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의 교육소비자 협동조합] (1) 동병상련 엄마들, 우연히 만나서 “가․해․위!”를 외치다

사교육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데 정작 우리가 누리는 교육의 질은 낮기만 합니다. 최근 착한 경제가 뜨고 있는 가운데 '교육소비자 협동조합' 또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김학준 이어도교육문화센터 이사장이 현실에 가상을 섞은 팩션(faction)을 통해 '교육소비자 협동조합'에 대해 설명해나가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주]

▲ 요즘 학부모들은 정신 없다. 행여 내 아이가 뒤쳐지진 않을까 온갖 입시 설명회, 학원 상담을 쫓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학원에 과외까지 시켜도 불안한 건, 많은 돈을 들여도 교육의 질이 그다지 좋기 않기 때문이다. <제주의소리DB>
#. 제주시로 빠져만 나가는 교육 인구들 "이것이 현실"
  현민이네가 엊저녁에 먹다 남긴 스파게티를 살짝 데워 대강 점심을 떼우고 난 직후에 105동 보람이네가 건너왔다.
  “어제 우리 105동 진혁이네가 제주시로 이사갔다네에!”
  “혹시나 했는데….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구나. 진혁이가 6학년이라지? 중학교부터는 교육환경이 좋은 제주시에서 다녀야 하는 게 아니냐고 노래를 불러대더니만…. 그렇긴 해도, 막상 듣고 보니 갑작스럽긴 하다.”
  “온가족이 이사는 하지만, 아빠 약국은 그냥 서귀포에서 운영하고 신제주서 출퇴근한다네에!”
  “허기사…. 약국은 아무데서나 하나? 병원이 여나믄 곳이나 근처에 몰려있는 1호 광장만큼 좋은 자리가 어디 흔한가? 게다가 리베이트를 따로 줄 필요가 있기라도 하나. 임대료 팍팍 올려주겠다는 작자의 꾐에 혹한 건물 주인에게 밀려나지만 않는다면….”  
  "그렇긴 해. 근데 현민이 삼촌네도 재작년엔가 이사를 갔잖아.”
  “그래. 현민이 사촌형이 연합고사를 봐서 대기고에 들어가면서 온가족이 제주시로 옮겨갔어. 과수원이 남원에 있긴 하지만, 일도지구에 있는 아파트에서 감귤밭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으니까, 거리로만 따지자면 별 문제는 아니지.” 

 

  현민이도 내년에는 중학교에 간다. 진작부터, 중학교까지는 서귀포에서 다니고, 고등학교는 기숙사가 있는 외국어고등학교나 과학고를 가기로 가족 모두가 합의를 보았지만, 벌써부터 은근히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은 엊그제 전화로 신청해놓은 ‘자기주도학습 사업설명회’에 참석하러 5․16도로를 넘어 제주시로 가는 길이다. 동행하기로 했던 보람이네는 갑자기 보람이 아빠 가게 여직원이 몸이 아프다고 결근하는 바람에 빠졌다.

#. '절실한 엄마들' 먼 길도 마다 않은 첫 모임
  5․16도로 중턱 못 미쳐서 있는 ‘숲터널’로 접어드는데 11월 이곳 풍광만큼은 매년 볼 때마다 누구에게나 내놓고 자랑하고프다. 설악산처럼 강렬하게 불타지도 않고 오대산처럼 현란하게 자지러지지 않는 대신에, 이곳 단풍은 은근하게 찬란하면서도 그윽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치 손짓하는 심연처럼. ‘참…, 단풍이 곱기도 하다. 오색단풍이 모두 지기 전에 아이들이랑 한 번 구경 와야겠구나.’ 그러지 않아도 계속 꼬불길인데다가 차로 양옆으로 황홀한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는 가을풍광을 슬금슬금 훔쳐보느라 느려진 현민이네를 자줏빛 포르테가 추월해 지나간다. ‘급한 약속이 있나보다.’ 흘낏 옆을 보니 언뜻 현민이네와 비슷한 연배의 여자들 둘이 웃는 모습들이다. 30분쯤을 더 달려 설명회 장소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는데, 아! 현민이네 차를 스쳐 앞질러간 자줏빛 포르테 5459가 보였다. 웬일인지 반가웠다.

