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평등의 가치'로 성장 이끌어야 할 시대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 대해 희망과 실망이 교차하고 있다. 취임사에서 제시한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이라는 3대 키워드와 상징이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인지 국민들의 관심이 크다.

기초노령연금, 4대중증질환의 국가보장 같은 복지공약의 후퇴와 흠결있는 인사 지명, 정부조직개편 지연 논란 과정에서 협치가 아닌 일방적 통치로 인해 불통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대통령은 일상화된 안보와 경제위기를 강조하며 자신의 정책을 관철하려고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경구가 떠오른다. 봄은 왔건만 봄 같지 않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박대통령은 출범 초기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5년간 이 나라를 이끌어 갈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아직 섣부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새 정부의 역사적 의미와 과제를 점검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고, 담대한 상상력도 필요하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 간에 경제민주화와 복지로 상징되는 평등이라는 가치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국민들 사이에 오랫동안 널리 공유되고 있는 권위주의와 경제성장이라는 신념과 정서도 뚜렷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자유와 평등의 딜레마를 슬기롭게 해결하여 ‘국민행복시대’를 성취하는 것이 새 정부의 최대 과제다. 자칫하면 ‘평등이라는 알 수 없는 재난보다는 잘 아는 자유라는 악당이 낫다’는 옛 원리를 따를 수도 있다.

근대 역사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와 이념을 놓고 끊임없이 갈등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거쳤다. 자유와 평등이 극단적으로 대립할 때 갈등이 증폭되어 참혹한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반면, 양 극단을 벗어나 중도로 움직일 때 화해와 통합,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새가 좌우의 양날개로 날듯이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시대상황에 부합하는 균형점을 찾아야 인간 중심의 역사발전을 이룰 수 있다.

이승만 정부부터 현재까지는 자유의 가치를 평등보다 중시하였다. 그러나 한쪽 날개가 부러지면 새가 날 수 없다. 평등의 가치가 무시되면 공동체가 붕괴될 수 있다.  자유를 떠받치는 것은 평등이다. 근대적 의미의 복지 제도는 권위적 보수주의자인 비스마르크가 독일 사회의 통합을 위해 추진했다. 비록 걸음마 단계지만 우리 사회도 자유에 평등을 보완하여 체제 유지와 국민통합을 이룩한 역사적 자산을 갖고 있다.

먼저 이승만 정부가 1950년에 단행한 토지개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농지의 소유 상한(3정보=9천평)을 초과하는 농지를 정부가 유상으로 매입하여 농민에게 유상으로 불하하는 것이었다. 토지개혁을 통해 소작농을 지주의 예속으로부터 자유롭고 자립한 농민으로 만들었다.

토지개혁은 근대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작업이었고, 북한의 6.25 남침으로부터 국가를 수호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주 자본은 산업자본으로 전환되었고, 자영농이 된 농민들은 자식들을 교육시켜 신분상승의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었다.

1950년대 우골탑(牛骨塔)으로 상징되는 교육 열풍은 박정희 시대 고속 성장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토지개혁은 한국 사회변화에 혁명적인 영향을 끼쳤고 국민에게 강한 평등의식을 심어 주었다. 토지개혁에 대해서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위한 첫 시도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다음은 박정희 정부에서 시작된 의료보험제도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베이비 붐으로 인구가 급증하였다. 높은 인구압은 기존 정치와 경제질서를 위협할 정도로 커졌다. 4.19 혁명과 5.16 쿠테타가 연이어 일어났고, 결국 토지개혁의 혜택을 가장 크게 받은 농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박정희 정권이 탄생했다. 그러나 재벌 중심의 불균형 성장전략은 고용이 확대되는 등 일정 부분 낙수효과도 있었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은 더 커졌고, 도시로의 인구이동이 급증하여 농촌 사회를 공동화 시켰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었다.

민주화 이후 탄생한 노태우 정부는 성장 정책을 보완하고 국민들의 선진화에 대한 기대 부응과 노후의 질 높은 삶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했다. 1990년대에 신자유주의 발전전략에 따라 세계화와 개방정책을 실시한 결과 IMF 위기가 초래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업자로 전락하고 빈곤층이 대거 발생했다.

절대빈곤가구에게 최저 사회안전망을 제공하기 위하여 2000년에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시행하였다. 최근에 실시된 무상급식, 무상보육, 반값등록금과 같은 복지제도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1:99로 상징되는 양극화 현상을 개선하라는 국민적 바람으로 추진되었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제주의소리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어느 일방의 가치만 절대적으로 추구하지 않았고 기득권층의 저항과 여론몰이도 어느 정도 극복해왔다. 이것은 국민통합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저력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성장 지향적인 자유의 가치와 경제민주화·복지 등 평등의 가치를 상호 보완하여 국가발전의 추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평등의 가치에 보다 중점을 두고 성장을 이끌어 가야할 시점이다. 좌우의 양날개가 제대로 날도록 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다면 고통스러운 5년이 될 가능성이 크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