재액초복(災厄招福)의 의식을 치른다.

탐라왕이 몸소 쟁기를 끌면서 모의농경의례를 가졌던 데서 유래한 ‘친경적전(親耕耤田)’도 축제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탐라국 시절 지도자가 몸소 쟁기를 끌며 밭가는 시늉으로 풍농을 기원하곤 했다. 탐라국시대의 오랜 유습이라는 문헌기록에 근거한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이 친경적전의 모의농경의례는 축제에서 별도의 프로그램에서 빠져 있었으나 이번 축제부터는 주요프로그램으로 넣어 축제의 원형성을 살리고자 한다”는 것이 축제 관계자의 설명.

지역을 대표하는 소설가 현기영 선생이 탐라왕 역할을 맡아 쟁기를 끈다. 소리꾼 문석범 씨가 ‘밭 볼리는 소리’를 부르며 낭쉐를 몬다. 모여든 관객에게 새해 덕담을 나누며 관덕정 마당을 도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쓰일 낭쉐와 쟁기 또한 새로운 볼거리다. 그간 입춘굿의 상징이던 낭쉐코사와 낭쉐몰이는 없어졌지만 친경적전에서 당당한 새 얼굴을 선보일 예정. 목관아에서 보관해오던 3개의 낭쉐가 커다란 낭쉐로 합쳐진다. 제작은 조각가 강문석 씨가 맡았다.

축제의 진수는 역시 ‘입춘굿’. 올해는 입춘굿이 복원돼 1회 때부터 굿을 집전해온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대신 (사)제주큰굿보존회가 집전한다.

과거에는 각 마을의 본향신을 모시는 많은 심방들이 관덕정으로 모였다. 이들 중 가장 춤도 잘 추고 사설도 정확하게 읊는 우두머리 심방이 ‘도황수’인데 이날 뽑았다 한다.

돌아가며 입춘굿을 맡는 것이 보다 원형에 가깝다는 뜻에서 변화를 꾀했다. 내년엔 다시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차례로 돌아간다.

입춘굿은 예부터 진정한 ‘대동제’였다. 탐라국 시절에는 왕으로부터 백성까지, 조선시대에는 제주목의 최고 관리인 목사에서 서민들까지 한데 어울려 거방지게 놀았다.

심지어는 벌을 받거나 드물게 아주 큰 상을 받을 때나 드나들 수 있던 목관아도 이때만큼은 서민들 또한 드나들 수 있었다.

무당들이 전하는 설화에서 악마로 치부되는 조선시대 이형상 목사 시절에도 입춘굿만은 행해졌다니 그 의미가 얼추 짐작이 간다.

이밖에 초청공연인 '줄타기 난장', 관기들의 춤 공연을 재현하는 '예기무공연', 제주전승탈굿놀이인 '입춘탈굿놀이', 축제의 막을 내리는 '대동놀이' 등으로 셋째날까지 갖가지 즐길거리가 갖춰졌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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