  모임이 열리는 노형 리더십 센터로 들어서니 시간은 늦지 않았는데도 벌써 좌석이 가득차서 겨우 출입문 쪽 자리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문득 눈길이 가는데 바로 앞줄 안쪽에 앉은 이의 옆모습이 설핏 눈에 익었다. 그네들이었다.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다.
  “혹시 좀 전에 5․16도로를….”
  “네?”
  “서귀포에서 5․16도로로 한라산을 넘어오지 않으셨나요? 바로 제 앞을 지나오신 분들이신 듯해서요.”

  맞았다. 그들도 현민이네처럼 아이들 때문에 제주시에서 열리는 ‘자기주도학습 사업설명회’에 참석하려고 높은 한라산 넘기를 마다않고 달려온 서귀포 학부모들이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둘 다 서울에서 내려와 서귀포시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나연이 엄마는 대구출신인데 벌써 5년 전 서울에서 유통회사 다니던 남편이 제주지사로 발령이 나서 온가족이 내려왔다가, 새로워진 본사 방침에 따라 개설된 서귀포영업점을 따내고는 아예 눌러 살기 시작한지 3년째이다.

 소라 엄마는 인천에서 부부가 학원을 운영하다가 남편이 몸이 약해지는 바람에 휴양을 겸해서 2년 전에 남원 쪽에 귀농을 했다. 알고 보니, 부부가 둘 다 서귀포 토박이인 현민이네를 포함하여 세 가족 모두 그럭저럭 먹고 살기는 할 만한데, 아이들 교육 때문에 항상 마음에 걸리는 동병상련을 앓고 있는 처지였다. 아이들이 둘 다 초등학교 5학년인 나연이 엄마와 소라 엄마는 대학동창이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제주도에 내려온 뒤, 줄곧 함께 어울려 다녔다. 이제는 현민이 엄마까지 셋이서 몰려다니게 될 참이다. 참, 보람이네도 있다.

#. 자기주도학습, 입학사정관제가 도대체 뭐길래?
  사실은 ‘입학사정관제’다 ‘자기주도학습’이다 매스컴에서 하도 떠들어대는 바람에 조바심도 나고 해서,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증을 풀까 하고 왔는데, 강사는 연신 자기네 프로그램을 따르기만 한다면 만사형통이라는 식으로 변죽만 울려댄다. 하기는 그간 수차례 겪어봤던 대부분의 상업적 교육프로그램 사업설명회들이 그런 식이었다. 귀가 솔깃해지는 경우도 더러 있긴 했지만, 서귀포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그나마도 기회가 거의 오지 않는다.

 귀에 쏙쏙 들어와 그럴 듯해 보이는 프로그램일수록 교육비가 비싸고 또 그럴수록 서귀포 쪽에 교육관이 생기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제주시에 비해 인구가 엄청 적은데다가 나날이 학생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서귀포시는 시장논리의 관점에서 보아 ‘규모의 경제’ 원리상 모든 게 상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일 터이다. 그래서 눈높이나 빨간펜, 푸르넷이나, 웅진홈스쿨, 정철영어, 튼튼영어, 혹은 윤선생 같이 오랫동안 전국적으로 잘 알려져 대중화된 저가의 브랜드 교육상품들은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다른 좀 더 고가의 최신 프로그램들은 가맹비나 인테리어 등 초기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다가 소비자 규모에 대해 확신할 수가 없는 탓인지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로 들어오는 게 여간 더딘 게 아니다. 아예 ‘시장’으로 치지 않는 듯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현민이는 지난여름까지 1년 반 동안 토요일마다 신제주에 있는 영재수학 교습소를 드나들었었다.

