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성곽을 따라 침체된 도시들을 보면서 제주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길 바랍니다”  

▲ 김석윤 김건축 대표(사진에서 맨 오른쪽)이 원도심 탐방 길잡이에 나섰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5일 오후 1시 ‘기억의 현장에서 도시의 미래를 보다’는 이름으로 제주시 원도심 탐방이 펼쳐졌다. 달마다 제주씨네클럽을 진행하고 있는 문화기획PAN(대표 고영림)이 마련한 자리다.

제주대학교가 현재 사대부고 자리에 있던 시절(1980년대)에는 남문로, 중앙로, 칠성로 등 이른바 ‘원도심’지역은 대학로와 다름없었다. 요즘 젊은이들에겐 '쇼핑하러 가는 곳'일 뿐이지만 40대 이상에게는 골목골목이 추억창고다.
 
김석윤 김건축 대표가 이날 탐방 길잡이에 나섰다. 탐라도서관, 한라도서관, 현대미술관 등 지역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건축물이 그의 작품이다. 제주도 문화재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날 코스는 칠성통부터 관덕정, 성내교회, 현대극장 등을 훑은 후 제주성곽, 오현단, 동문시장, 산지천까지 짜였다. 오후 내내 원도심 한 바퀴를 돈 뒤 저녁에는 제주영화예술문화센터에서 ‘사랑해, 파리’를 함께 관람하며 마무리 짓는 일정이다.

평일인데다 비까지 내렸지만 마침 방학이어서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여들었다. 30여명 되는 참가자 중 절반 이상이 대학생들이었다.

 

▲ 동문로터리 분수대 옆 골목길부터 중앙우체국까지 이르는 칠성로. 인근 지역을 통틀어 칠성통이라 부른다. 신제주가 개발되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아는 사람을 한 번에 만날 수 있을 만큼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었다고 한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마이크를 잡은 김 대표가 ‘칠성통’에 대해 설명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동문로터리 분수대 옆 골목길부터 중앙우체국까지 이르는 길을 기준으로 북쪽에 형성된 상가지역을 가리킨다.

김 대표에 따르면 산지항이 개항하면서 일제강점기부터 제주시 최고 중심 상가로 발전했다. 칠성로를 따라 제주도청, 제주경찰서, 법원, 제주세무서, 금융기관 등 주요 기관들이 모여 있는데다 지역의 유지들이 거주하는 덕분에 상권이 발달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1950년대 들어서 양장점과 양복점들이 들어섰고 미용실도 있어 당대의 모던보이, 모던걸들이 거리를 누비곤 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 골목만 걸으면 보고 싶던 사람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김 대표는“그러나 1990년대 이후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개발로 신제주와 일도지구 상권이 발전하고, 2000년대 이후에는 제주시청 대학로 주변 상권이 떠오르면서 이제는 텅 비어버렸다”고 설명을 보탰다.
 

▲ 조선시대부터 제주의 오랜 중심지 역할을 맡았던 관덕정.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 고성(古成)이라는 뜻의 속칭 '묵은성'. 몇몇 문헌에는 5세기~7세기 후반 무렵에 지금의 묵은성 일대에 탐라국 성이 축조됐다는 기록이 있다. 사진은 현재 동네에 하나 남은 기왓집.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김 대표는 목관아 역시 ‘문화재’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이 무인들의 연병장이자 관청 업무를 보던 곳이었고 근현대에 들어서는 각종행사가 이뤄졌던 공간이다. 제주의 아픈 역사인 4·3의 시발점이면서 이재수의 난 시신을 수습했던 곳으로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역사적인 곳”이라고 설명했다.

목관아에서 남문에 이르는 길인 ‘한짓골’과 ‘이앗골’은 조선시대부터 성안을 드나드는 사람들로 인해 늘 인파가 붐비는 곳이었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덕분에 자연스레 크고 작은 문화·예술 운동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은 한적하기 이를 데 없지만 1980년대까지 제주의 중심으로 꼽히던 곳이다.

 

▲ 옛 제주대학교 병원 건물. 1910년 일제시대 자혜의원에서 출발해 1946년부터 도립병원으로 운영되다 1983년 제주의료원으로 전환된 역사적인 건물이다. 제주대 창업보육센터로 짓기 위해 최근 철거 중에 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제주대학교 창업보육센터로 새로 짓기 위해 철거에 들어간 옛 제주대학교 병원 건물은 1910년 일제시대 자혜의원에서 출발해 1946년부터 도립병원으로 운영되다 1983년 제주의료원으로 전환된 역사적인 건물이다.

김 대표는 “최근에 원도심을 되살리려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접근 없이는 안 하느니 못하다. 지난 2011년에 구도심재정비촉진사업이 무산되면서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려던 계획이 백지화됐다. 하마터면 이곳이 싹 사라질 뻔 했다”고 말했다.

이번 탐방 프로그램은 고영림 문화기획PAN 대표와 원도심에 위치한 대동호텔 아트센터 비아아트 박은희 관장, 게스트하우스 비엔비판의 신창범 대표가 의기투합하며 만들어졌다.

셋 모두 이곳에서 나고 자라 원도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뭍으로 나가 지내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 이따금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어떻게 하면 원도심을 되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이번 탐방을 진행하게 된 것.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정기적인 프로그램로 키워갈 계획이다.

고영림 대표는 “이번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소식에 직장인들이 항의(?) 전화를 걸어왔다. 평일이어서 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주말에 한 차례 더 진행해볼 계획이다. 프로그램이 구체화되면 다양한 테마로 나눠 정기적으로 진행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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