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5일 일본의 리스 중심 금융그룹 오릭스는 유럽의 자산운용회사 로베코를 27억달러에 매입할 예정임을 공시했다. 네델란드의 라보뱅크가 최근 강화된 바젤 3의 자기자본비율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회사를 매물로 내놓은 지 9개월 만이다. 특이한 점은 사장을 포함한 현 경영진을 그대로 두는 조건이다.

요즘 일본은 금융기관, 종합상사, 제약회사 등을 중심으로 외국 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작년 한해 동안 이동통신 업체인 소프트뱅크가 미국 스프린트사를, 일본 최대 제약회사 타케다 약품이 스위스, 미국과 브라질의 제약회사들을 매입하는 등 전체적으로 1000억달러 이상을 투자했다고 전해진다.

하버드대 교수 제러미 스타인(Jeremy Stein)은 이달 초 '금융과열의 원인과 진단 그리고 대책'이라는 제목의 연방준비은행 심포지엄 주제발표를 통해 금융위기의 발생 원인이 은행감독 이전에 금리에 있다는 주장을 폈다. 금리가 지속적으로 낮을 때 보험회사나 은행들은 '수익률 경쟁'에 나서게 되는데 고수익을 제시하는 신종상품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부도위험에 대해서 둔감해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 징후 중의 하나로 전체 채권시장에서 정크본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금융과열이 극에 달했던 2006년에 비해 이미 2배에 달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일본의 외국진출 러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약 2조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보이는 일본기업의 현금유보는 딱히 갈 곳이 없다. 경제성장 동력이 제로인 상태인 자국 내에는 마땅한 투자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엔화 강세도 자본의 해외진출을 부추기고 있다. 일본의 외국기업 및 부동산 매입은 1990년을 전후해서 불었던 열풍을 상기시킨다. 뉴욕의 록펠러센터, 할리우드의 컬럼비아 영화사, 캘리포니아의 명문 골프장 페블 비치가 일본에 팔렸다.

수익률 경쟁이 부실 낳아

미스비시 부동산의 록펠러센터 매입 일화는 일본인들에게 치욕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정확히는 록펠러센터의 건물과 토지를 매입한 게 아니라 이 부동산들을 소유 관리하는 부동산관리회사(REIT)를 매입한 것인데 13억달러의 모기지 부채를 지고 있는 회사에 14억달러를 지불하고 지분의 80%를 매입한 것도 문제였지만 회장(데이비드 록펠러)과 사장을 그대로 두기로 한 것도 해괴한 일이었다. 당시 언론은 미스비시측이 그 이유로 "우리는 이분들의 경영 스타일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했다며 비아냥 섞인 기사를 실었다.

매입 다음해부터 뉴욕의 부동산 시장은 침체에 빠져들었고 임대 수입감소와 모기지 원리금 상환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미스비시는 결국 6년 만에 막대한 손실을 안고 센터의 대부분을 되팔아야 했다. 헐값에 매입해간 측은 다름아닌 데이비드 록펠러를 주축으로 한 신디케이트였다. 이들은 몇년 후에 7억달러의 이익을 남기고 센터를 제3자에게 팔았다.

직접 경영을 할 배짱도 능력도 없으면서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몰랐을까? 하기는 우리나라의 한국투자공사(KIC)도 2008년 초 "세계적인 투자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망하기 직전의 메릴린치 주식을 20억 달러어치나 사들였으니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미국 중앙은행은 실업률이 6.5% 선으로 줄어들 때까지 현재의 저금리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공언을 한 바 있으므로 이사회의 소수 의견으로 이를 뒤집기는 힘들 것이다.

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지속될 이유는 더 있다. 발동시기만 연기되었던 씨퀘스트(예산의 자동감축)도 3월 1일 이후는 더 이상 미룰 방도가 없게 된다. 가뜩이나 낮은 성장률을 더 끌어내릴 것이 분명하다.

고수익 고위험의 유혹 지속될 것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거기에다 한동안 다져져 왔던 이탈리아의 구조조정도 이번 총선의 결과에 따라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면 유로 존의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게 된다.

유로 존의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고 미국의 성장도 주춤하게 되면 미국 중앙은행과 다른 주요국들의 통화정책들은 경쟁적으로 양적완화와 저금리의 길을 택할 것이다.

경기 부양을 위해서 금융위기의 씨앗을 동시에 키워야 하는 것, 이것이 저금리의 딜레마다. 스타인 교수의 경고에 불구하고 저금리 시대는 꽤 오래 갈 것으로 보이는데 개인, 기관, 또는 국가가 고수익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과연 쉬울지 걱정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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