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은 자칫 무미건조하게 끝날 뻔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미국과 유럽에서 취하고 있는 통화팽창 정책, 이른바 양적 완화 조치는 인플레이션과 통화가치 하락을 유발할 것이고 그 나라의 환율을 떨어뜨려 수출경쟁력을 높여 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어느덧 양적 완화는 곧 환율정책의 의미를 풍기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다보스 모임 하루 전날 일본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타깃을 1%에서 2%로 상향 조정하고 이를 위해 내년부터 매달 일본 국채를 대규모로 유통시장에서 매입할 것을 결의했다. 최근 아베 신조 새 총리의 "윤전기로 돈을 찍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고 중앙은행이 반대하면 총재와 법률을 바꾸겠다"라는 발언 뒤에 나온 조치여서 다분히 정치적 압력이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이것은 다보스 모임의 먹이 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러시아 중앙은행 부총재에 이어 독일 연방은행의 바이데만 총재, 그리고 우리나라의 박재완 장관 순으로 일본이 환율전쟁을 촉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와 관련하여 하버드 대학의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 교수는 1월 25일자 파이낸셜 타임스에 "환율전쟁은 조용히 하는 거야"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뒤늦게 떠들썩하게 양적 완화 대열에 편승한 일본에게 한마디 훈수를 던진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실질실효환율(명목환율에 무역가중치와 물가변동을 감안한 것) 통계에 의하면 지난 5년 반 동안에 일본 엔화는 오히려 22.1% 절상된 반면 영국과 한국은 각각 14.2% 및 14.7% 절하되었다. 그는 이를 근거로 환율전쟁의 혁혁한 전사(currency warrior)는 영국과 한국이라고 했다.

조용한 환율전쟁

영국은 환율 전쟁의 채비를 한층 더 다지고 있다. 오는 7월 1일 영국 중앙은행총재로 취임을 앞두고 있는 캐나다 국적의 마크 카니(Mark Carney)는 "신축적 인플레이션 타깃"을 주창한다. 영국 역사상 외국인을 중앙은행총재로 영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양적 완화의 원조(?)다.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로 취임한 그는 2009년 1월 초(超)저금리를 일년 동안 절대로 재인상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수법은 미 연방준비은행을 3년 앞선 것이었다.

작년 12월 영국 의회에서의 수락연설에서도 그는 현재와 같은 예외적 시기에는 성장과 고용이라는 목표가 인플레이션 목표보다 앞서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영국의 인플레이션은 목표인 2%를 초과하여 3%로 진행하다가 최근에 2.7%까지 내려 온 바 있다.

그러나 환율 문제의 핵심은 역시 G2 통화인 달러화와 위안화다. 우선 장기적으로 환율 저평가 경쟁에서 선두주자는 단연 미국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실질실효환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64년 이래 현재까지 유독 달러화만 34.5%나 하락했다.

여기에는 세계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특수성이 있다. 미국은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대해 무역수지 적자를 유지해 왔다. 쉽게 말하면 미국은 물건을 사주는 사람이다. 미국은 그 대전을 자기나라 화폐로 지불한다. 이것이 쌓여 세계에는 달러가 넘친다. 시간이 지날수록 달러화의 상대적 가치가 조금씩 떨어지는 것은 구조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세계통화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미국의 달러화의 위치가 특수한 만큼 세계 무역시장에서의 중국의 위치도 특수하다. 한마디로 중국의 물건이 싼 것은 위안화가 저평가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중국인의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다.

미국의 위대함을 잊고 필요 없이 사과나 하고 돌아다닌다며 오바마를 비난하는가 하면 대통령이 되면 취임 첫날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선포하겠다고 공약했던 롬니 후보가 지금의 미국 대통령이 아닌 것은 다행스럽다.

G2 사이의 환율 분쟁은 없어야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오바마 정권 제2기의 각료 3인방, 국무부의 존 케리 국방부의 척 헤이걸, 그리고 재무부의 잭크 류 등은 전임자들에 비해 오바마의 세계관과 외교철학에 부합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뱀의 해가 시작되었다. 뱀처럼 그 상징이 다양한 동물도 없다. 지혜와 치유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인간의 원죄를 낳게 한 사악한 동물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G2, 미국과 중국이 보다 합리와 실용주의에 입각한 상호관계를 형성하면 금년은 힐링의 해가 될 수도 있다. 당장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 대처하는 과제에서부터 말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