  이번에는 ‘자기주도학습’이란다. 2, 3년 전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한 입학사정관제에서 핵심은 자기주도학습이라는데 그게 도통 뭐가 뭔지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어느 교육기업의 프로그램 광고문구 말마따나, ‘스스로’ 하는 학습이 바로 그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아이들 하고 싶은 대로 공부하게 내버려두는 게 그게 아닌가 하다가도, 그렇다면 그런 모양의 자기주도학습이란 게 왜 특목고나 명문대학에를 들어가려면 미리부터 호들갑스럽게 준비해야 하는 결정적인 과제가 되는가 싶기도 한 것이다.

  어쨌든 새로운 교육프로그램 소식만 들리면 외면할 수 없어 하루의 반을 쪼개어 한라산을 넘나들어온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오늘도 혹시나 하면서 왔다가 역시나 하는 심정으로 돌아서게 되긴 했지만, 비슷한 상황의 나연이네, 소라네, 그리고 현민이네가 어울리는 계기가 만들어진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훗날 이루어진 일들을 보면 이날 그들의 만남은 ‘역사’를 만드는 사건이라면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셋은 그날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로 5․16도로를 넘어와서 범섬이 보이는 보목동 해안도로 입구에 자리 잡은 호프집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로 직행하여, 막 집에 들어온 보람이네까지 불러내고는 한 시간 남짓 교육전문가들-대한민국 학부모는 모두 교육전문가가 아닌가!-로서 열띠게 교육현실에 대한 시국성토를 벌였다.

아이들은 아침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학교와 학원과 과외에 매여 있다. 그렇다고 거기에서 제공받는 교육의 질이 우수한가? 그렇다고 누구도 감히 장담하지 못한다. 거의 전적으로 상급학교 입시를 위한 교과학습 위주의 주입식 단답형 반복학습으로 아이들의 생기는 나날이 시들어간다.

지식기반사회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는 하는데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결코 명실상부하지 않다. 아이들 교육비는 천정을 모르는 체 치솟고 이를 감당하느라 학부모들은 등골이 휘어진다.

사교육비를 대느라 맞벌이하면서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방치되는 기막힌 역설이 다반사다. 궁극적으로 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이 실현해야 하는 것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선하며 성취적인 삶’인데 우리는 그런 교육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오늘 우리는 오로지 당장의 교과성적과 대학진학이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아이들은 물론 우리들 자신의 숨통을 조이면서 미래를 죽이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우리가 아이들을 위한다면서 기를 쓰고 만들어내는 교육환경이 거꾸로 아이들을 밑도 끝도 없는 나락으로 밀어넣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급히 우리의 교육환경은 달려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아다시피 이미 오래 전부터 국가는 그럴 수 있는 상상력과 의지와 실행력을 결여한 채 시행착오만 반복하고 있고, 궁극적으로 공교육의 전범(典範)이어야 할 국립서울대학을 필두로 철저하게 서열화된 대학들은 거의 모든 교육적 파행과 황폐화의 원인자가 되고 있으며, 기업이든 개인이든 ‘시장’은 그것을 기화로 사리를 채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감시자이자 등대이어야 할 언론조차 스스로 나서서 음으로 양으로 ‘교육시장’에 뛰어들어 개평을 뜯어먹는 형국이 전개되고 있다. 한편 국민들은 너나없이 무한경쟁 시장논리에 휘말려 거기에서 가해자가 되고 동시에 피해자가 되고 있으니, 참으로 슬프고도 답답한, 목불인견의 세상모습이다. 이 난국을 헤쳐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바로 이어서 누군가의 제안으로 시작해서 다시 거의 반시간 남짓 들여 입을 맞추어 만들어낸 구호는 다음과 같다. 

  “어디든 가보자! 무엇이든 해보자! 아이들을 위하여! 가 ․ 해 ․ 위!”
이들 ‘가해위 4인방’은 나연이네 강민희, 소라네 박승현, 보람이네 양호정, 그리고 현민이네 이지헌이다. 이 4인방은 나중에는 7인방, 30인방, 급기야는 100인방으로까지 확대되어 나갈 운명이었다. 그 당시는 일이 그렇게 커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김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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